<이민자의 시선, 세계의 흐름> 시리즈 5(4)
캐나다에 처음 발을 디뎠던 날을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공항 문이 열리자마자 얼굴을 스치던 차가운 공기,
낯선 땅의 사람들이 아무 이유 없이 건네던 부드러운 미소,
신호등 앞에서 서로 먼저 지나가라며 양보하던 손짓들,
그리고 지나가던 이웃이 “How’s it going?” 하고 건넨 여유 있는 인사말.
그때 속으로 중얼거렸다.
‘여기라면… 이민자도 숨을 편하게 쉴 수 있겠구나.’
그 마음 하나로 낯선 땅에 첫 발을 디뎠다.
두려움보다는 기대가 조금 더 컸던 시간.
실제로 어디를 가도 안전했고, 안정적인 시스템 속에서 나는 한동안 “이민 잘 왔네” 하며 마음을 놓고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 느긋함은 조금씩 바래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크락션 소리가 늘고 교통법규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아졌으며,
지하철 안에서는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표정들이 늘었다.
하늘 끝까지 치솟는 렌트비 앞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손이 잠시 멈추고,
마트 계산대에서는 바코드 스캔에 바쁜 손만 보였다.
팬데믹 이후 변화는 더욱 뚜렷했다.
예전에는 “한국에서 왔어요? 김치도 직접 담가요?” 하며 웃던 이웃이
이제는 마스크 너머로 조심스레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뉴스에서는 매일 아시안 헤이트 사건이 보도되었고,
어린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너희 나라가 코로나 가져온 거 아니야?”
라는 말을 들었다며 울먹였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그 순간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철렁’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민자로 산다는 것은
불시에 찾아오는 슬픔과 편견을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캐나다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아침 산책길에서
“Beautiful day, eh?” 하며 미소 지어주는 할아버지,
카페에서 “Have a nice day” 라며 다정한 눈빛을 건네는 직원,
지하철에서 무거운 가방을 든 내 앞에 조용히 자리를 내어주는 청년의 작은 배려.
이 작은 순간들이 하루를 다르게 만들었다.
그리고 속삭이듯 나에게 말했다.
“캐나다는 여전히 캐나다구나.”
최근에는 새로운 세대의 변화를 더 크게 느낀다.
학교 앞에서 “미래를 지켜야 한다” 며 기후 관련 시위를 하는 아이들,
Black Lives Matter 깃발을 들고 거리에 서 있는 젊은이들.
그들은 Equity와 Inclusion을 말하고,
정의를 일상의 언어처럼 주고받는다.
때때로 그 말들이 거칠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안에는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밀고 싶다는 뜨거운 열망이 분명 존재한다.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우리가 기대해온 ‘더 다양한, 더 포용적인 캐나다’를 다음 세대에서 완성할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변하고, 캐나다도 변한다.
어떤 변화는 반갑고, 어떤 변화는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하지만 분명히 남아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이민자로서 내가 가진 마음이다.
낯선 공간에서도 서로에게 문을 열어두는 마음,
다름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마음,
작은 친절 하나에 하루를 버텨내는 마음.
그 마음이 이어지는 한,
이 나라는 여전히 따뜻할 수 있다.
나는 그 마음을 놓지 않을 것이다.
변화의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세상이 조금씩 차가워지는 듯 보여도,
따뜻함을 지키려는 마음은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단단한 힘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아침 햇살이 비치는 공원길을 걷는 나와 당신,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일상 속에서
조용하지만 강인하게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