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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의 도시, 그 속의 그림자

<이민자의 시선, 세계의 흐름> 시리즈 5(7)

by 이민자의 부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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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타리오는 흔히 “다양성의 도시”라고 불린다.
지하철 한 칸만 타도 펀자비 억양, 타갈로그어, 중국어, 아랍어가 한꺼번에 뒤섞여 들린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향수 냄새와 커피 향, 거리 음식의 고소함까지 공기 속에 얽혀 있다.
네온사인과 벽화, 피부 톤과 옷차림의 색깔이 한 장의 화려한 모자이크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겉으로 보면 다채롭고 아름답기만 하지만, 조금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각자의 이야기가 스치며 미묘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틈에서 나는 때때로 보이지 않는 경계를 느끼곤 했다.


교실에서 배운 ‘다름의 색’


이 도시에 와서 나는 50대의 나이에 다시 학생이 되었다.
칼리지를 지나 4년제 대학까지.
강의실에는 나이도, 국적도, 삶의 궤적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인도에서 온 20대 남학생은
내가 영어로 버벅거릴 때마다 노트북 화면을 슬쩍 돌려 보여주며
“천천히 하세요, Linda.” 하고 속삭였다.


필리핀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온 여학생은
점심시간마다 도시락을 활짝 열어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먹어요.” 하고 웃었다.


그 순간들 속에서 나는
정말 ‘다름이 모여 하나를 만든다’는 말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서로 다른 색과 억양, 경험이
한 장의 그림 위에서 천천히 자리 잡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모자이크에도
아주 미세한 금이 가는 순간은 존재했다.
아무리 아름다운 그림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색의 경계가 있는 법이다.


마트에서 만난 ‘보이지 않는 선’


며칠 전, 동네 마트였다.
장바구니를 끌고 좁은 통로를 지나는데
반대편에서 오던 백인 여성과 어깨가 살짝 부딪쳤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더니
눈을 크게 뜨고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Watch where you’re going!”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몸이 굳고, 머릿속은 하얘졌다.
나는 얼른 “Sorry…” 하고 고개를 숙였지만
주변의 시선들이 스치듯 나를 지나갔다.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 멍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동양인이 아니었다면,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달라졌을까.


캐나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우리는 인종차별이 없어.”
그 말은 반쯤 맞고, 반쯤 틀리다.
법과 제도 안에서는 차별이 없을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선이 남아 있다.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말 뒤에는
가끔 ‘그래도 거리는 두자’라는 조용한 균열이 숨어 있었다.


두 목소리 사이에서 멈춰 서다


그래서 나는 종종 내 안에서 서로 다른 두 목소리를 듣는다.
‘괜찮아, 그냥 지나가는 일이야.’
‘아니야, 이건 그냥 넘길 일이 아니야.’


그 두 목소리 사이에서 한참 머물렀다가
다시 앞으로 한 발을 내딛는다.
이민자로 산다는 건
때로는 상처를 흘려보내는 일이고
때로는 그 상처를 어디엔가 잘 접어 두는 일이기도 하다.


진짜 포용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다.
내가 영어를 천천히 말해도 기다려주는 태도,
내가 김치를 먹는다고 코를 찡그리지 않는 작은 배려,
그런 소소한 행동들에서 시작된다.


그 미세한 실천들이
보이지 않는 선을 조금씩 지워나간다.


미완의 그림 위에서 색 하나를 더하다


이 도시의 다양성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림이다.
누군가는 칠하고,
누군가는 지우고,
또 누군가는 덧칠하면서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그 끝에 조용히 서서
이민자로서,
50대에 다시 학생이 된 사람으로서
내 작은 색 하나를 더한다.


누군가 내게 차가운 선을 그어도
나는 그 선 위에
따뜻한 발자국 하나를 남기고 싶다.


그 발자국이 바닥 위에 또렷하게 찍혀
다음 사람의 발길이 조금 덜 날카롭게 닿도록,
조금 더 편안하게 걸어갈 수 있도록.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 저항이며
이 도시가 조금 더 따뜻해지기를 바라는
나만의 포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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