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시선, 세계의 흐름> 시리즈 5(9)
이미지 제작 도움: ChatGPT (AI 이미지 생성)
아침 뉴스를 켜는 순간, 화면이 나를 덮친다.
우크라이나의 불타는 아파트, 가자 지구의 잿빛 폐허, 포연 속에서 울부짖는 아이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심장은 이미 전장에 서 있는 듯 쿵쾅거린다.
캐나다의 거리는 여전히 고요하고, 호수는 어제와 같은 빛으로 반짝이는데,
내 안에서는 오래된 불안이 다시 깨어난다.
특히 북한 미사일 뉴스가 뜨는 날이면 숨이 잠시 멎는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고향의 그림자는 여전히 내 심장에서 가깝다.
어린 시절의 사이렌, 사라지지 않은 떨림
어릴 적 들었던 공습훈련 사이렌의 울림은 지금도 명확하다.
수업 도중 울려 퍼지던 그 소리에 놀라 책상 밑으로 기어 들어가던 작은 몸,
차갑고 거친 바닥, 먼지 냄새, 그리고 엄마 손을 꼭 잡았던 순간의 떨림.
반세기가 지났는데도 뉴스 속 폭격 장면은 그때의 공포와 겹쳐
내 몸 어딘가에 남아 있는 기억의 잔해를 흔들어 깨운다.
캐나다로 이주해 평화로운 일상을 살고 있어도,
내 마음 한쪽은 여전히 그때의 사이렌을 들으며 살아가는 듯하다.
평화로운 일상 위에 얹힌 세계의 절규
이곳의 하늘은 늘 넓고, 호수 위 햇살은 잔잔하게 흔들린다.
가끔은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며 웃는 소리가 집 안까지 들어온다.
그런데도 식탁 위에는 매일 전쟁 뉴스가 겹겹이 올라온다.
총알이 날아오지 않아도, 전쟁은 어느새 마음의 문턱을 넘고
내 평온함은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절규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가장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다.
평화는 조약서의 서명으로 오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한 채 도착하는 것도 아니다.
뉴스 속 아이를 보며 잠시 가슴이 멈추고,
“저 아이가 내 손주였다면…”이라는 마음이 드는 그 순간,
평화는 비로소 아주 작게, 조용하게 자라기 시작한다.
이야기로 건네는 작은 평화
멀리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다.
손주는 영국에서 자라고 있고, 우리는 화면으로 매일 얼굴을 본다.
그 작은 얼굴을 보며 나는 종종 옛날이야기처럼 속삭인다.
“Once upon a time, there were scary things happening.
That’s why we must never fight.”
전쟁을 이야기 속으로 밀어 넣고,
평화를 가르치는 일—
지금의 나에게 가장 작고도 확실한 실천이다.
전쟁은 인간의 어리석음에서 시작되지만,
평화는 연민에서 피어난다.
총알 대신 빵을, 폭탄 대신 포옹을 건네는 사람들에서
세상은 조금씩 다시 인간의 얼굴을 되찾는다.
이민자로 산다는 것: 멀리 있지만 연결되어 있는 마음
이민자의 삶은 거리를 두고 세상을 바라보는 삶이다.
멀리 있지만, 결코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마음.
전쟁의 뉴스 한 줄이 캐나다의 부드러운 햇살 아래에서조차
내 가슴 속 어두운 구석을 흔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안과 긴장은 단순히 과거의 기억 때문만이 아니다.
세계의 고통에 마음을 닿게 하려는 책임감,
평화를 지키는 일에 작은 마음이라도 보태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이민자로 산다는 것은
비록 내가 서 있는 땅은 바뀌었어도
내 마음은 여전히 세계의 흐름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마음이 움직이는 곳에서
작은 선택 하나가 다시 평화로 이어질 수 있다.
작은 순간들이 만드는 큰 울림
오늘도 나는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신다.
창밖 호수 위에 번지는 햇살을 바라보고,
손주와 화면 속에서 눈을 맞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 고요한 시간들이
내 안의 평화를 천천히 채워간다.
그리고 나는 그 평화를
누군가에게 빌려주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언젠가 내가 마주할 어른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
그리고 어느 날, 전쟁이 멈춘 도시에서 다시 웃게 될 누군가에게까지.
작은 빛 하나는 미약하지만,
여러 개의 작은 빛은 총성보다 큰 울림이 된다.
언젠가는 세상 곳곳의 아이들이
사이렌이 아닌 웃음을 들으며 자라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조용한 다짐
오늘도 나는 평화로운 길을 걸으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되뇌인다.
“내 안의 평화가 세상 속 평화로 이어지기를,
언젠가 내 손주와 모든 아이들의 웃음으로 돌아오기를.”
멀리 있어도 마음은 고향과 세상을 잇는다.
그리고 그 연결감이 바로,
이민자로 살아가는 내가 세상에 보낼 수 있는
가장 조용하고도 확실한 평화의 인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