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잘못도 아닌 이야기

다시 나를 선택하는 연습

by 미닝풀

약 10년의 해외 근무를 마치고 남편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오랜 시간 가족과 떨어져 지냈으니 이제는 함께 지내며 한국에서 새로운 일을 찾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과 달리, 남편은 어느덧 1년째 집에 머물고 있다. 물론, 경제적인 능력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주식 투자로 충분히 벌 수 있다며, 나에게는 집안일과 아이들을 맡으라고 했다. 그 말은 한편으론 든든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오래된 불안을 조용히 깨웠다.


나는 주식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아는 것이라고는 화면 속 빨간색과 파란색. 빨간색은 오르고, 파란색은 떨어지는 것. 그래서 빨간색이 많으면 좋은 건가, 그 정도의 지식뿐이다.

컴퓨터와 휴대폰 화면을 번갈아 바라보는 남편의 표정은 늘 진지하다. 깊게 찌푸려진 미간은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알 수 없는 경고처럼 느껴졌다.


“자기야.”


내가 부르는 목소리는 종종 화면 속 소음에 삼켜져 닿지 않는다.

한두 번은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같은 일이 반복될수록 답답함이 쌓였다.


“자기야.”


몇 번을 불러서야 돌아오는 대답.


“왜?”


그 짧은 대답 속에는 ‘지금 말 걸지 마’라는 뉘앙스가 묻어 있었다.

그 순간, 남편의 얼굴 위로 아주 오래된 기억 하나가 겹쳐졌다. 집에 가자고 보채던 어린 나를 귀찮다는 듯 바라보던 아빠의 표정. 담배연기를 내뿜고, 손에서는 화려한 그림이 그려진 화투장을 놓지 않던 모습.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주식창만 바라보는 남편의 뒷모습과 도박에 빠졌던 아빠의 모습은 너무도 닮아 있었다. 물론, 도박과 투자라는 행위 자체는 전혀 다르다. 하지만 몰입을 넘어 과몰입이 되어버리면, 그것은 이름만 바뀌었을 뿐 결국 중독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 중독은 당사자는 잘 느끼지 못하더라도,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에게는 분명한 상처가 된다.


생각해 보면, 아빠가 도박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가장 가까이에서 견뎌낸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두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과 생계를 동시에 책임졌다.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을 텐데도 엄마는 늘 “괜찮아”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속에는 체념도, 외로움도, 애씀도 함께 들어 있었다는 걸 나는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 시절의 나는 그저 지켜보는 아이였다.


엄마는 늘 지쳐 있었고, 아빠는 기분에 따라 말투가 달라졌다. 그래서 나는 늘 공기의 흐름을 먼저 읽는 아이가 되었다.

문 닫히는 소리, 아빠가 말하는 목소리 톤, 씹는 소리마저 의식하며 밥을 먹던 숨 막히던 식사자리까지— 나는 그것들을 신호처럼 읽었다. 조금이라도 위험한 공기가 감지되면 숨을 죽이고 상황을 피해 갔다. 그렇게 나는 조용히 눈치를 보며 자라는 아이였다. 그리고 그 습관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남편이 주식 화면에 몰두하느라 내 목소리를 놓칠 때, 그 상황 자체보다 나를 흔드는 건 오래된 기억의 그림자이다.


그때처럼, 나는 다시 조심스러워진다.

말을 멈추고, 표정을 살피고, 나의 감정보다 상대의 상태를 먼저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건 남편의 행동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행동이 오래된 상처의 문을 다시 열어버린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이제 그 패턴을 알아차리고 있다는 것. 알아차림은 작은 변화의 출발점이다.

엄마는 그 시절,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다르다. 나는 내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의 표정에 먼저 반응하던 그 어린아이가 아니라, 내 감정을 먼저 인정하고 돌볼 수 있는 어른으로 나아가고 싶다.


그 과정이 느리고, 서툴고, 때로는 흔들리더라도—

이제 나는 나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사랑도 관계도 두려움이 아니라 이해와 존중 위에서 다시 숨 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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