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마음을 품은 이형
소금기 묻은 바람이 바위 사이로 스며들었다. 파도는 규칙 없는 음률을 만들어 해안을 때렸다. 그 처량한 풍경 속에서 오미누스는 말 없이 걸었다. 검은 로브는 물에 젖어 무거웠고, 등 허리에 매인 칼날은 그 무게만큼이나 사연을 품은 채 흔들렸다. 그는 지금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정해진 길 따위는 없었지만 자신을 이끄는 무언가를 향한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흙과 모래가 뒤섞인 좁은 해안선 위로는 바람에 부서지는 잿빛 조개껍데기들이 반쯤 묻혀 있었다. 아무런 감흥도 없이, 그저 부서지는 소리만이 공허하게 울렸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삭막한 풍경 속에서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희뿌연 안개와 자갈밭 너머, 바람에 실려 흐르는 연기 기둥 하나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타는 나뭇가지도, 불꽃도 보이지 않았지만 공기 중에는 그을음 냄새가 섞여있었다. 이런 곳에서 불을 피우는 자가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미누스는 그쪽으로 향했다. 가까워질수록 연기 너머로 돌과 돌이 맞부딪히는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주인은 해안가에서 조약돌을 손에 쥔채 탑을 쌓고 있던 아주 어린 아이였다.
"어... 누구세요?"
오미누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이는 반쯤 완성된 조약돌 탑 위에 조심스레 하나를 더 얹으며 고개를 살짝 들어 오미누스를 바라보았다. 이 병든 공기 속에서도 살아 있는 숨을 내쉬는 작은 생명. 그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의 피부는 병들어 있었다. 손등과 목덜미 위의 옅은 반점이 곰팡이처럼 퍼져있었다.
'...부패병인가.'
오미누스는 그 말조차 속으로 삼킨 채 조용히 아이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미래가 어찌될지 알지도 못하는 천진난만한 아이의 시선은 한결같았다.
순간, 아이의 뒤편 그늘에서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늘아래 가려진 커다란 바위 뒤, 어둠 속에서 미끄러지듯 다가온 그것은 인간을 절반쯤 흉내 낸 무언가였다. 상반신만은 인간의 틀을 간신히 닮았지만 그 외의 신체는 이질적인 형상을 드러냈다. 그나마 인간의 모습을 갖춘 상반신의 피부는 아래로 향할수록 그 결이 불균일했고, 일부는 드러난 근육처럼 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왼팔의 기형적으로 형성된 채 벌어진 손가락 두 개는 길고 마디진 뼈가 얇은 막을 두른 채 움직일 때마다 바람을 가르듯 흔들렸다. 등줄기를 따라, 허리 아래로는 본래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지느러미처럼 펼쳐진 얊은 판막 조직이 등 뒤에서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하반신은 두족류처럼 물컹하게 분리된 다리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끝단은 흙과 자갈을 따라 움직이도록 스스로 형태를 바꾸는 기괴한 유연성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이질적인 것은 그녀의 눈이었다. 피멍처럼 물든 공막도, 끔찍한 동공도 없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맑고 깊은, 검푸른 빛을 띈 인간의 눈동자. 그녀는 말없이 아이를 품었다. 기형의 손끝으로, 지극히 인간다운 방식으로. 처음 아이에게 손을 뻗는 그 모습에 오미누스는 본능적으로 허릿춤의 칼날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이어지는 광경에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불안해 보이는 동시에 위험해 보이는 왼손이 아이를 감싸는 동작에는 조심스러운 섬세함이 담겨 있었다. 아이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조용히 기댄 채로, 잔 기침을 하는 아이의 몸을 가만히 감싸 안았다. 그녀는 아이를 품에 안은채, 말 없이 무언의 경고를 내비치고 있었다.
'가까이 오지 마.'
몸짓은 날카롭지도, 위협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 말 없는 언어를 이해한 오미누스는 더 이상 다가가지 않은 채 자리에 멈춰 섰다.
자리를 뜬 오미누스는 근처의 바위에 앉아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칭칭감긴 붕대 안쪽은 여전히 심연의 흔적이 살아 숨 쉬고 있었고, 어느 누구도 이 모습을 온전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굳이 감추려 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품에 안긴 채 숨을 고르던 아이는 붕대 사이로 드러난 오미누스의 검은 피부를 바라보면서 아주 작게 말했다.
"...엄마, 저 사람도 아픈가 봐."
아이에게 '엄마'라고 불리는 존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가볍게 아이의 등을 토닥일 뿐이었다. 아이는 주저 없이 말을 이었다.
"여기... 엄마랑 똑같아."
아이의 손끝이 이형의 존재의 하반신을 가리켰다. 검은 물결처럼 조용히 흘러내리는 칠흑빛 살결은 오미누스의 붕대 아래 숨어 있는 상흔과도 닮아 있었다.
"엄마도 아픈데, 저 사람도 그런 것 같아."
오미누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의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 말이 자신도 모르는 틈에 내면 깊숙히 스며들었다.
'아프다'는 말. 누군가의 눈에 자신도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오미누스는 아이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감정도, 말도 담기지 않은 그 작디작은 움직임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작았지만 분명한 응답이었다. 아이를 품에 안은 존재는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여전히 침묵했고, 여전히 경계하고 있었으나 그 눈동자 어딘가에서는 이전과 다른 결의 깊은 감정이 미세하게 느껴졌다. 마치... 밤하늘에 떠 있는 그믐달의 형상처럼.
무의식적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어느새 해가 기울고 있는것을 깨달았다. 해가 완전히 가라앉자 바다는 거울처럼 잔잔해졌고, 반투명한 구름이 어둠을 데리고 다가왔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아이의 숨소리가 점차 조용해지더니 눈꺼풀도 천천히 내려앉았다. 이형의 존재는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나무와 바위로 어설프게 지은 작은 집으로 향했고, 오미누스는 거리를 두고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창문처럼 열린 틈 사이로 보이는 광경은 어머니가 아이를 재우는 평범한 풍경과 다를 바 없었다. 찰나의 순간 둘의 시선이 스쳤지만, 이형의 존재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아이를 향해 고개를 돌린 뒤 부드럽게 얼굴을 쓰다듬으며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아이의 곁에 앉아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오미누스는 문득 아로스와 시즈를 떠올렸다. 어그러진 세계에서 서로를 감싸던 그 모습은 자신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받아들이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 모를 감정이 내면을 흔들고 있었다.
오미누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 감정을 더 알고 싶었기에 바닷가를 떠나지 않았다.
거리를 둔 채 그들을 지켜보았지만 이형의 존재는 번번이 자신들을 향한 시선을 알아챘고, 경계심을 드러내며 위협적인 자세를 취했다. 가끔 아이가 오미누스에게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는 순간에는 괴물의 형상으로 변할 듯 긴장했다. 그러나 아이가 울거나 자신의 변화에 놀랄까 두려운 듯, 그때마다 다시 변화를 억누르고 오미누스를 노려보는 것으로 끝맺었다. 그 모습에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 오미누스는 이형의 존재가 경계하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먼저 손을 들어 보이며 싸울 생각이 없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던 어느날, 답답한 복면과 후드를 잠시 벗어둔 채 바닷가의 바위에 앉아 고요한 바다를 바라보던 오미누스의 곁에 아이가 다가왔다. 드러난 그의 얼굴은 붕대에 감긴 신체와 대조적으로 상처 하나 없이 맑았다. 길게 흘러내리는 백발과 성별을 가늠하기 어려운 고운 선은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처럼 보였고, 그 모습에 호기심을 가진 아이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오미누스에게 말을 걸었다.
"누나는 어디서 왔어요?"
오미누스는 '누나'라는 낯선 호칭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질문의 의도를 따라가려 애썼다.
"......어...... 나는...... 나도 잘 몰라."
"왜 몰라요?"
순수한 질문은 비수처럼 가슴 깊은 곳을 파고들었다. 이름도, 길도, 어디에도 속한 적 없는 자신에게 '어디서 왔냐'는 물음은 잊고 있던 상처를 다시 드러나게 했다. 오미누스는 주저하듯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자신을 향한 궁금어린 시선을 차마 외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았어."
고민 끝에 뱉어낸 말은 거칠고 투박했다. 그럼에도, 그 대답은 거짓이 아니었다. 타인에게 비춰진 오미누스는 그저 불쾌한 흉물, 혹은 불길한 징조일 뿐이었다. 세상 그 어느 곳에도 그가 마음 편히 깃들 자리는 없었다. 비록 자애로운 신의 품이 그를 거두었을지라도 오미누스 스스로가 그 안에서조차 자신을 '이질적인 오점'이라 여겼으니.
그러나 이어진 뜻밖의 대답에 오미누스는 말문이 막혔다.
"왜요? 이렇게 예쁜데!"
'예쁘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말문이 막힌채 한참 동안 어리둥절한 눈으로 아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
"예쁘다구 했어요. 근데 많이 아픈 거에요? 눈도 그렇구, 팔이랑 다리도 그렇구......"
아이는 손가락이 조심스럽게 오미누스의 붕대를 만지작거렸다. 그 눈빛에는 불안함도, 두려움도 없었다. 그저 걱정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오미누스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자기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이 작은 아이가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아이의 뒷편에서 이형의 존재가 다가왔다. 아이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보였지만 더는 노골적으로 경계에 가득찬 눈으로 오미누스를 바라보지 않았다. 오미누스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하자, 아이는 뒤를 돌아보며 자신의 어머니를 향해 달려갔다.
"엄마!"
이형의 존재는 조심스럽게 아이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잠시, 무언가 말하지 못한 듯한 표정으로 오미누스를 바라본 뒤 아이를 품에 안은채 집으로 돌아갔다. 오미누스는 그 뒷모습을 지켜보다 다시 바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아이의 말이 바람에 실려 들려왔다.
"저 누나, 자기가 어디서 온지 모른대. 그리고 아무도 자기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없었대."
그 말을 들은 이형의 존재는 아이를 바라보다가, 당황한 표정으로 오미누스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서려 있었다.
동질감.
아주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그리고 잊고 싶었던 상처를 마주한 듯한 표정. 그녀 또한 알았으리라. 세상으로부터 외면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자신의 존재가 누군가에게는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 된다는 그 서늘한 감각을.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오미누스는 모닥불 곁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타닥거리는 불꽃 너머로, 잔잔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으나 기침은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점점 거칠어지고 고통스러워졌다.
오미누스는 불길한 예감을 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 쪽으로 향한 발걸음은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웠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식은땀에 젖은 이마와 짧게 끊어지는 숨소리에 이형의 존재는 아이를 품고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했다.
조심스럽게 다가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즉시 위협적인 태세를 취했다. 한 발자국이라도 다가오면 죽여버리겠다는 모습에 오미누스는 등허리에 걸린 칼날을 집 밖으로 내려놓으며 싸울 생각이 없다는 의사를 완곡히 내비쳐 보였다. 그 행동에 이형의 존재는 위협하는 자세를 거두었으나,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은 채 오미누스를 노려보았다.
오미누스는 주머니에서 이끼로 쌓인 초록빛 경단과 나뭇잎을 꺼냈다. 망설임 없이 아이의 입에 경단을 넣고 펄펄 끓는 이마 위에는 나뭇잎을 얹었다. 이형의 존재는 처음엔 오미누스의 행동을 저지하려 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이내 깨달았는지 가만히 곁에서 지켜보았다.
반시간이 지나고, 아이의 열이 서서히 내려갔다. 거칠던 기침 또한 잦아들자 그제서야 이형의 존재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부드럽게 아이의 뺨을 어루만지며 안도하는 모습을 본 오미누스는 조용히 집 밖으로 나왔다. 칼날을 다시 허리에 걸고 바닷가로 발길을 돌리자, 바람은 한층 더 차가워져 있었다.
그 뒤로, 이형의 존재가 조심스럽게 오미누스를 따라왔다. 모래 위를 스치는 걸음은 망설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감사의 말을 전하려는 보였으나 그 행위는 그녀에게 있어서 몸을 움직이는 것, 숨을 고르는 것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는 몇 번이나 숨을 삼키고, 아주 오랫동안 사용한 적 없는 목소리를 꺼내려는 듯 목울대를 겨우 움직였다. 갈라진 입술 사이로 처음 새어 나온 것은 의미 없는 바람 소리뿐이었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모든 진심을 담아 힘겹게 한 단어를 내뱉었다.
"......고마워."
목소리는 바람에 씻겨 사라질 듯 약했지만, 그 안에는 한때 인간이었던 존재가 꺼내 보일 수 있는 모든 감사가 담겨 있었다. 오미누스는 대답 대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한참 동안 오미누스를 바라보다가 아이가 기다리는 집으로 천천히 돌아갔다.
바다는 조용했고, 모닥불은 사그라지지 않고 타올랐다. 오미누스는 그 앞에 앉아 너울치는 바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내면 깊은 곳 어딘가에서 조용히 번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