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속에서 싸우는 법 (2)

작은 불꽃

by 이샤라

혼종의 이빨이 왼쪽 어깨에 박히자 살을 찢는 소리와 함께 뜨거운 통증이 온몸으로 번졌다. 아로스는 이를 악물고 턱을 밀쳐냈지만 균형을 잃은 몸은 이미 말에서 떨어져 비탈길 아래로 굴러가고 있었다. 구르는 도중에도 혼종은 그를 놓지 않았다. 발톱은 갑주의 이음매를 따라 갈기갈기 파고들었고, 금속이 갈리는 소리가 고막을 스쳤다. 어깨 갑주가 충격을 못 이기고 깨져나가자 마디를 감싸던 장철이 산산조각 나면서 흩어졌다.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둔탁한 충격이 허리를 관통하며 흙먼지가 시야를 덮었다. 아로스는 숨을 고르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비탈 아래의 희미한 달빛 속에서 다섯 마리의 혼종과 다섯 명의 사냥꾼이 그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혼종들의 눈동자는 붉은 피를 머금은 듯 번들거렸고, 주둥이 밖으로 삐져나온 송곳니는 유난히 길고 날카롭게 뻗어 있어 오로지 도살을 위해 만들어진 맹수 같았다. 그 옆의 검붉은 두건을 뒤집어쓴 사냥꾼들의 손에는 칼끝이 반달처럼 휘어진 칼날이 들려 있었다.


아로스는 천천히 품속에서 헌이 건넨 붉은 가루 주머니를 꺼냈다. 짐승들의 접근을 막는 물건이니 무기로서도 사용할 수 있을 터. 재빠르게 끈을 풀어 흩뿌리듯 혼종들 앞으로 뿌리자 불탄 가죽 냄새처럼 자극적인 향이 바람을 타고 퍼졌다. 세 마리의 혼종이 동시에 고개를 젓더니 고통으로 울부짖으며 비틀거리더니, 그중 두 놈이 아로스를 향해 날뛰듯 뛰어들었다.


"크르아아아아——!!"


발밑의 녹슨 도끼가 손에 걸렸다. 아로스는 지체 없이 도끼를 집어 들어 눈앞으로 돌진해 오는 혼종의 핏줄이 잔뜩 선 눈알을 향해 내리꽂았다.


퍼어어억——


날이 깊숙이 파고들며 핏줄이 터졌고, 혼종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다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나 두 번째 혼종은 도끼를 뽑을 틈도 주지 않고 어깨로 들이받듯 달려들었다. 아로스는 몸을 틀며 도끼 손잡이를 거꾸로 쥐고 날이 박힌 채 매달린 혼종을 통째로 들어 올렸다. 그대로 놈의 정수리를 향해 거칠게 내리찍자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피와 뇌수가 튀며 두 번째 혼종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바닥에 처박혔다.


짧은 숨을 들이쉬는 사이, 사냥꾼들이 움직였다. 놈들은 키가 작고 왜소했지만 움직임만은 번갯불과도 같았다. 어둠 속에서 미끄러지듯 다가와 허리와 팔꿈치 사이 갑주의 빈틈을 정확히 찌르자 철이 벗겨진 곳마다 날이 스치면서 피가 뜨겁게 튀었다. 아로스는 신음도 없이 턱을 다물면서 그대로 자세를 고쳐 세웠다.


'...재빠르고 정확하다. 어둠 속을 마치 제 집처럼 누비는군.'


아로스는 붉은 두건을 흩날리며 달려드는 사냥꾼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들의 발놀림은 인간의 것이 아닌 듯 기민했고, 칼은 빈틈만을 향해 꽂히듯 몰려들었다. 숨을 죽이며 자세를 낮춘 아로스는 땅을 딛는 발끝의 감각으로 사냥꾼들과의 거리를 잰 후, 몸을 틀어 어둠 속으로 재빨리 물러났다. 뒤로 물러나던 발밑에서 무언가 단단한 것이 부딪히는 느낌이 전해지자 아로스는 손을 뻗어 그것을 집어 들었다. 녹이 슬고 부분적으로 부러진 철퇴였다. 망가졌지만 무게는 여전히 남아있었기에 아로스는 손에 감긴 가죽 그립을 바짝 조이며 몸을 세웠다.


바로 그때, 한 사냥꾼이 그림자처럼 달려들자 아로스는 즉각 철퇴를 가로로 휘둘렀다. 철퇴는 그대로 사냥꾼의 안면을 정통으로 강타했고,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안면이 박살 났다. 광대와 코뼈, 이마뼈가 안쪽으로 터져나가며 사방으로 뼛조각이 튀면서 사냥꾼은 두개골이 움푹 꺼진 채 뒷걸음치지도 못하고 쓰러졌다.


"캬아아아아악!"


사냥꾼들이 귀를 긁는 듯한 괴성을 질렀다. 그들의 울음은 짐승만큼이나 원초적인 포효에 가까웠다. 붉은 눈이 검게 번들거리더니 날 선 분노가 그 자리를 채웠다. 살기 어린 날카로움이 사라진 놈들은 마치 야수처럼 거칠고 무모하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상대하기 쉬웠다. 아로스는 철퇴를 움켜쥐고 다음 타격을 노렸다. 달려드는 사냥꾼의 머리 높이를 가늠하던 찰나,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귀공!"


어둠 너머, 레클레스를 탄 시즈가 달려오고 있었다.


"귀공! 괜찮으신가요?"


"위험합니다! 오지 마십시오!"


시즈의 외침이 들리자마자 사냥꾼들의 시선이 바뀌었다. 그들은 돌연 표적을 바꿔 일제히 으르렁거리며 말을 향해 달려들었다. 레클레스는 발굽을 높이 들며 몸을 틀어냈지만 날아든 칼날과 발톱에 다리를 찔리면서 균형을 잃었다.


"무녀님!"


아로스가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말에서 튕겨진 시즈의 몸이 허공을 그었다. 땅 위로 몇 차례를 구른 시즈는 썩어가는 나무뿌리에 세차게 부딪히고 나서야 멈췄다.


노아는 등불을 들고 달리고 있었다. 뒤로는 짐승의 울음소리와 전투의 소란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지만 등불 아래에 드리운 자신의 그림자만은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어둠 저편에서 들려왔던 비명소리와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뇌리를 따라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무녀님은 분명히 곧장 전선으로 달려가 도움을 청하라고 했다. 그러나 마음 한편 어딘가에서는 두 사람을 두고 떠나는 자신을 향해 '겁쟁이'라는 낙인을 찍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정말 이게 맞는 걸까? 내가 너무 늦게 도착하면... 그땐 어쩌지?'


달리던 노아는 다리아의 고삐를 세게 잡아당겨 멈췄다.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쳤고, 그 바람은 방금 전 들었던 비명보다 더 날카로웠다. 그는 망설였다. 이대로 달려서 도움을 청하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 자신이 돌아갔을 때 두 사람이 무사하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아니, 애초에 자신이 돌아가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노아는 자신이 가진 불의 이능을 떠올렸다. 단 한 번도 전투에 써본 적 없는 힘. 그러나 지금, 그 불꽃이 단 한순간이라도 어둠을 찢을 수 있다면 얘기는 달랐다. 지금 돌아서지 않는다면 그것이 곧 죄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들자, 손에 쥔 등불이 망설이는 그의 표정을 비추고 있었다. 결국 노아는 말을 돌려 등불을 꼭 쥐고 다시 어둠 속으로 달려들었다.



시즈와 아로스가 있는 쪽으로 가까워질수록 현장은 차츰 실루엣을 드러냈다. 달빛 없는 어둠 속에서 짐승들의 울음과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흔들리는 불빛이 시야에 걸려들었다. 비탈길 아래에서 시즈가 바닥에 무릎을 짚고 간신히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고, 아로스는 피범벅이 된 채 사냥꾼들의 포위망 속에서 철퇴를 휘두르고 있었다.


"...노아? 어째서 여기에!"


시즈의 놀란 외침에 노아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다리아에서 내려선 그는 대답 대신 손을 들어 이능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손끝에서 불꽃 하나가 깜빡이며 피어올랐다. 직접적인 전투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노아의 불은 작고 불안정하듯 쉴 새 없이 흔들렸다.


긴장으로 얼굴이 굳었고, 손끝은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노아는 손을 높이 들어 어둠 속에 불을 붙이듯 끝까지 불꽃을 펼쳤다.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불꽃이 어둠을 밀어내니 주변의 시선이 점차 그를 향해 몰려들었다. 사냥꾼들과 짐승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완전한 원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주변을 둘러싼 얇은 불꽃의 장벽이 형성되자 흔들리는 붉은 불빛 안에서 놈들은 주춤하며 서성였다.


"무녀님! 제 뒤로 숨어주세요!"


"말도 안 됩니다! 혼자서 저들을 막겠다는 거예요?"


시즈의 목소리에 날이 섞여있었지만 노아는 주저하지 않고 외쳤다.


"버틸 수 있을 만큼 해보겠습니다! 제발 부탁드릴게요!"


노아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 안엔 확실한 각오가 깃들어 있었다. 시즈는 반신반의하면서 깊게 한숨을 내쉰 뒤 곧바로 주위를 훑었다.


아로스는 여전히 철퇴를 쥔 채 사냥꾼과 혼종들 사이에서 맹렬히 싸우고 있었다. 피로 범벅이 된 무기로 적들의 머리를 박살 내며 버티고 있었지만 몰려드는 적의 숫자는 늘고 있었고, 그것을 혼자 감당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노아! 저쪽을 도와요! 혼자 오래 버틸 수 없어요!"


"알겠습니다!"


노아는 떨리는 손끝에서 불꽃을 모아 아로스를 향해 던졌지만 불꽃은 예상보다 멀리 날아가 땅에 부딪혔다. 아로스는 기겁하면서 머리가 박살 난 혼종의 시체를 방패 삼아 폭발을 막았다. 그 열기에 일그러진 공기 속에서 혼종 하나가 눈을 부릅뜨며 노아 쪽으로 달려들자 아로스는 순식간에 혼종의 머리를 향해 철퇴를 휘둘렀다. 바위가 깨지는듯한 소리와 함께 혼종의 두개골이 박살 나며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고, 그는 노아를 향해 눈으로 욕하듯이 째려보며 외쳤다.


"노아!!"


"죄, 죄송합니다...! 이번엔 제대로!"


노아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황급히 다시 불꽃을 일으켰다. 또 실수했다간 아로스가 정말로 철퇴를 들고 쫓아와 자신의 머리통을 박살 낼 것 같았기에 정신을 다잡으며 온 힘을 손끝에 모았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추적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독이 묻은 화살과 단검을 든 채 사냥꾼들과 함께 원을 그리며 둘러쌌다. 눈에 띄는 틈도 없이 사방에서 조여 오고 있었다.


"추적자들입니다! 노아, 불꽃을 더 일으켜야 해요!"


시즈는 다급하게 이능을 펼치며 날아오는 단검들을 튕겨냈다. 휘몰아치는 날들은 끊임없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왔지만 시즈는 몸을 낮춰 힘겹게 그것들을 막아냈다.


"더는 버티기 어렵습니다! 지금 빨리 일으키지 않으면—"


"저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두 사람의 위급한 모습에 아로스는 바닥에 널브러진 무기들을 투척 무기처럼 집어던졌다. 다가오는 추적자들은 부러진 창끝에 허벅지를 꿰뚫렸고, 녹슨 단검에 턱 밑을 꿰이며 하나둘씩 쓰러져갔다.


그 사이, 노아는 떨리는 손으로 불꽃을 다시 일으키려 애썼다. 그러나 불꽃은 허공에서 풀리듯 사라졌다. 자신감을 잃은 노아는 주저앉듯 고개를 떨구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저는 구제불능 같아요......"


"정신 차리세요! 제대로 하지 않으면 다 죽을 거라구요!"


시즈는 노아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쏜살같이 달려오는 추적자를 향해 근처에 떨어진 창을 휘둘렀다. 운 좋게도 창끝이 정확히 심장을 꿰뚫자 추적자는 한 번 경련을 일으킨 뒤 쓰러졌다. 그러나 뒤 이어진 광경에 시즈의 눈이 커졌다.


"......!"


쓰러진 추적자의 뒤로 사냥꾼들이 불길에 휩싸인 채 달려오고 있었다. 놈들의 몸에 붙은 불은 단순한 분신의 불길이 아니었다. 불타오르고 있는 몸에서 화약심지가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도망치십시오! 그 놈들, 폭탄입니다! 닿는 순간 터질 겁니다!"


아로스의 외침이 시체 너머를 가르며 퍼지자, 노아는 잠시 멈춰 선 채 그 말을 되새겼다. 마음 한복판에서 어떤 차가운 것이 뚝 떨어졌다.


'여기서 실패하면 정말로 다 죽을 텐데......!'


손끝에 다시 불꽃이 맺혔다. 너무 작았다. 이 불로는 다가오는 저들을 제압할 수 없다. 이걸로는 무녀님도, 아로스도, 자신도 지킬 수 없다. 그는 입술을 꽉 깨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반드시 터뜨려야 해. 가까이 달라붙기 전에... 확실하게!'


노아는 두려움 속에서 손을 더욱 높이 들었다. 결심은 가슴에서부터 뜨겁게 끓어올랐고, 작은 불꽃이 순식간에 확산되며 팔을 타고 번지는 순간 노아의 눈빛이 완전히 바뀌었다.


"모두 물러나세요!!"


불꽃이 거대한 굉음과 함께 터져 올랐다.


퍼어어어엉——————


폭발의 후폭풍은 포효하듯 터져 나와 대지를 뒤흔들며 불덩이와 잿더미를 하늘로 밀어 올렸다. 뜨거운 바람이 파도처럼 몰아치면서 공기를 가르는 충격파가 귀를 멍하게 만들었다. 아로스는 반사적으로 바위 뒤로 몸을 날렸고, 시즈는 창을 내던진 뒤 두 손을 들어 방어의 기운을 형성했다. 그녀의 이능이 펼쳐지며 바람처럼 휘감겨 올라가더니 폭풍처럼 몰아친 불꽃을 막아섰다. 파편들은 시즈를 중심으로 퍼지지 못한 채 이능의 막에 부딪혀 하나둘 꺾여 떨어졌다.


"노아, 괜찮아요!?"


"어으으으으......"


노아는 모든 힘을 다 써버렸는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온몸에 힘이 빠진 듯 고개를 떨군 노아의 손끝에서는 불꽃의 잔상이 연기처럼 흩날리고 있었고, 시즈는 다급히 그를 부축하며 자세를 낮췄다.


그때, 폭풍의 잔해를 가르는 기척이 들려왔다. 짙은 연기 속에서 검게 그을린 추적자들이 비틀거리며 기어 나왔다. 불에 타 문드러진 채 괴상한 숨을 몰아쉬던 그들은 화염에 그을린 살가죽 사이로 피가 흐르는 와중에도 마치 분노에 찬 유령처럼 시즈와 노아를 향해 몰려들었다.


"노아! 무녀님!"


아로스가 멀리서 외쳤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방금 전 터무니없는 폭발의 충격으로 몸을 가누기도 벅찼다. 시즈는 눈을 치켜뜨고 남은 힘으로 창을 쥐어 올렸다. 지금 이 자리에서 노아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자신 뿐이었다.


그 순간, 멀리서 금속의 울림과 거친 함성이 들려왔다.


시즈가 고개를 돌려 비탈길 너머를 바라보자 함성과 함께 기병들이 어둠을 가르며 나타났다. 기병들은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추적자들에게 달려들었다. 칼날과 창끝이 번뜩이며 추적자들을 향해 돌진했다. 말굽이 땅을 내리찍으며 솟구쳤고, 강철의 칼날이 붉게 번뜩이며 그을린 적들을 가르기 시작했다.


비명이 터졌다. 혼종들의 울음과 추적자들의 비명이 한데 섞이면서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불길은 남아 있었지만 더 이상 쫓아오는 그림자는 없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장은 적막감으로 가득 찼다.


잠시 후, 기병들 중 한 명이 말을 세우고 시즈와 노아에게 다가왔다. 그의 투구 너머로는 경계와 놀라움이 얽힌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위험 지역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시즈는 대자로 뻗어있는 노아의 옆에 주저앉은 채 숨을 고르며 작게 웃었다. 그 미소에는 고단함이 스며 있었다.


"...말하자면, 정말 길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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