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로라의 무녀 (1)

대지의 기억

by 이샤라
...한 여인이 광활한 대륙을 가로질러 하늘을 나는 두 마리 고룡을 우러러보았다. 험준한 절벽을 기어오른 그녀는 마침내 용들이 몸을 뉘인 둥지에 이르렀으며, 그곳에서 용들이 돌아오기를 묵묵히 참고 기다리며 머물렀다. 때가 되자, 용들이 둥지로 돌아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거처에 서 있는 여인을 보고 의아해하며 물었다.

「필멸자여, 무엇이 그대를 이 높은 곳으로 이끌었느냐?」

용의 의식이 그녀의 내면에서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자 여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지고한 존재시여, 들으소서. 당신들의 눈은 세상의 깊이를 헤아리고, 이치를 꿰뚫으며, 그 어떤 존재도 깨닫지 못한 진리를 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 아래의 필멸자들은 아둔하고 어리석어, 자신들을 깨우치고 이끌어 줄 존재를 갈망합니다. 저는 나약한 필멸자일 뿐이나, 저들의 나침반이 되고자 목숨을 걸고 이곳에 올라왔습니다. 만일 당신들이 직접 나서길 원치 않으신다면, 당신들의 가르침을 받아 저들이 나아갈 길을 열고자 합니다."

비록 여인은 연약한 필멸자였으나, 그녀의 눈빛은 온 세상을 밝힐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이에 용들 중 하나가 입을 열어 말하길,

「그대에게 시험을 줄 것이다. 가르침을 얻고자 한다면 이 안개의 땅을 순례하며 너의 시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보아라.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너의 판단으로 헤아리고 순례를 마친 뒤에 변함없는 마음으로 이곳에 돌아온다면... 그대가 걸어온 길이 미래의 또 다른 이들의 시험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여인은 순례길에 올랐다. 그녀는 인간의 마음으로 온갖 사물을 가슴에 담아내며, 길고도 험난한 여정을 마쳤다. 그녀의 진심과 용기는 마침내 용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용이 그녀에게 입을 열어 이르렀다.

「그대의 진실한 마음이 시험을 넘어섰도다. 이제 그대에게 세례를 내리노니, 내가 그대에게 인간으로서의 시야의 반쪽을 거두는 대신 나의 눈으로 보는 세상을 하사하리라. 이제 그대는 필멸자의 시선과 용의 시선으로 모든 것을 바라볼 것이다. 하지만 명심하라. 이 힘은 그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며, 무지한 자들을 바르게 이끌기 위한 것이다. 만일 그 뜻을 저버리고 어긋난 길을 걷는다면 그대의 남아 있는 인간성마저 불타 사라지고, 다시는 세상을 볼 수 없게 되리라.」

용의 말이 끝나자 여인은 고개를 숙이며 감사와 다짐의 기도를 드렸다. 그녀의 운명은 이제 더 이상 개인의 것이 아니었고, 저 아래의 어리석은 이들을 위해 빛을 비출 사명이 되었다...


무녀의 기원

아우로라의 역사 비록 中



아우로라의 무녀



2주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아마룬과 노아는 이그니카를 향한 여정의 초입을 겨우 벗어난 수준이었다. 초반에는 속도를 올리기 위해 위험지대를 가리지 않고 내달렸지만, 곧 노아의 몸이 그 무리한 강행군을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부패의 기운은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짙어졌고, 인간의 육체는 그 역겨운 냄새와 지독한 독기에 조금씩 잠식되어 갔다.


노아에게 거인의 품은 보호처인 동시에 작은 감옥이었다. 아마룬이 언덕을 뛰어넘고 절벽을 가로지를 때마다 그 진동과 충격이 파도처럼 몰아쳤다. 처음에는 묵묵히 버티던 소년은 결국 토악질을 참기 힘들 정도의 메스꺼움과 현기증에 시달렸고, 아마룬은 노아를 조심스럽게 이끌 수 있는 안전한 곳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카노르 평원 한복판에서 부패하지 않은 대지를 찾는다는 것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와도 같았다. 검보랏빛 점액으로 가득한 대지는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대며 숨을 쉬었고, 그 호흡은 독처럼 짙었다. 숨을 들이켤 때마다 코끝을 찌르는 썩은 냄새는 과거 이 땅에 생명이 가득했던 시절을 잊게 만들 만큼 자극적이었다.


아마룬은 더는 노아가 견딜 수 없다는 판단 아래, 평원을 벗어나 협곡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곳은 덜 알려진 은둔자들의 영역이자 살아남은 야생의 잔재가 살아 숨 쉬는 곳이었다. 공허의 신도 같은 이단자들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독기에 찌든 평원을 계속 달리는 것보다는 수백 배는 나은 선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협곡의 깊은 곳까지 발을 들였을 때였다. 평소와 달리 바람의 결이 달라진 것을 느낀 아마룬은 조용히 걸음을 멈췄다. 여전히 차고 거친 기운이었지만 그 속 어딘가에 알 수 없는 따뜻함이 섞여 있었고, 아주 옅은 향이 풍겼다.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감촉. 그것은 단순한 환영이 아니었다. 이질적일 만큼 선명한 기운이 그의 예민한 감각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마룬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협곡의 어둠을 가로질렀다. 그곳 어딘가에 있었다. 이름을 붙일 수 없으나 무시할 수도 없는 존재. 시야에 포착되지 않는 그 무언가는... 마치 오래전부터 자신을 부른 듯했다.


'그럴 리가 없다. 그 불길에서 살아남았을 리가...'


가슴 한켠에서 잊힌 역사가 조용히 고개를 들었고, 아마룬은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사로잡힌 채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협곡 어딘가에서 미약하던 맥박이 이제는 분명한 흐름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생명 신호가 아니었다. 오래전 어딘가에서 끊긴 줄 알았던 세계의 숨결이 지금 이 순간 그의 앞에서 되살아나고 있었다.


좁은 암벽 틈새 사이로 엷은 빛이 번져 나왔다. 아마룬은 조심스럽게 바위를 밀어냈고, 그 너머에서 터져 나오는 광경은 한순간 그의 숨결을 멎게 만들었다.


짙고 깊은 협곡의 어둠 속에서는 마치 고대의 심장처럼 조용히 박동하는 에메랄드빛 광원이 은은한 파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단순한 채광이 아니었다. 그것은 빛이라기보다, 온기였다. 지친 혼을 감싸 안으며 스며드는 숨결이자 생명의 잔향. 태초의 대지가 처음 숨을 쉬던 날의 기억이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아마룬은 천천히, 마치 성소에 발을 들이는 순례자처럼 빛의 중심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분명히, 생명이 살아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본 적 없던 동식물들이 조용히 자라나고 있었다.


작고 연한 풀잎들은 은빛 이슬을 머금은 채 서로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얽히고설킨 나뭇가지 사이로는 별빛 같은 미세한 불빛이 반짝였다. 곤충들은 날갯짓으로 공중에 무늬를 새기듯 떠다녔고, 바위틈을 덮은 이끼는 촉촉한 기운을 머금으며 그 위로 지나가는 바람과 속삭이듯 교감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생명 그 자체였고, 모든 소리는 침묵 속의 노래였다.


'아직도... 살아 있는 땅이 있었다니...'


아마룬은 그 풍경 앞에서 한동안 말을 잊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차올랐고, 그것은 마치 익숙하지만 오래전 잃어버렸던 감각을 되찾는 느낌이었다. 그는 과거 엘나의 숨결이 깃든 대지를 상상하며 걸었다. 이 세계가 태고의 모습을 간직하던 시절, 조상들은 넘쳐흐르는 생명의 중심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억은 이제 신화처럼 아득했고, 아마룬은 그 신화의 마지막 언저리를 조용히 떠도는 후예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살아 숨 쉬는 이 땅은 단지 살아 있는 생태계가 아니었다. 부패와 독기로 질식해 가던 대지 속에서도 살아남은 엘나의 마지막 온기였다. 그 고요한 온기가 심부 깊이 스며들며, 지친 육체와 가라앉은 정신을 부드럽게 일으켜 세웠다.


그 순간, 생명이 고요히 숨 쉬던 땅의 중심에서 인격을 지닌 형상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명백히 인간의 형상을 닮아 있었지만 결코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무언가였다. 여성의 모습을 한 그 존재는 말이 없었고, 하반신은 대지의 뿌리와 하나가 된 듯 땅에 닿아 있었다. 움직일 수는 없어 보였음에도 그녀가 아마룬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너무도 명확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마치 먼 길을 헤매다 돌아온 자식을 맞이하는 어머니처럼...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얼굴이었다.


아마룬은 문득,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이곳은 단지 안식처가 아니었다. 엘나가 마지막으로 남긴 기적의 흔적이자 살아 있는 기억의 중심이었다. 세계가 멸망의 끝자락에 다다른 지금에도 여전히 심장을 뛰게 하는 '기적'이 숨 쉬는 곳이었다. 그는 설레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노아를 가볍게 흔들어 깨웠다.


"이봐, 꼬맹이! 빨리 일어나서 저걸 좀 봐라."


"으으... 뭔데 그래요... 어?"


노아는 아직 흐릿한 눈을 비비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내 시야에 들어온 풍경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입이 저절로 벌어졌고, 말이 막혀버린 채 멍하니 그 자리에 굳어섰다.


처음엔 그저 어두운 협곡 속에 숨어 있는 오아시스 같았다. 그러나 눈이 익숙해질수록, 그곳은 단순히 물과 빛의 근원이 아니었다. 그곳은 '삶'이라는 개념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는 장소였다. 모든 것이 존재의 가장 깊은 본질에서 우러나온 것처럼 느껴졌다.


"이게... 이게 대체 전부 뭐예요...?"


마른침을 삼킨 노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눈은 놀라움과 두려움,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경외로 가득 차 있었다. 팔짱을 낀 아마룬은 노아의 반응을 지켜보며 묘하게 흐뭇한 듯 웃었다.


"놀랄 만도 하지. 이건 말이지, 태곳적... 그러니까 불의 심판 이전부터 살아남은 생명이 깃든 땅이다."


아마룬의 말이 끝나자마자, 노아는 몸을 돌려 그 풍경을 다시 바라보았다. 방금까지는 그저 아름다운 자연이라 여겼던 것이 이제는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풍경이 아니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존재였고, 기억이었다.


빛을 머금은 초록빛 생명체들은 태초의 숨결을 간직한 채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고, 그 중심에 고요히 서 있는 형상은 '온기'라는 말로도 모자랄 만큼 따뜻한 감정을 뿜어내고 있었다. 마치 이 세계가 처음으로 숨을 내쉬던 순간, 그 모든 것을 함께 품은 자가 지금 이곳 두 사람의 눈앞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이런 곳이... 정말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제가 아직 어려서 뭐라고 설명을 못하겠지만... 이런 건 처음 봐요."


노아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흥분, 놀라움, 경외, 이해할 수 없는 벅참이 뒤섞여 있었다. 아마룬은 그 반응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빛나는 대지의 중심을 향해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태초의 생명이라 불리는 거다."


아마룬의 목소리는 낮고 묵직했지만, 어딘가 어린아이 같은 감탄이 스며 있었다. 거인의 눈동자에 반사된 초록빛은 마치 오랜 세월을 뛰어넘어 되살아난 기억처럼 반짝였다.


"불의 심판 이후, 이런 생명의 땅은 모두 사라졌다 전해졌지. 이곳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신의 자비든, 대지의 기적이든, 천운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고개를 끄덕이던 노아는 문득 중심에 서 있는 형상을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존재. 그러나 그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생명이 숨을 고르는 듯한 형상.


"......말 그대로 신화 속 장소 같네요. 그런데... 저분은 대체 누구시죠?"


"나도 모른다. 다만 너도 어렴풋이 느꼈을 거다. 마치... 대지의 모든 생명을 품고 있는 어머니와 같은 느낌이지. 말없이 품고, 말없이 기다린 존재."


감탄에 젖은 아마룬의 모습에 노아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음... 저는 잘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거인이시니까... 그런 감각에 더 민감하신 거 아닐까요?"


"그 말도 맞지. 우리가 보는 것과 너희가 느끼는 것은 늘 다르니까.”


그 말과 함께, 아마룬은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초록의 빛 바위틈 사이로 피어난 작은 꽃과 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풀잎들. 이 모든 것이 지금 두 사람의 발아래에 있었다.


"아무튼, 오늘은 여기서 쉬자. 이곳은 몸만 쉬게 하는 곳이 아니다. 마음 깊은 곳까지 치유받을 수 있을 거다. 그동안 잃어버린 기운을 되찾기에 이보다 더 나은 곳은 없을 거야."




타리안을 떠난 지 어느덧 보름 하고도 사흘이 지났다.


서쪽으로 발걸음을 옮길수록 대로 곳곳에 깊이 스며들어 있던 부패의 기운은 점차 엷어졌지만, 대지에 남은 상처는 여전히 덧나 있었다. 이따금 자라나는 여린 풀잎의 모습과 멀리서 들리는 새의 울음소리에만 생명의 흔적이 간신히 머물고 있었고, 황량한 들판은 긴 회복의 시간을 묵묵히 기다리는 듯했다.


그러나 하늘은 달랐다. 독기로 물들어 회색 장막처럼 뒤덮였던 창공은 조금씩 본래의 빛을 되찾고 있었다. 솜털 같은 구름이 느리게 퍼져나가며 맑은 햇살이 대지를 쓰다듬었고, 그 빛은 마치 오랜 어둠을 걷어내며 희망을 속삭이는 듯했다.


"얼마 만에 보는 푸른 하늘인지..."


무의식적으로 다리아의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본 시즈의 목소리에는 설명할 수 없는 안도감과 설렘이 함께 배어 있었다. 두 달 가까이 칠흑 같은 먹구름과 독기 섞인 바람 속을 지나왔던 그녀에게는 하늘을 가로지르는 구름 하나마저도 생명을 품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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