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날개의 둥지 (7)

관문 아래의 포식자

by 이샤라

"어떡할까? 그냥 다 같이 달려들어서 죽일까?"


"멍청한 놈. 저런 놈을 그냥 죽이면 어떡해? 차라리 '그 자'에게 데려가는 게 낫지 않겠어?"


우두머리처럼 보이는 수인이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분명 저놈에게 흥미를 가질 거야. 어쩌면 틈새에서 기어 나온 놈들과 연관된 놈일지도 모르니까 말이지."


"큭큭... 틀린 말은 아니네."


"운이 좋으면 필요한 것들을 요구해볼 수도 있겠는데?"


수인들의 태도가 바뀌자, 그들을 노려보는 오미누스의 푸른 눈동자 속에는 냉혹한 불꽃이 은밀히 일렁였다. 짐승들이 자신을 알아보는 것에 대한 불쾌함과 감히 자신을 저울질하는 오만함에 대한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시즈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적어도 이 상황에서 말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잠시 후, 수인들은 두 사람을 포위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짧게 갈라진 손톱은 이미 흉기로 다듬어진 듯 날카롭게 빛났고, 드러난 송곳니는 위협적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그들은 본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 녹슨 단검이나 창처럼 깎은 어망 막대, 오래된 사슬이 엉긴 밧줄 따위의 조잡한 무기들을 덧붙여 쥐고 있었다.


"순순히 따라와라. 반항하면 사지를 끊어서라도 끌고 갈 테니."


수인들의 입가에는 이미 승리를 확신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아니."


오미누스가 짧게 답하며 시즈를 바라보자, 그 의미를 단번에 알아차린 시즈의 손이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차분하고도 무심한 손짓과 함께 순식간에 주변의 수인들이 맥없이 주저앉았다. 눈동자는 허공을 헤매고, 입가엔 게거품이 물린 채 침이 흘러내렸으며, 주먹을 쥐고 있던 손은 미약하게 경련했다.


"......이, 이게 뭐야?"


"뭐... 뭐야, 저 여자!"


패닉에 빠진 울음 섞인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졌다. 그러나 모두가 쓰러진 것은 아니었다. 이를 악물고 버티는 몇몇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버텨내며 쉰 목소리를 쥐어짜듯 외쳤다.


"무녀부터 잡아라! 저 년을 잡아!"


다급한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미누스가 움직였다. 번개처럼 튀어나간 그의 손이 한 수인의 목을 돌려버리자 뼈가 으스러지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숨통이 꺾였다. 몸이 힘없이 바닥에 나뒹구는 동시에 또 다른 수인이 달려들었지만 그 역시 피할 틈도 없이 오미누스의 팔에 목이 비틀리며 쓰러졌다. 살을 찢는 손톱과 송곳니가 허공을 가르며 덤벼들었음에도 오미누스는 그 모든 움직임보다 빨랐다.


두 명이 더 쓰러지자, 무너져 가던 포위망 속에서 수인 둘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다급히 도망쳤다. 그들이 남기고 간 자리에 낡고 무딘 창이 모래 위에 나뒹굴었고, 오미누스는 주저 없이 그것을 집어 들어 도망치던 수인의 등 뒤를 향해 던졌다.


슉— 퍼어억———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창끝이 목덜미를 꿰뚫자, 그는 비명조차 뱉지 못한 채 앞으로 고꾸라져 모래바닥을 뒹굴었다. 마지막 남은 수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땅을 박차고 달려들어 그의 멱살을 움켜쥔 오미누스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고, 목소리는 날 선 칼끝처럼 낮게 울렸다.


"...우리를 누구에게 넘기려 했지?"


"아, 안 돼...... 말하면 난 죽어......!"


수인의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그는 필사적으로 벗어나려 발버둥 쳤으나 움직임은 어린 짐승의 발악처럼 덧없기만 했다. 오미누스가 단 한 손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은 채 그대로 들어 올려 바닥에 내리치자 수인의 사지가 무력하게 퍼졌다. 그 압도적인 힘에 수인은 온몸으로 버둥거리며 자신을 붙잡은 손을 떼내려 했으나 허사였고, 어느새 오미누스의 다른 손이 수인의 오른팔목을 붙잡으면서 무자비하게 힘을 가했다.


우드득―


"으으으으읍―! 끄으으으으읍――!!!"


관절이 꺾이는 소리와 함께 수인의 눈이 격통에 휘둥그레졌고, 단단히 막힌 입 사이로 터져 나온 비명은 신음처럼 눌려 새어 나왔다.


"다음은 반대쪽이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경고를 내뱉은 오미누스의 손아귀의 힘은 조금도 느슨해지지 않았다. 잠시 입을 막고 있던 손을 거두자 수인은 숨을 몰아쉬며 비틀린 음성으로 다급히 내뱉었다.


"산 위에...... 산 위에 또 다른 동족들이 있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간들을 노예로 부려먹었는데, 갑자기...... 갑자기 괴물들에게 주겠다면서...... 모두 감옥에 가뒀어!"


"괴물...? 그게 뭐지?"


수인은 입술을 달싹였으나, 두려움에 말이 막혀 곧바로 답을 내뱉지 못했다. 그 순간 오미누스의 손이 다시 거칠게 그의 입을 틀어막으며 다른 손으로 반대쪽 팔목을 붙잡았다.


우드득―


"끄으으으으읍―! 끄르르으으으읍――!!!"


"...말해. 마지막은 목이야."


또다시 무너져내리는 소리가 메아리쳤고, 수인의 신음은 절규에 가까웠으나 막혀 버린 입 너머로 흐릿하게 번졌다. 눈에는 절망과 공포가 뒤섞여 눈물처럼 굴러 떨어졌다. 오미누스가 손을 거두자, 흙먼지를 들이마시며 가쁜 숨을 몰아쉰 수인은 비틀린 어조로 다급히 말을 쏟아냈다.


"15년 전...... 카노라스의 지하에서 나온 울루니아들이야! 내가 아는 건 이게 전부야! 제발... 제발 살려줘...!"


"...잠깐."


침묵을 지키던 시즈가 입을 열었다.


"방금... 인간들을 노예로 삼았다고 했지. 그 말은... 이 일대의 모든 인간들을 전부 당신들이 잡아들였다는 거야?"


"맞아... 우리가 직접 다 잡았다. 산 위에 사는 동족들이 뭘 꾸미는지는 나도 몰라. 하지만...... 그 덕분에 진작에 죽었을 우리가 이렇게라도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거다......"


숨을 몰아 쉬는 수인의 목소리에는 두려움과 체념, 그리고 희미한 자조가 뒤섞여 있었다. 시즈는 분노가 치밀었지만 지금은 감정보다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우린 사람을 한 명 찾고 있어.”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으나, 목소리엔 억눌린 조바심이 배어 있었다.


"보름 사이에... 회색 머리칼에 청록빛 눈동자를 가진, 키가 큰 기사를 본 적 있어?"


잠시 눈을 굴리던 수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자는 본 적 없어."


"그래?"


오미누스의 푸른 눈동자가 싸늘히 가라앉더니, 손아귀에 다시 힘을 주며 수인의 목덜미를 짓눌렀다.


"그럼 쓸모없겠네."


"잠깐만!"


수인이 다급히 외쳤다. 눈빛은 공포로 번들거렸고, 목소리는 떨렸다.


"내... 내가 너희를 감옥으로 데려다줄 수 있어! 우리 눈으론 본 적 없지만...... 산 위의 동족들이 먼저 발견해 잡아갔을지도 몰라!"


순간, 시즈의 시선이 오미누스를 향했다. 잠시 서로의 눈빛이 교차했고, 시즈는 짧게 숨을 고른 뒤 말했다.


"...그곳으로 안내해."


오미누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수인을 끌어당겨 부러진 두 손목을 잡아채더니 어망과 엉킨 올가미를 뜯어내어 거칠게 감아올렸다. 올가미가 뼈가 뒤틀린 손목에 파고들자 수인은 고통으로 신음을 흘렸다.


"앞장서."


거친 발길질을 시작으로, 수인은 앞장서서 좁은 길들을 따라 걸었다. 비틀거리는 걸음이 방향을 잡을 때마다 귀가 미세하게 흔들렸고, 콧날이 바람을 가르는 동안 혀끝을 짧게 울리는 소리가 한 번씩 났다.


그 순간, 오미누스의 낮고 건조한 목소리가 뒤에서 날카롭게 꽂혔다.


"허튼수작은 부리지 마. 조금이라도 낌새가 보이면 그 자리에서 목을 비틀어 버릴 거니까."


담보도 없는 협박에 수인은 흠칫 어깨를 움츠렸고, 꼬리 끝이 힘없이 늘어졌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올가미에 묶인 손목이 긴장과 고통으로 실룩거렸지만 수인은 여전히 굳이 좁고 시야가 막힌 길을 고르며 앞장섰다.


그때, 시즈가 앞장서는 수인을 향해 물었다.


"...어째서 당신들은 타리안에 있는 동족들과 함께하지 않았지?"


그것은 어둠이 깔린 산속으로 들어설 때까지 조용히 삼켜 두었던 질문이었다. 그러자 수인은 고개를 젖혀 웃음인지 비웃음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어디든 겉도는 놈들이 있기 마련이지. 명예가 밥이 되진 않아. 같은 피라도 덩치 좋고 말 잘 듣는 놈들만 환영받는다. 우리 같은 것들은 거기서도 발밑에 짓눌릴 뿐이야. 멸시만 잔뜩 처먹으며 한 곳에 모여 산다 해서 달라지는 게 뭐가 있지?"


거친 대꾸에 시즈는 대답을 잇지 못했다. 타리안에서 본 수인들은 명예와 규율 속에서 제 몫을 지켜내고 있었지만 눈앞의 수인은 피해의식에 절어 스스로 등을 돌린 뒤 그 결정을 합리화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말이 전부 허튼소리로만 들리진 않았다. 수천 년 동안 누적된 멸시와 상처가 낳은 왜곡임을 시즈는 알고 있었기에 더욱 섣불리 부정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흔들림을 드러낼 때가 아니었다.


길은 점점 가팔라졌다. 산맥을 따라 올라갈수록 바람의 방향은 수시로 바뀌었고, 어느 순간부터 부패의 기운이 뒤섞인 냄새가 배어 있었다. 선두의 수인은 여전히 산등성이의 그림자를 골라 탔다. 바위 턱을 돌아설 때마다 그의 꼬리는 간헐적으로 좌우를 스쳤으며, 그것은 마치 뒤를 따르는 두 사람의 보폭을 헤아리는 듯한 알 수 없는 간격이었다.


한참을 오르던 발치에 돌가루가 흩어지면서 시야가 급작스레 트였다. 바람이 폐부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검게 패인 평지와 거대한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파괴된 동쪽 신계의 관문.


그러나 원래라면 신계의 관문에 남아있을 신들의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덩굴처럼 보이는 검은 띠가 무너진 기둥들을 휘감고 있었고, 안쪽에서부터 좀 먹힌 듯한 음습한 암녹빛 균열이 틈새마다 얼룩진 채 검보랏빛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산속에 퍼져있던 부패의 시발점이 이곳이란 것을 깨달은 시즈는 무의식적으로 가면 뒤의 눈매를 좁혔다.


"...감옥은 어디에 있지?"


앞서 걷던 수인이 멈칫했다. 공포에 물든 듯 떨던 어깨가 희미하게 들썩였으나, 잠시 뒤 그는 돌아보며 기묘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떨림과 비웃음이 섞인 얼굴은 낯설도록 기분 나쁜 웃음으로 일그러졌다.


"감옥? 크흐흐흐... 감옥까지 갈 필요는 없어."


그 말이 끝나자, 바닥 깊은 곳에서 둔탁한 울림이 울려 퍼졌다. 돌이 어딘가에서 가볍게 충격을 받는 듯한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압력이 대지를 흔들며 다가왔다. 먼지가 잔해 사이로 부유했고, 곧이어 굵은 숨결 같은 기척이 귓전을 스치면서 거대한 울루니아의 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관문의 폐허 너머 균열을 통해 기어 나온 괴물의 모습은 기형적으로 부풀어 오른 살덩어리였다. 뒤엉킨 뼈마디, 눈이라 부르기 힘든 움푹 꺼진 구멍, 그리고 바닥을 뒤덮은 채 늘어진 사지였다. 한 걸음마다 대지가 신음하듯 떨렸고, 검은 점액이 흘러내리며 공기를 썩은 피 냄새로 물들였다.


"여깁니다! 오늘은 제가... 제가 특식을 가져왔습니다!"


관문으로 달아나는 수인의 외침은 짐승을 부르는 피리처럼 울려 퍼졌다. 그러나 두려움과 환희로 뒤틀린 눈빛이 뒤로 돈 순간, 얼굴이 일그러졌다. 분명 두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어라?"


뒤늦게 알아차린 수인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검붉은 연기만이 무너진 기둥 틈새에서 피어올랐을 뿐, 시즈와 오미누스의 흔적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 광경에 울루니아의 숨소리가 거칠게 터져 나왔다. 낮고 끈적한 괴물의 울음이 폐허를 울렸고, 그 음성은 마치 분노한 듯 점점 짙어지더니 이내 몸을 뒤틀어 곧장 가장 가까운 수인에게 눈을 꽂았다.


"아, 아니... 잠깐——"


말끝은 허공에 삼켜졌다. 채찍처럼 길쭉한 팔이 허공을 가르며 뻗치자마자 수인의 몸통이 그대로 손아귀에 짓눌렸다. 뼈가 으스러지며 터져 나오는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송진 같은 검은 진물로 끈적이는 손아귀 사이로 내장과 살점이 흘러내리자, 울루니아는 그 광경을 비웃듯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뒤틀린 목이 천천히 젖혀졌고, 거대한 입이 벌어지며 악어처럼 층층이 돋아난 이빨들이 드러났다. 시커먼 구멍 같은 구강 속으로 짓뭉개진 살덩이가 와르르 쏟아져 들어갔고, 핏물은 목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며 바닥에 붉은 흔적을 남겼다.


우걱거리는 저작음은 역겨울 만큼 거칠었지만, 그럼에도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다는 듯 두툼한 혀끝으로 입가를 훑으며 불만스럽게 입맛을 다셨다. 그것이 신호라도 된 듯 검보랏빛 연기 속에서 또 다른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흐물거리는 살덩이가 겹겹이 달라붙은 형체, 팔다리가 비정상적으로 길게 뻗어 거미처럼 기어 나오는 형체, 머리 없는 상반신에서 울음 섞인 숨결만 토해내는 형체. 모두가 현실의 규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뒤틀림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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