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사회생활'은 어떤 의미일까?

by 한냥이

여성의 '사회생활'은 어떤 의미일까?

사실 결혼하기 전까지 '여성'이라는 정체성은 나의 수많은 생물학적 특징 중 하나일 뿐, 크게 의식되는 무언가는 아니었다.


그런데 여성에서 시작되어 '아내'와 '엄마'로 이어지는 삶의 과정에서, 나는 젠더로서의 여성을 마주하게 되었다.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수많은 (대개는 희생적이고 차별적인) 역할들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이후부터 나는 '여성의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해졌다.


결혼 전에 나는 이런 생각이었다.

남들이 나를 판단할 때 물론 외관상 '여자'라는 것이 바로 인식되겠지만,

나의 가치나 능력을 판단할 때에는 나의 출신 학교, 직업, 실제 업무 능력 등 내가 이룬 조건들이 기준이 되었을 것이다.


적어도 나의 가치는 선천적인 특성이 아니라, 내가 노력해서 이룬 조건들로 정해진다고 믿었다.


그런데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니, 나의 가치는 '젠더로서의 여성'의 삶을 얼마나 잘 수행하고 있는가로 정해졌다. 제 나이에 결혼은 했는지, 남편 아침밥을 차려주는지, 아이를 낳았는지, 모유수유를 했는지, 만 3세까지 어린이집에 안 보내고 가정보육을 하고 있는지 등 말이다. 그 기준은 '나'에 대한 맞춤형 기준은 아니었다. 우리 사회의 모든 여성에게 요구하는 기준이었다.


결혼 이후 아내와 엄마에 대한 역할 기대는 여성이 사회생활을 포기하는 큰 이유이다.

즉,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직업을 포기한다.


그런데 나는 사회생활만이 젠더 여성의 삶을 그나마 벗어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일 하고, 돈 버는 과정에선 여성이 아닌, 나의 노력과 능력을 내세울 수 있었다.

그래서 여자의 사회생활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첫째 아이 친구의 엄마와 대화를 나누던 때였다.

공부에 재능이 없어 보이는 자신의 딸아이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래 뭐. 여자아이니까. 공부 못 해도 되지."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여자니까 공부 못 해도 된다는 말은,

좋은 학벌, 번듯한 직장이 없어도 능력 있는 남편만 잘 만나면 된다는 소리였다.


그 친구의 엄마도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다니다가 아이를 임신하고 퇴사한 상태였다.


나는 대답했다.

"나는 오히려 선이가 환이보다 직업적으로 성공했으면 좋겠는데?

나처럼 경력단절되지 않게 전문직 직업을 가지면 좋겠어."


진심이었다.

임신과 출산은 생물학적으로 여성의 몫이다.

육아도 결국 여자가 상당 부분 하게 된다.

첫째 딸아이가 아이를 낳고 기르다가도, 마음만 먹으면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 유능하고 의지 있는 사람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선이가 훗날 전문직 직업을 가지면 다시 쉽게 일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내 뜻대로 아이가 직업을 갖게 할 순 없는 노릇이지만,

나는 나의 끊어진 삶을 선이가 반복하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2년을 공부했고,

대학교 5년을 공부했다.

취직하기 위해 토익, 토익 스피킹 공부를 했고,

취직에 도움이 되는 여러 자격증을 따느라 수많이 시간과 노력을 공들였다.


그렇게 취직을 했고, 고작 4년을 일했다.

그리고 지금 6년째 휴직 중이다.


물론 공교육의 목적이 '취직'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취직해서 4년 동안 번 돈을 생각하니

그동안 달려온 내 삶이 아까웠다.


번 돈은 결혼자금으로 썼고, 지금 나는 모아둔 돈이 없다. 숨겨둔 비자금도 하나도 없다.


현실적 이게도 '생산성'은 나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기 쉬웠다.

나뿐만 아니라, 남들도, 사회에서도 그 사람의 직업, 연봉, 재산으로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기 쉽다.


그래서 나는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나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길이기에.


한 번은 친한 동네 엄마가 나의 여러 가지 생각을 듣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선이 엄마, 페미야?"


모르겠다. 페미에 대해서 공부해 본 적이 없어서.

난 그저 성취 있는 삶을 갈망했고, 남편에게 공평한 육아 참여를 요구했다.

근데 이 모습이 페미로 비치나 보다.

저 질문은 나의 날 서있는 가치관이 일반적이지 않다고, 독특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다.

때문에, 여성의 사회생활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 사회생활은,

성취 있는 + 생산성 있는(즉, 월급 주는) 활동이자 '젠더로서의 여성'의 삶을 벗어나는 기회였다.


적어도 회사에서 나는 누구 엄마로 불리는 것이 아닌, 내 이름 석자 그대로 불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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