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 내 방에 들어온 남편이 자고 있는 내 상태를 확인하고 간다. 열이 나는지 이마도 짚어보고 숨은 쉬는지 나의 콧구멍 앞에 자기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내가 아프고 나서 남편이 애들을 데리고 자고, 나는 숙면을 위해 다른 방에서 따로 잔다.)
나는 끝까지 자고 있는 척을 했다.
자기 때문에 내가 잠 깬 것을 알면 또 속상해할까 봐.
남편은 또 악몽을 꿨나 보다.
내가 죽는 꿈을 자주 꾼다.
꿈에서 깨면 항상 나를 확인하러 온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에 일어난 남편이 말하길 꿈에서 내가 암이 재발했다고 한다.
어제저녁, 나는 남편에게 생리통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고 했었다. 그 한 마디에 또 남편은 지옥으로 떨어진다.
내 가족의 죽음을 상상해 본 사람은 안다.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 내 곁을 떠날 수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상상하기 힘든 고통인지를.
나의 치료 기간 동안 남편이 반복적으로 꾼 꿈이 있다.
같이 여행을 하다가 내가 갑자기 죽었는데 나를 묻지 못했다고 한다.
죽은 시체를 줄로 연결해서 계속 여행을 다녔다고 한다.
참 잔인하고 엽기적인 꿈이다.
죽은 아내를 묻지 못하는 것은 어떤 심정일까?
배우자의 죽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놓지 못하는 사랑,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정의 심리.
남편은 나와의 이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걸까?
아니 어쩌면, 그는 이미 나를 잃는 연습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남편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생각해 보면, 회사 동기 어머니도 최근에 유방암이었다고 했고, 우리 실장님 누님도 유방암이랬어. 1기라고 하길래 '다행이네요'하고 그땐 넘어갔었어. 다행이라니... 내가 미쳤었지. 1기든 몇 기든 아픈 가족이 있는 사람한테 할 소리가 아니었어."
그렇다.
겪어 보니 알겠다.
사람은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게 된다.
더구나 암에 걸린 사람의 '최악의 경우'는 죽음이다.
초기에 발견했든, 수술과 치료가 잘 되었든, 환자와 가족은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막연히 상상만 해봤던 그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느낄 때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두려움과 불안을 느낀다.
아직도 악몽을 꾸는 남편을 옆에서 지켜본다.
두려움과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남편을.
거듭되는 악몽 속에서 나와의 이별을 준비하는 남편에게, 나는 오늘도 살아 있음으로 대답한다.
숨 쉬고, 밥 먹고, 웃는 나를 보여주는 일. 그것이 그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