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기로, 그 잔인한 순간

[프롤로그]다 늙어서 가는 독일유학

by lena

그때 내 아비의 나이는 지금의 나보다 다섯 해 정도 더 살았을 뿐이었을게다. 이미 그 옆을 결혼 서약과 함께 지키고 있었을 여자는 내가 늦깎이 대학 원 생활을 할 때의 과거를 현생으로 살고 있었을 테고. 그녀들의 아이인 나는 그때 끽해봐야 6살 정도 되었을 것이며. 아무 생각 없이 과자 봉지에 손을 불쑥 집어넣은 채 TV 채널이나 돌리는 무료한 어린이 었을 것이다. 수많은 불안감을 천수관음처럼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꾹 쥔 채 손톱을 잘근대 고 있는 지금의 나는 먹지도 않을 그것을 입 안 가득 넣은 채.



그때 그 부부의 파르스름한, 아니 찬란했을 청춘을 나는 몰라보았다. 아니. 몰락했다 보았다. 만년 선생질이나 할 줄 알았지 생전 장사라고는 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법한 부부가 이토록 창창한 나이에 시작한 게 고작해야 식당이라니. 열아홉의 나는 밀대걸레를 연신 바닥에 문지르고 있는 아 비와, 사람도 삶을 법한 크기의 솥 가득 국을 끓여대고 있는 어미의 모습에서 이질감을 발견했지만. 그들의 어깨가 얼마나 아팠을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저 처음 보는 부모의 초라한 모습과, 그와 점점 닮아갈 내 초라한 미래 앞에서 등 돌린 채 도망치고 싶었을 뿐.



나는 이들의 상심을 먹고 자랐다. 청춘이라 불러도 무방할 그 시절을 오롯이 내가 쟁취해 얻은 것인 마냥 오만했다. 마냥 치솟은 채 내려올 것 같지 않던 고개였지만, 세상의 무게에 열심히 얻어맞은 덕에 그제야 시선은 다들 정상이라 부르는 곳에 머물렀다. 낯선 시선은 하늘만 보던 내게 나의 현재를 보여주었다. 평생을 무심한 대가와 결과, 그때의 부모의 나잇대로 접어들기 시작한 나를 그제야 나는 한낱 바람에 실린 냄새 한 조각으로 누군가 의 식탁을 상상하는 것처럼. 부모의 심정을 파편처럼 이해할 수 있었다. 중년의 나이에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을, 화풀이할 대상이라곤 벅벅 닦아 야 할 바닥과 휘휘 저어야 할 냄비밖에 없었을 그때 그들의 마음을.



아무도 나를 써주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과.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것만 같은 위기 속에서 깨달았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인생에서, 눈뜨기 싫고 힘든 아침이 아직도 구만번은 남은 것 같은 인생아로 바뀌는 것이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는 것을. 일어날 때마다 어딘가 칼에 찔려 죽어가는 짐승 같은 신음을 뱉어내던 과거의 두 중년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의 불안과 허리와 손목을 먹으며 생을 펼쳤거늘. 실하다 못해 모두에게 칭송받아야만 할 그들의 열매인 나도. 이제 불안을 열매처럼 주렁주렁 달고 있는 흔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으니까.



이 모든 혼돈 속에서.

다 늙어빠진 나의 독일 유학기는 시작되었다.

이곳에서, 내 어린 부모들에게 건네야 할 위로와 훗날의 나에게 말해줘야 할 격려에 대해. 나는 써 내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