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시작한 이유를 굳이 설명하자면,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사유의 즐거움을 회복해 보려는 시도입니다. 그동안 저는 경제적 자유를 위해 투자와 부업에 매진했습니다. 숫자를 늘리는 것이 좋았지만, 제가 진심으로 바랐던 것은 경제적 자유 이후 누리고 싶은 사유의 시간이었습니다. 수단은 분명했지만, 수단이 목적을 대신하진 못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글쓰기는 다릅니다. 브런치의 리듬은 제가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나서 누리고 싶던 바로 그 상태—아침 햇살 아래, 카페 한켠에서 맘껏 읽고 생각하고 적는—를 지금 여기로 불러옵니다. 생산이면서 놀이이고, 노동이면서 쉼이 되는 독특한 영역. 저는 이 공간에서 내 생각을 다듬고, 새로운 시각을 실험하고, 그 과정을 글로 증류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 글쓰기가 부업이 되어 제 삶을 떠받치는 또 하나의 현금흐름이 된다면, 그건 덤으로 받는 선물일 겁니다.
제가 말하는 경제적 자유는 소비로 가득한 삶은 아닙니다. 시간의 자유, 그리고 마음껏 생각할 자유에 가깝습니다. 어디서든 책을 펼칠 수 있고, 한 문장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자유. 주말 도서관의 조용한 구석에서, 저는 그런 자유를 상상합니다. 회사 생활은 제게 안정과 소속을 줬지만, 그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어떤 의미의 허기가 남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의미 있는 것으로 시간을 채우고자 했고, 그 욕구가 곧 경제적 자유를 원하는 제 마음의 진짜 얼굴이었습니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을 “행위 그 자체가 보상이 되는 집중의 상태”로 설명합니다. 이 상태는 활동의 도전 수준과 나의 기술 수준(능력, 경험, 지식)이 균형을 이룰 때 잘 나타난다고 하죠. 저는 이 설명에 크게 공감합니다. 투자를 계속할 것이고 자산을 불리는 일도 흥미롭지만, 그 과정은 제게 몰입의 장은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읽고 쓰는 시간에는, 결과를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빠져드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이 적기라고 느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한 또 하나의 ‘수단’을 찾기 전에, 순수한 몰입으로부터 오는 기쁨을 먼저 회수하자고요. 왜 하필 ‘사유’인가—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면, 답은 단순합니다. 생각하는 행위는 제게 세계와 나를 연결하는 감각을 되돌려 줍니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사랑하는지, 무엇 앞에서 느려지고 무엇 앞에서 살아나는지를, 사유의 언어로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확인이 쌓일수록, 저는 더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물론 돈의 문제를 비껴갈 수는 없습니다. 돈의 소유란 결국 교환 가능한 시간과 선택지를 사는 일이고, 그 이면에는 각자의 궁극적 소원이 숨어 있습니다. 제 경우엔 직장을 떠날 수 있을 만큼의 생활비 자유, 주거비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의식을 확장할 책과 경험에 쓰는 비용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삶은 불확실한 면이 있으니, 거기다 좀 더 오래 안정을 가질 수 있는 여유를 더하고 싶습니다.
얼마를 가지면 경제적 자유를 달성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사람마다 사정(사는 곳, 가족, 세금 등)이 달라 숫자는 제각각입니다. 그래서 저는 계산을 아주 단순하게 합니다.
한 달 필수비용을 적고,
연금·배당·임대수익 같은 월급 외 수입을 뺍니다.
남은 금액 × 300~400 = 대략 필요한 자산.
(연간 기준으로는 남은 금액×12의 25~33배와 같습니다. 쉽게 말해 25~33년 동안 필요한 자산입니다)
(예시)
1인 가구, 필수비용 월 200만, 월급 외 수입 20만 → 남은 금액 180만 → 필요 자산 약 5.4~7.2억
1인 가구, 필수비용 월 300만, 월급 외 수입 50만 → 남은 금액 250만 → 필요 자산 약 7.5~10억
부양가구, 필수비용 월 500만, 월급 외 수입 100만 → 남은 금액 400만 → 필요 자산 약 12~16억
※ 참고 통계(통계청 가계동향조사, 2023년)
1인 가구 월평균 소비지출 163만 원 → 연간 약 1,956만 원.
이 값을 그대로 적용하면(월급 외 수입이 없다는 가정), 필요 자산은 약 4.9~6.5억(= 163만 × 300~400).
월급 외 수입이 월 20만 원 있다면 남은 금액은 143만 원 → 필요 자산 약 4.3~5.7억.
※ 주의: 위 계산은 이해를 돕기 위한 단순화입니다. 시장 수익률, 세금, 건강보험료, 주거, 가족 상황 등 변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비유로 쉽게 말하면: 큰 물탱크(자산)에 물을 채워 두고, 수도꼭지(생활비)를 얇게 틀어 조금씩만 쓰면 물이 오래 갑니다. 여기서 ×300~400은 ‘탱크를 얼마나 채워두면 안심할 수 있나’에 대한 보수적 답입니다. 30년치 현금을 쌓자는 뜻이 아니라, 투자해 둔 자산에서 해마다 필요한 만큼만 꺼내 쓰자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보면 ‘몇 억’ 같은 절대숫자보다 내 생활에 맞는 숫자가 보입니다. 무엇보다 저는 완전한 은퇴보다 원하면 일하고, 원치 않으면 쉬어도 되는 상태를 원합니다. 일은 생계만이 아니라 정체성과 관계의 자리이기도 하니까요.
만약 제가 영화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처럼, 시간을 되돌려 마음껏 쓸 수 있다면 하루 종일 책에 파묻혀 지성을 다듬으며 살아보고 싶습니다. 그 꿈을 미래형으로만 미루지 않으려 합니다. 브런치는 저에게 그 꿈의 현재형입니다. 여기에 저는 사유의 시간을 매일 조금씩 적립할 겁니다. 오늘은 다섯 문장, 내일은 한 문단. 그렇게 내 생각의 원형질을 기록하다 보면, 언젠가 이 기록이 누군가에게도 의미가 될 수 있겠지요. 그때 비로소 글이 제 경제적 자유에도 기여한다면, 그건 과정이 목적을 넘어서는 순간일 겁니다.
사유는 제게 즐거움입니다. 모두에게도 그럴까요? 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자기 속도를 회복하는 기쁨은 누구에게나 유효하다고 믿습니다. 그 속도를 되찾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 저에게는 읽고 쓰는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이곳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나에게로 돌아오는 글을 쓰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