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성형수술을 고민 중이다. 우울한 표정으로 있어도 사람들은 꼭
“술 덜 깼어요?”
“무슨 화나는일 있어요?”라고 묻는다.
그럴때면 나는 말한다.
“아니예요. 그냥 못생긴거예요.”
이제는 슬픔을 티도 못내는 나이가 되었다.
그게 그렇게 이상하게 보이나 보다.
그래서 그런가...슬플 땐 화난 사람처럼 보인다.
그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 조금씩 굳어지는 사회밥을 먹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표정이
조금씩 베어나온다. 마음이 다쳐서 조용히 있는 건데,
사람들은 그걸 분노로 읽거나, 숙취로 여긴다.
하기사 얼구링 굳어있는 상태가 많아야 하는 일을 해오긴 했다.
그럴 때마다 문득 생각한다.
오래 굳어진 표정은 그 사람의 본래 얼굴이 되어가는구나...
그런데 약간 거시기한 사실은 슬픔을 이겨내는 법을 배워야 할지
아니면 얼굴표정 연습을 해야할지 조차 고민해야 하는 현실이 나를 더 우울하게 한다.
근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슬픔을 감추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도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 억지로 웃지 않는다.
대신 커피를 마시며 하늘을 본다.
그냥, 내 표정이 맑은 하늘을 닮아가게 둔다.
그래서 가급저기면 노을이 질때는 반드시 노을을 보러 간다.
사람들이 뭐라고 묻든 괜찮다.
“무슨 일 있어요?” 하면,
“네, 조금 슬퍼요. 근데 괜찮아요.”라고 답한다.
그건 변명도, 무기력함도 아니다.
그저 살아 있는 사람의 표정일 뿐이니까. 세상은 언제나 밝은 얼굴을 원하지만,
모든 얼굴이 웃어야만 아름다운 건 아니다.
때로는 굳은 얼굴에도, 조용히 버티는 사람의 온기가 있다.
이제 나는 슬픔을 감추지 않고
슬픔과 함께 걷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조금씩 망가진 얼굴로 세상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 얼굴엔 웃음 대신 진심이,
피로 대신 사랑의 흔적이,
그리고 ‘그래도 괜찮다’는 미약한 용기가 남아 있다.
나는 그 얼굴들 속에서 인간을 본다.
아름답지 않아도 진짜 살아 있는 얼굴들,
그 표정들이 지금 내가 밟고있는 세상을 만들어온 흔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