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회고
초등학교 1학년, 아이언맨을 보며 토니 스타크처럼 되고 싶었다.
한 영화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고 하던가, 그게 나한테는 아이언맨이었나 보다.
나이가 들며 슈트나 아크리액터는 만들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할 때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슈트는 못 만들어도, 자비스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며 코로나 시기를 지나고,
아이디어를 내어 창업팀을 3년쯤 이끌다가 아쉽게 마무리했다.
그렇게 정신없는 20대를 보내고, 군대도 가지 않은 채 꿈을 좇아 인공지능 대학원에 진학했다.
막연히 군대가 두렵고 가기 싫어서 회피성으로 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냥, 드디어 내가 하고 싶은 공부만을 하기에도 아까운데, 1년 반이라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싫었다.
주위에서는 "그냥 빨리 갔다 와라.", "다들 다녀오는데 그냥 가라.", "나중에 후회할 짓이다." 라며 전혀 도움 되지 않는 조언들을 나에게 쏟아냈었다.
그때 내 선택을 믿어준 부모님이 없었다면 진작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대학원 생활은 내 생각과는 달랐다.
나는 늘 열정적으로 선배들, 동기들, 후배들과 토론하며 성장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냥 대학원에서 정말 죽었다 생각하고 공부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가 들어온 시점의 선배들은 이미 너무 지쳐있었다.
너무나도 빠르게 변하는 연구 트렌드와, 기약 없는 졸업에 다들 꿈을 잃은 듯 보였다.
교수님께서는 좋은 분이셨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을 압박하지 않으셨고, 상담이 있으면 언제든 받아주셨다.
아마 대학원생들이 들으면 놀라겠지만, 나는 몇몇 기간을 제외하고는
10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원활한 대학원 생활을 보냈다.
다만, 선배도 교수님도 나에게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조용히 수업이나 듣다가 졸업하겠지, 하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그게 무엇보다 힘들었다. 나는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그래서 어떻게든 증명하고 싶었다.
지도 교수님의 대학원 강의 발표를 마치 창업할 때 IR 준비하듯이 준비해 갔다.
나는 다른 학생들과 다르다고, 어떻게든 성장하고 싶으니까 나를 봐달라고 소리치듯이 발표했다.
다행히 교수님께 이런 어필이 먹혔는지, 이따금씩 나를 방으로 부르셔서 연구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내 발표를 들은 박사 선배도 그제야 나에게 협동 연구를 제안해 주셨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국제 저널에 공동 1 저자 논문을 쓸 기회를 얻게 되었다.
여름에 저널에 논문을 내고 나서, 내 연구를 직접 시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처음으로 연구주제를 개발해 보기 시작했다. 하루에 논문을 3~5편씩 읽었다.
한 번은 세미나를 준비해서 찾아갔을 때 교수님께 이건 좋은 논문이 아니라고 혼난 적도 있다.
제목 멋있는 걸로 논문을 고르지 말라는 피드백을 듣고, 그 뒷 내용은 듣고 싶지도 않다고 일주일 내내 준비한 세미나를 퇴짜 맞은 적도 있다.
겨울이 되어서야 겨우 최신 트렌드를 시도해 본 수준의 논문을 국내 학회에 내고 발표할 수 있었다.
그 마저도 이걸 발표하는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었다.
이후, 더 열심히 논문을 읽었다.
이번엔 아이디어뿐 아니라 직접 실험까지 해서 교수님께 결과를 보여드리자는 생각이었다.
몇 번이고 아이디어 단계만 보여드렸을 때는 전혀 교수님을 설득시킬 수 없었기에,
내 아이디어는 된다는 것을 교수님께 증명하고 싶었다.
겨울 내내 논문을 읽고, 재현하고, 교수님께 소개드리고 퇴짜를 맞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러던 중, 실험 결과를 보여드리며 "이런 지표가 있으니 새로운 방법을 개발해 보겠다"라고 발표를 준비했다.
교수님께서는 발표를 들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걸로 이미 논문 주제랑 쓸게 정해졌는데? 방법 개발 말고, 이 지표 분석으로 논문으로 바로 준비해 보자."
한번 컨펌이 나고 나서, 열심히 실험을 더 보강하고 논문을 작성했다.
AAAI 2026에 도전해 보기로 하고 여름 내내 글을 썼다.
내 마지막 대학원에서의 도전이라고 생각했기에, 후회 없이 쓰고 나가고 싶었다.
긴 심사 과정 끝에, 최종 심사까지 갔으나 아쉽게 떨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졸업하기 전까지 조금 시간이 남았으니 더 다듬어서 다른 학회에 한번 더 도전해보려고 한다.
다행히 가장 불안했던 군 문제는, 학기 중 전문연구요원을 채용하는 한 회사에 합격하여 해결되었다.
군 문제 때문에 늘 불안했지만, 이렇게 해소되어 마음이 놓인다.
뉴스에서 연일 보도하는 취업 한파를 볼 때마다, 늦은 나이에 하는 군 입대가 아른거렸었는데.
성장 가능성이 보이는 회사에, 나쁘지 않은 대우를 받고 오는 12월부터 근무를 시작한다.
아직 사회인이 된다는 게 크게 실감 나지는 않는다.
또 대학원 과정이 너무 빨리 끝난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박사 과정에 지원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나도 없지만.
앞으로도 더 많이 도전하고, 공부하고 또 실패할지도 모른다.
그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다시 살펴보기 위해 계속 글을 남기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