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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탑에 흐른 피

거짓말 하는 법을 배워볼까

by 개일

어릴 때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할리갈리>, 설날에 친척끼리 모여서 하는 <원카드>, 경제관념을 키울수 있다는 <부루마블>, 혹은 협동(?)의 힘을 알아가는 <텔레스트레이션> 같은 게임들.
보드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최소한 이런 게임 이름 정도는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몇 가지로만 이루어진 세상이 보드게임의 전부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보드게임 세계는 정말 넓고 깊었다.
보드게임 카페만 가도 수백 개가 쌓여 있고, 평생 해도 다 못 할 만큼 새로운 게임이 계속 나온다.


나는 보드게임을 좋아한다. 파티류 게임부터 전략 게임까지 웬만하면 다 좋아한다. 보드게임을 시작한 지는 그렇게 오래 되진 않아서 진짜 보드게임 잘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아는 건 많지 않지만 그래도 꾸준히 새로운 게임을 알아가고 있다. 보드게임 모임에 정기적으로 나가기도 하고 스스로 모임을 열 때도 있어서, 한 달 평균 다섯 번은 모여서 보드게임을 하는 것 같다.


좋은 사람들이랑 하면 앞에 어떤 게임이 놓여 있든 다 재밌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 종류는 마피아 게임이다. 나는 오프라인, 온라인 불문 모든 종류의 마피아 게임을 좋아한다.


한 판 금방 끝나는 <한밤의 늑대인간>, 누구나 명탐정 코난이 될 수 있는 <홍콩 살인 사건 디셉션>, 마피아류의 대표격인 <아발론>, 사람과 단어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라이어 게임. 시간 맞추기 어려울 때는 모바일로 하는 <어몽어스>, 그리고 그 상위 버전인 <구스구스덕>까지.


그리고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시계탑에 흐른 피>라는 마피아 보드게임이다. 가격이 무려 200불이나 하는 비싼 게임인데, 아마 열 번 이상,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많이 했을 것 같다.



기본적인 틀은 마피아 게임이랑 크게 다르지 않다. 시민과 마피아 팀으로 나뉘고, 시민은 서로를 모르지만 마피아는 서로를 안 상태로 시작한다. 낮에는 토론과 재판으로 마피아를 가려내고, 밤에는 마피아가 시민을 죽인다. 전통 마피아에서는 시민은 대부분 역할이 없고 의사와 경찰 정도만 있다. 죽으면 게임에서 빠지는 것도 기본 룰.

그런데 <시계탑에 흐르는 피>는 마피아 게임의 상위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가장 큰 차이는 딱 세 가지다.

사회자가 시민 편을 들 수도, 마피아 편을 들 수도 있다. 사회자가 게임 흐름에 아주 큰 영향을 준다.

죽어도 의견을 내고 게임에 계속 참여할 수 있다. 죽은 마피아는 마피아인지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죽어서도 끝까지 시민을 흔들 수 있다.

모든 캐릭터가 고유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세 가지 때문에 이 게임은 정말 마피아 게임의 정점이라고 생각한다.


마피아 게임은 아쉽게도 호불호가 갈리는 게임이다. 마피아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마피아가 걸렸을 때 거짓말을 잘 못하기 때문이겠지. 마피아가 걸리면 괜히 긴장되고, 거짓말 못하는 사람은 행동에서 티가 나고. 마피아라는 증거가 완벽해도 연기만 잘하면 끝까지 시민을 속일 수 있지만, 아무리 게임이라 해도 거짓말을 하는 데 죄책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도 초반에는 마피아만 걸리면 아, 제발 이 판 무효됐으면 싶었는데, 지금은


'그냥 어차피 게임인데 뭘'


하고 즐긴다. 이기면 좋고 지면 어때. 오히려 재밌는 역할이 나오길 바란다. 특히 마피아가 걸렸을 때의 긴장감과, 모두가 속았을 때의 그 뿌듯함?! 아쉽게도 최근엔 이상하게 재미없는 역할만 걸렸지만.


일상의 무료함 속에서 적당한 긴장감과 승부욕을 불러일으키는 보드게임.
같이 할 사람만 있으면 한 번, 두 번 하다 보면 빠져나올 수 없는 그 매력을 다들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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