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상상 중입니다
미리 고백부터 해두고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 글은 아직 실전 육아에 발을 들이기 전, 그러니까 “아이 낳고 나면 다 달라져요”라는 말의 무게를 몸으로 겪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쓰는, 조금은 순진한 미니멀리스트 육아 선언문에 가깝습니다.
책이랑 유튜브로만 배웠고, 왜 육아가 ‘템빨’이라고 불리는지 아직 체감하지 못한 사람이에요.
그걸 알면서도 쓰는 이유는 단순해요. 철없다는 말 들어도 좋으니, 나는 정말 최소한으로, 덜 사들이고 덜 쌓아두는 방식으로 아이를 맞이해보고 싶습니다.
요즘 며칠은 출산과 육아 관련 자료를 들여다보는 게 제 일과가 됐어요.
발달 단계, 수유 방식, 잠 재우기, 안전… 읽을수록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것들이 눈덩이처럼 커지더라고요. 도대체 어디까지 준비해야 하는 걸까 싶을 정도로요. 그런데 그 끝없는 정보 속에서 이상하게 자꾸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이건 꼭 필요하지 않아요.” 모두가 필수라 말하는 물건을 어떤 전문가는 ‘없어도 된다’고 할 때, 저는 이상하게 안도했어요. 그래? 필요 없다면 그걸로 됐다. 그럼 빼자. 그렇게 하나씩 장바구니에서 내려두기 시작했습니다. 아직은 상상 속 육아지만, 상상하는 단계부터 가볍게 시작해보자는 마음이었죠.
첫 번째로 눈에 띄었던 건 유축기였어요.
출산 준비물의 대표 주자, 필수템의 상징처럼 말해지잖아요. 젖몸살 예방도 되고, 남편이 수유를 대신할 수도 있고, 모유 저장도 가능해서 엄마가 잠깐이라도 쉴 틈을 만든다… 그 모든 이유가 그럴듯했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초반 1~2주만직수로 수유 리듬을 잡아두면 굳이 유축기에 기대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아기와 몸으로 맞춰가는 과정 없이 기계가 모유량을 ‘결정해버리는’ 구조가 오히려 유축 의존을 낳을 수 있다는 말도 있었고요. 아직 제 몸에서 아무 일도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저는 그 말이 묘하게 설득력 있게 들렸습니다. “처음부터 직수로 가볼까?” 라는 마음이 조용히 자리 잡았습니다.
직수를 선택한다고 마음먹으니, 그 다음은 연쇄 반응처럼 따라왔어요.
젖병, 젖병 소독기, 젖병 건조대, 분유 관련 아이템들. 신생아 브이로그를 보면 주방 한쪽이 아기 수유 존으로 깔끔하게 세팅되어 있더라고요.
누군가에겐 든든한 풍경일 텐데, 제 눈엔 이상하게 ‘관리해야 할 구역’처럼 보였습니다. 피곤에 절어있는 엄마가 새벽마다 젖병을 씻고 소독하고 말리는 시간을 떠올리니, 오히려 그 시간에 가슴 풀어헤치고 젖 물리는 게 더 단순하지 않을까 싶은 거예요. 물론 현실이 그렇게 단순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저는 “일단 시작은 가볍게 해보자”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있습니다.
그리고 모빌이나 초점책 같은 시각 자극 아이템도 다시 보게 됐어요. 흔히 말하는 효과는 ‘시각 발달과 두뇌 자극’인데, 늘 같은 자리에 같은 모양으로 달려 있는 모빌이 정말 그 역할을 할까? 어떤 전문가의 말처럼, 아기가 제일 좋아하는 건 결국 사람의 얼굴과 표정, 그리고 손길이라는 이야기에 더 마음이 가더라고요.
아기가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장난감 대신, 얼굴 가까이에서 변하는 엄마아빠 표정, 조금씩 바뀌는 햇빛,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그림자가 훨씬 더 살아있는 자극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은 제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이상적인 집 풍경’이긴 해요.
신생아 필수템으로 늘 함께 묶이는 손싸개, 속싸개, 스와들업도 저에겐 고민거리였어요. “얼굴 긁을까 봐, 모로 반사에 놀라 깰까 봐”라는 이유는 너무 이해가 됐죠. 그런데 또 다른 관점에서는, 신생아가 자기 몸을 마음대로 휘젓고, 손가락을 바라보고, 감촉을 느끼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발달 자극이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움직임을 통제하는 물건이 잠은 더 잘 재울지 몰라도, 그 작은 움직임들 속에서 자라는 근육과 감각을 조금은 막아버리는 게 아닐까 싶은 거예요.
역류방지쿠션이나 바운서, 범보의자, 점퍼루, 보행기 같은 ‘자세를 대신 잡아주는’ 아이템들도 비슷한 고민이었습니다. 아기가 스스로 발달 순서대로 크고 있다는 말에 저는 이상하게 안심이 됐어요.
빨리 앉히고 빨리 걷게 하는 게 ‘도와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흐름을 흔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 무엇보다 크기도 크고 색도 요란해서 집 안 풍경을 순식간에 뒤집는 그 물건들을… 솔직히 저는 안 들일 이유가 생긴 게 반가웠습니다.
목욕용품이나 보습제, 콧물 흡입기 같은 소모템도 다시 체크해봤어요. “아기 피부엔 무조건 비싼 오가닉”이라는 말에 휩쓸려야 하나 싶었는데, 정말 필요한 시기와 범위가 생각보다 좁을 수 있다는 말에 또 마음이 흔들렸고요. 콧물 흡입기는 “코도 이제 기계로 빨아야 하나?” 싶을 만큼 신기했는데, 점막 건조나 자극 때문에 되려 권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보니, 굳이 위험을 안고 갈 필요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아이가 코찔찔이가 되는 게 더 자연스러운 성장일 수도 있잖아요. 가끔은 “필수”라는 말이 정말 필수라기보다, 엄마 마음의 불안을 겨냥한 단어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정말 ‘육아 한 번도 안 해본 티’가 나는 글이라는 걸 저도 압니다ㅠㅠ
밤새 깨고, 수유 때문에 울고, 내 몸도 내 것이 아닌 상태에서 이 모든 게 얼마나 다르게 보일지 아직 모르는 사람이니까요. 엄마들이 국민템을 추천하는 데에는 분명 다 이유가 있겠죠.
실제로 삶의 질을 끌어올려주는 물건도 분명 있을 거예요. 그걸 모르지 않아요. 다만 지금의 저는, 그 이유들을 다 받아 적기 전에 한 번쯤 “없어도 되는 길”을 상상해보고 싶었습니다. 덜 사들이고, 더 몸으로 부딪혀보고, 우리 집 리듬에 맞는 것만 천천히 들이는 방식으로요.
출산 후에 이 글을 다시 읽을 날이 오겠죠. 그때 저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요. “나 진짜 이걸로 버텼다”라며 은근히 뿌듯해할지, 아니면 “이때의 나, 참 용감했네”라며 웃어버릴지. 어쩌면 결국 플라스틱 세상과 적당히 화해하며 타협한 중간 지점에 서 있을지도 모르고요.
이미 필수템들로 빵빵하게 대기 중입니다.
그걸 보면서도 “그래, 일단 해보고 아니면 사면 되지”라고 말해주는 맥시멀리스트 남편 덕분에, 저는 더 가벼운 마음으로 이 이상적인 도전을 시작해보려 합니다.
지금은 아직 상상뿐이지만, 그 상상 덕분에 출산이 조금 덜 무섭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리고 이 기록을, 앞으로의 현실과 비교해보는 일기가 될 거라 생각하면, 벌써부터 조금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브런치스토리에서 열심히 활동을 해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