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직장인에게 “받은 만큼만 일하겠다”는 말은 무책임이나 냉소가 아니다.
오히려 직장 생활을 오래 버틴 사람들만이 도달하는, 현실적이고도 성숙한 결론이다.
나 역시 어느 순간부터 이 문장을 조용히 되뇌게 되었다.
몸이 상할 만큼 일해도 그 노력이 보상으로 돌아오지 않으며, 오히려 조금은 미련해보이기까지 한다.
더군다나 성과와 보상이 정직하게 연결되지 않는 구조에서 살아남으려면,
나의 리소스를 지키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결국 “받은 만큼 일하는 것”이다.
나는 경력 초반부터 수많은 견적서를 직접 작성해왔다.
포장만 다를 뿐, 견적이란 결국
“이 업무에는 이만큼의 비용이 발생합니다”, “이 금액을 주시면 이 정도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라는 합의에 가깝다.
그렇다 보니 회사가 단가가 높은 프로젝트에 더 집중하고,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합리적으로 보이는 구조가 정작 개인의 보상과는 닮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 견적 자체는 보통 수준이지만, 회사의 영업에 도움이 되는, 이른바 ‘네임밸류가 높은 업체’와 일을 많이 해왔다.
그러다 보니 직접적인 보상과는 오히려 더 멀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도 그런 경력이 지금까지 버티게 해준 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그 ‘감사’가 내가 감수해야 할 불합리까지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최근 몇 년간 나는 한 가지 변화의 흐름을 강하게 느꼈다.
더 이상 ‘이름 있는 회사와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되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잘나가던 대기업도 변화에 뒤처지면 순식간에 흔들리고,
반면 작은 기업도 K-문화의 확장과 디지털 시대의 흐름 속에서
대기업 못지않은 기회를 얻고 있다.
내가 최근 계약을 조율 중인 회사도 그런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다.
견적이 맞지 않아 여러 번 조율한 끝에 겨우 계약서를 준비하고 있는데,
정작 계약서가 체결되기도 전에 거래처의 요청에 따라 업무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그래서 계약 진행 상황을 문의했다.
그때 돌아온 대답은 이 한 문장이었다.
“곧 계약서 체결할 예정이니,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이 문장이 내 마음속에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이 말은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선을 넘은 발언이었다는 것을.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은 단순하다.
돈을 내는 만큼 일하고, 계약된 만큼 책임진다.
그 외는 모두 추가 비용이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이 명확한 원칙이 모호하게 흔들리는 순간을 마주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아름답게 포장된 압박,
즉 “적극적인 협조”라는 문장이다.
실제로 이 말은 개발사에게는 절대 하지 못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개발은 업무 범위가 명확하고, 변경이 생기면 즉시 비용이 발생하며, 애매한 말로 리소스를 끌어올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획이나 컨텐츠 영역에게는 너무 쉽게 이 말이 나온다.
왜일까?
그들의 선의를 비용 없이 활용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이 말은 요청이 아니라 정중하게 포장된 무상 노동의 요구가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 문장은 분명히 선을 넘는다.
노동은 자원이다.
그리고 그 자원을 적절히 관리하는 것은 프로페셔널의 기본이자 생존 전략이다.
받은 만큼만 일하겠다는 태도는
일을 대충 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잃지 않기 위한 가장 건강한 경계 설정이다.
우리가 선의를 강요받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그리고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받은 만큼 일하겠습니다.
그리고 선을 넘는 요구에는 응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