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애인콜택시 운전원이다

태권소년의 또 다른 비상

by 삐짐이


모모 씨를 만난 것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어간다.

대학병원에서 만난 부모님의 걱정스러운

눈빛 은 전신 휠체어를 타고 있는 앳된 소련에게 향해 있었다.

어린 나이 지만 키는 장신이었다.

부모님 은 한숨을 쉬며

그동안은 이 제도를 모르고 사설구급차를

타고 다녔는데 너무나 감사하다고 연신 인사를 하셨다.

"아이고~저희가 하는 게 아니라예!!

국가에서 하는 겁니다!!

그만 하이소!!"

나는 국가에서 법으로 정해서 해야 되는 겁니다.~

하고 말씀드리니까

아직 지방 소도시는 시행하지 않는다고 이래서 도시 살아야 되나?

하시며 웃었다.


대도시는 참 좋다는 말씀에

"어머니~ 거주하시는 지자체에 제도 도입 해달라고 해 보시죠??"

라고 질문하니

"아이고 마!! 아무리 캐도 군수가 꼼짝도 안 한다 아입니까!!~"


사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은 중증 보행장애인 150명 당 1대를 법정대수로 규정 하고 있지만

강제성 이 없다 보니 지자체장의 의지에 따라 도입 시기도 모두 다르고 도입 대수도 다르고 심지어 아예 없는 곳도 있다고 알고 있다.

항상 현장에서 느끼는 점이지만

교통약자들 중에서 또다시 차별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어떤 선진국도 완벽한 평등은 이루지 못했고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다.

왜?

어떻게 너무나 많은 장애유형과 지역별 편차를 일괄적으로 동일하게 서비스를

제공하겠는가

다만 그렇게 될 수 있게 노력하는 게

진정한 선진국 아니겠는가?

그러면 에서는 대한민국 은

선진국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만큼 문제점을 개선하는 속도가 빠른 나라가 있을까?


질적인 부분은 논외로 치자~^^


암튼 아버지도 한 말씀 거든다.


"병원 구급차도 진짜 못됐어요!~

이런 제도 알려주면 얼마나 좋아예??

5분 거리를 몇만 원이나 주고 다녔는데..

본인들 돈 벌라고 안 알려주고. 참말로!!"


사실관계는 모르지만

많이 들었던 말이다.

병원 관계자들이 장애인콜택시를 모른다고 하기에는 좀.. 그렇다.


가능하면 함께 살자


그렇게 긴 시간을 만나고 재활과정을 지켜봤던 입장에서~

!!~ 태권소년은 선수 출신이었고

여름에 친구들과 계곡에 놀러 갔다가

다이빙을 했는데 낮은 수심에 머리를 추돌했고 경추 마비가 온 것이다.

한순간

세상이 바뀐 것이다.

나도 세상이 바뀐 적이 있다.

작년에 건강이 안 좋아졌다.

무척 힘들었다.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마냥 보이던 일상들이 소중하고 대단하게

생각됐다.

제일 큰 부분이 고객들이었다.

어떻게 극복하고 운동하고 저렇게 웃으면서 극복하지??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최근 다시 만난 태권소년은 이제 30대 를

바라보고 있다.

고향으로 친구들 만나러 간다는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나는 10년 만에

무거운 주제를 던졌다.

모모 씨!!

'갑자기 바뀐 인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겨냈어요??'

그는 웃으며 얘기했다~

극복은 못했고 웃으며 살려고 노력하는 과정이고 혼자서 외출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고..

나는 진심으로 마음을 담아

"존경합니다!!"^^

라고 얘기 했다.

살짝 코등이 시큰했다.

진짜 존경스러웠고, 큰 사람으로 보였다.

항상 밝게 웃으면서 인사해 주는

모모 씨!!~

다시 만나면 본인 스토리를 글로 적었다고

얘기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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