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텍사스 사는 친구가 오랜만에 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대학생 딸이 전공을 생물학에서 컴퓨터공학으로 바꿨다고 했다. 부모의 말을 잘 듣는 착한 딸이라 아무래도 부모님 의견을 존중해서 내린 결정일테니 별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는, 요즘 AI의 대중화로 초보 프로그래머가 발 디딜 곳이 없어지고 있으니 그 아이가 졸업할 땐 하고 싶은 일을 찾기가 더 힘들어질 텐데... 그러나 친구에게 내 속마음을 말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부모 된 친구에게, 지금처럼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세계에서 이삼십 년 뒤떨어진 부모의 말을 듣는 자식은 망하는 거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분명 부모님 말씀을 잘 안 듣는 딸이다. 아버지는 가부장적 가장이셨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의견을 존중하셨는데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부터 학교 선생님이 되라고 입버릇처럼 강요하셨다. 그러나 난 선생님이 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만약 아버지 말씀을 따라 초중고 선생님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서 임용되었더라면? 난 지금 학부모 민원과 학폭문제에 시달리며 심리상담센터의 단골 내담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인도로 일하러 가겠다고 했을 때도 아버지는 후진국 가서 뭘 배우겠냐고 반대하셨으나 반대를 무릅쓰고 간 인도에서의 1년의 경험과 경력이 미국의 삶에 큰 도움을 주었다.
미국으로 유학 오겠다고 했을 때도 아버지는 연봉이 센 직장 그만두고 굳이 미국을 갈 필요가 있냐고 착실히 저축해서 결혼하고 집도 사라고 하시며 강하게 반대하셨다. 내가 아버지말 듣고 그냥 있었더라면 아마 쉰도 되기 전에 젊은 인재에 밀려서 은퇴했거나 구석진 사무실에서 근근이 연명하고 살았을 거다. 혹은 그때 그 남자 친구랑 결혼했더라면 현재 그의 아내처럼 아이들 낳고 주부로 살고 있겠지. 어떤 경우든 내가 원하는 삶은 아니다.
늘 보수적이셨던 아버지도 내가 어렸을 땐 이런 말씀도 하시는 앞서가는 분이셨다: "내가 살아보니 지금처럼 여자에게 기회가 많은 시절이 없었다. 앞으로도 더 기회가 많아질 테니 미리미리 준비해야 돼." 그러던 분이 막상 딸이 미래에 대해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면 본인이 결정한 목표를 강요하셨다. 1930년대생이신 아버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계획한 1970년대생 딸의 미래였다.
다행히도 겉으로는 아버지 의견에 따르지만 속으로는 늘 내 결정을 지지해 주시던 엄마가 밤마다 아버지를 조용조용 설득해 주셔서 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다 (배갯머리 송사는 정말 뛰어난 설득의 기술이다.) 그러나 종신직을 받을 때까지 늘 아버지의 푸념을 들어야 했다: "미국 가지 말고 계속 한국서 직장 다니면서 저축했으면 지금 서울에 아파트도 있고 자주 볼 수도 있을 텐데..." "그만두고 한국 와서 살지?" 서울에 아파트 없는 건 좀 아쉽긴 하지만 여기서 나름 잘 살고 있는데도 아버지는 자신이 그린 딸의 미래를 보지 못해서 못내 아쉬우셨나 보다.
아빠, 곧 은퇴하고 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늘 건강 챙기시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