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로 말하면 바보 되더이다

by 류지

일 년에 한두 과목을 일본 분교에서 가르치고 있어서 매 년 일본에서 한 달에서 석 달을 보내게 된다. 모두 미국인 학생들이라 일어로 수업하지는 않지만 일본에서 오래 생활하는 거라 2016년 첫 수업을 할 때 초급 일본어 교본을 사서 열심히 공부했다. 상점에서 필요한 것을 찾지 못했을 때 처음으로 일어로 말할 기회가 생겼는데 두어 번 질문을 해본 후로는 절대 일어를 쓰지 않게 되었다. 내가 일어로 말한 순간 일본 점원들의 태도가 급격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고객에게 습관적으로 지은 친절한 미소와 긴장된 태도가 내가 일어를 말하는 순간 은근한 비웃음과 풀어진 태도로 바뀌었다. 내 서툰 일어에 담긴 한국어 엑센트가 원인이었다. 재밌는 건 내가 영어로 말하면 점원들의 태도가 너무나 상냥하다는 거다. 영어로 물어보면 지나치다 싶을 만큼 친절하게 서툰 영어로 더듬거리며 대답을 해주는 반면 일어로 물어보면 대충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어떤 때는 제대로 된 대답조차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일어를 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일본 점원들만 탓할 건 아닌 게 한국에서도 한국어로 말하는 외국인에게 친절하지 않은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일했던 무역회사에서였다. 그 회사의 유일한 엔지니어였던 미국인 C는 아내가 한국인이라 종종 한국말로 농담도 하고 동료들하고의 일상 대화는 한국어로 하려고 노력했었다. 배운 지 얼마 안 된 서툰 한국말을 하면 회사 사람들이 대놓고 C를 바보취급하고 무시했다.


작은 무역회사였는데 사장과 엔지니어 C를 제외한 세 명이 서로 상무라 부르며 존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C만 이름으로 부르고 C와 아르바이트생들에게만 반말을 했다. 사실상 그 무역회사의 주된 일은 C의 설계와 디자인을 바탕으로 진행되었고 주된 프로젝트들도 그의 책임하에 있었다. C가 영어로 일을 진행할 땐 미국인 사장하고만 대화했는데 그럴 땐 영어에 서툰 상무들이 절대 C를 무시하지 않았다. C가 한국말을 할 때만 예외 없이 비웃거나 무시하는 거였다.


내게 보이는 그 상무들과 일본인 점원들의 공통점은 모국어로 외국인과 대화할 때 자신이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상무들은 회사에서 직책상 그리고 언어능력상 우위를, 일본인 점원은 일본이 한국보다 위라는 선입견으로 스스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실제로는 상무들도 C의 능력에 의존해서 살고 있었고 십 년 동안 두 나라를 오가며 지켜본 바로는 현재 한국은 문화적으로 생활 경제적으로 일본보다 앞서 있으면 앞서있지 전혀 뒤처져있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시각으로 상대를 본다.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한다고 믿을 이유를 순전히 자기 마음대로 찾아낸다고 할까.


요즘 한국에서 한국말로 길을 묻는 외국인을 자주 보게 되는데 지난 십 년 동안 그들을 무시하는 한국인들을 보지 못했다. 외국인이 한국말을 하면 더 관심을 갖고 기뻐해주는 모습을 오히려 많이 봤고 예전에 한국서 가끔 목격했던 인종차별은 근래 본 적이 없다. 물론 순전히 내 경험을 바탕으로 말하는 거다. 티비에 자주 나오는 한국말이 유창한 외국인들의 모습이 흐뭇하다. 어느 나라든 어느 언어든 어떤 사람이든 상대와 더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에는 보답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선입견에 지배당하는 사람들을 상대할 경우는 좀 다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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