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윤리, 세대를 걸친 국가의 책임

by 나팔수

[논단] 시간의 윤리, 세대를 걸친 국가의 책임


국가가 결정을 내릴 때 고려해야 하는 기준은 많다. 현실적 합리성, 경제적 타당성, 정치적 부담, 외교적 손익. 그 어떤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모든 판단 기준 위에 존재해야 할, 한 가지 불변의 원칙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 결정이 후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물음이다. 국가의 정책과 협상, 법과 제도는 모두 ‘현재의 국민’을 위해 만들어지지만, 그 결과는 ‘미래의 국민’이 감당한다. 따라서 국가는 언제나 후손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 원칙이 무너지면, 국가는 단기 이익에 눈이 멀고, 미래를 담보로 오늘의 편의를 사는 부도덕한 존재가 된다. 오늘의 한미관세협상을 바라보면 분명히 이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나는 미래 세대가 경제적 부담을 짊어지게 만들었고, 다른 하나는 두고두고 굴욕감을 떠안게 만든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사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자신의 삶이 비루해도 자식의 내일만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세대를 이어온 인간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부모의 잘못된 판단이 자식의 짐이 될 때, 그 사랑은 더 이상 축복이 아니다.

그건 사랑의 이름을 한 폭력이며, 책임의 탈을 쓴 방임이다.


국가도 다르지 않다. 기성세대가 내린 결정 하나하나는 결국 후손의 삶이 된다.

협상 한 줄, 법 하나, 예산의 방향 하나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세대의 운명을 바꾼다. 그런데 우리는 그 책임의 무게를 너무 쉽게 흘려보낸다. “그땐 어쩔 수 없었다”, “당시로선 최선이었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그 핑계는 결국 후손의 고통 위에 쌓아 올린 변명일 뿐이다.


후손에게 남길 수 있는 것은 세 가지다.

첫째,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희망과 자긍심. 둘째, 미래를 다시 일으킬 기회의 유산. 셋째, 우리가 남긴 짐과 책임의 무게. 이 세 가지 중 어떤 것을 남기느냐가 그 국가의 수준을 결정한다.


국가의 결정에는 반드시 시간의 윤리가 있어야 한다. 당장의 이익이 아니라, 백 년 뒤의 국민이 우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그 기억이 원망과 수치라면, 우리는 이미 문명을 배신한 것이다. 문명이란 건축물이 아니라, 세대 간의 약속이다. 그 약속이 무너질 때, 국가는 이름만 남은 껍데기가 된다.


부모가 자식에게 남겨야 할 것은 빚이 아니라 사랑이듯, 국가가 후손에게 남겨야 할 것은 부채가 아니라 가능성이다. 경제적 합리성이나 정치적 계산이 아무리 완벽해도 그 결정이 미래 세대의 희망을 끊는다면, 그건 이미 실패한 정책이다.


국가는 언제나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 결정이 우리의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그 물음이 사라진 순간,

국가도, 문명도, 인간도 스스로를 구원할 길을 잃는다. 문명은 세대를 건너는 윤리 위에 세워진다. 그리고 그 윤리를 잃은 문명은 더 이상 미래를 건널 다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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