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축복해주지 않은 그해,
나의 스무 살

by 추운겨울 자스민

그해 초겨울, 수능이 끝났다.

내가 더 이상 학교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기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스무 살의 해방감보다 더 먼저 찾아온 것은 집의 어둑함이었다. 낮이 깊어질 때까지 엄마는 방에서 신음 소리를 내며 괴로운 얼굴로 잠만 잤다. 모든 수능을 끝난 고3들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축제처럼 들떠 있어야 할 그 시기에, 나는 갈 곳도, 할 일도 없었다. 누구도 나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냉정한 현실이 공기처럼 밀려왔다. 누구도 내게 어느 대학을 가야한다. 대학가기 전엔 어떠어떠한 걸 해봐야한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내가 당장 할 일은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다행히 쉽게 어두컴컴한 지하 노래방 카운터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10시간의 고독과 새우깡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떤 날은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두꺼운 외투를 벗지 못한 채, 나는 카운터 뒤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길고 지루한 10시간. 나는 노래방 안주로 나오는 새우깡을 씹으며 시간을 때웠다. 오직 새우깡만큼은 원없이 먹을 수 있는 나의 식량이었다.

한창 세상의 모든 즐거움을 탐하고 싶을 그 나이에, 나는 지금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만족했다. 그 만족감은 역설적이게도 내가 겪었던 결핍의 크기만큼 깊고 컸다.


그것도 일이라고, 10시간을 꼬박 채우고 귀가하면 집이 그렇게 편하고 아늑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나만의 보상처럼, 매일 밤 라면을 끓여 먹었다. 어떤 날은 배가 고파서 두 개도 먹었다. 뽀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라면 냄새는, 그 차가웠던 지하의 냄새를 씻어주는 유일한 온기였다.

엄마는 심야 포장마차를 하러 나가고 없었다.

수능을 치른 딸에게 용돈은 커녕, 딸이 밤늦게 알바를 하고 돌아와 밥은 챙겨 먹는지 물어볼 여유조차 없을 만큼, 그녀도 괴로웠을 것이다. 어쩌면 딸은 커녕 본인의 목구멍에 풀칠하기도 버거웠던 그 놈의 장사. 나는 엄마를 원망하기보다, 그저 그녀의 고독을 이해하는 또 다른 고독한 존재가 되었을 뿐이었다.

나는 새우깡과 라면으로 채운 그 고독한 스무 살의 겨울을 통해 깨달았다. 평범함이란,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 사치라는 것을. 엄마가 해주는 밥한끼를 먹을 수 있다면 그 시절 세상 최고의 안락함이었을텐데..

그렇게 지하에서 보낸 나의 스무살의 모습이 요즘 매일 생각나서 그때의 내가 안쓰러워 미칠 지경이다.ㄷ

그리고 나는 지금, 그 평범함을 누리고자 30년을 쉴 새 없이 달려왔다.


오늘 퇴근 후 나는 내 아들과 치과에서 만나기로 했다.

지금 내 아들은 자신의 구강 구조가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치과 교정을 원한다.

나는 30년 전, 그 쓸쓸했던 겨울 내내 지하 노래방에서 벌었던 금액의 수 배에 달하는 돈을, 그의 '아주 약간 더 세련된 입모양'을 위해 주저 없이 일시불로 지불했다. 그것이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이자, 내가 그 시절 그토록 염원했던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단 한마디의 감사 인사도 없이, 문을 닫고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나는 다시 그의 기분을 살핀다.

"대학에 다 떨어지면 어떡할 거니? 재수를 하게 되면, 엄마가 부족함 없이 편하게 공부만 할 수 있게 지원해 줄게. 한 번 더 해볼수 있어..."


아이는 내 이런 간절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공부를 안 해서 너무 편하고 좋다"고만 한다. 온종일 집에서 노는 게 적성에 딱 맞다고.. 그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내 속에서는 서로다른 내가 싸우고 있다.

그시설 지하 카운터의 나를 떠올리며 재수하라고 엄마가 다 지원해준다는데 얼마나 큰 기회인 줄도 모르는 한심한 아들이 안타깝고 한심하다. 아르바이트는 할 생각이 없니? 집에 있으면 심심하자나. 했더니 별생각 없다는 듯 말하는 아이.. 눈치가 없는건지 정말 모르는건지.. "공부 안 할 거면 당장 나가서 돈 벌어라. 인생의 쓴맛을 좀 봐야 공부가 젤 편한줄 알지 너두 이제 밥값해야지." 라고 한바탕하고싶지만.. 내 아이가 속상한 건 싫으니깐. 내가 그렇게 하기 싫었던 그 추운 알바를 내 아이에게 강제로 시킬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웃으며 그의 방 문을 연다. "디저트 뭐 먹을래?"


나는 평생 결핍과의 싸움에서 이겨, 아들에게 평범한 편안함을 제공하고 있다.

내가 치열하게 싸워 쟁취한 지금의'안정'이라는 것은, 아이에게는 '위험할 정도로 편안한 늪'이 되었다. 그는 생존을 위해 싸울 필요가 없기에, 스스로 동기를 찾을 이유도 없다. 알바를 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내 아들은 지하 노래방의 냉기 대신 따뜻한 방에서 초고가의 새로구매한 기타를 치는게 유일한 낙이다.

내가 출근하는 동안 끼니를 못챙겨주니 그는 점심으로 원하는 음식을 시켜먹는다. 얼마인지 가격도 모른채 누구 카드인지도 모른채 그저 터치한번에 배고픔을 조금 기다리는 인내심? 만 있으면 식사는 아주 편하게 해결된다. 아니 오히려 뭘 먹어야 할지 골라야 하는 짓을 하는데에 약간의 에너지도 쓴다.

내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불우한 환경'이, 절대로 물려주지 않겠다고 한 그것보다

어쩌면 내가 만들어 준 '편안한 환경'이 아이를 더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다 내 아이는 바보가 될 것이다. 는 확신이 드는데 자칫 잘못했다간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라떼 이야기를 하기는 매우 조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