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쇼. 반갑습니다. ”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커다란 손을 내밀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발령받아 간 학교의 첫 출근 날이었다. 그는 나와 같은 대학교 출신으로 나보다 두 살 많은 선배였다.
박성의 선생님, 그를 생각할 때면 나는 영웅본색에서 장국영의 마지막을 지켜주던 ‘따꺼’ 주윤발을 떠올리게 된다.
어느 날 교육청에서 온 공문의 시행 안을 놓쳐 교감에게 엄청나게 혼나는 일이 생겼다. 교감은 신임인 나를 이참에 제대로 군기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에서인지 여러 선생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쥐새끼 잡듯 했다. 나는 구멍을 찾지 못한 채 쩔쩔매고... 그때 박 선배가 나서서 교감을 달래고 내 편을 들어 나를 궁지에서 빼내어 주었다.
체육선생답지 않게 그는 늘 부드러운 훈풍을 입가에 물고 다녔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혼집에 나를 가끔 불러서 자취 생활로 허기진 나의 식욕을 채워주고 노총각의 외로움을 달래주었다. 방과 후 그는 내게 테니스를 가르쳐 주었다.
그는 관내 교사들의 친목 행사인 배구 시합에서 엄청난 에너지로 선생님들의 경기를 이끌었다. 운동 신경이 없는 나를 부담이 적은 후방 한쪽 자리에 배치해 시합에 참여하게도 했다. 운동장에서 체육에 임할 때는 우락부락하니 무서운 얼굴일 때도 있지만 어떤 행사에 가기 위해 잘 차려입고 나서면 헌헌 대장부로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어느 땐가 동료 교사의 결혼식이 있어 같이 가는데 버버리 코트 자락을 흩날리며 마치 홍콩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성큼성큼 걷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뭇잎들이 곱게 물드는 가을날이었다. 학교의 친목회에서 인근 야산으로 등산을 하고 준비해 간 음식을 먹고 놀다 오는 행사가 있었다.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만 발을 헛디뎌 구릉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사고를 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지만 발을 접질려 걸을 수가 없었다. 그때 박 선배가 산 아래까지 업고 내려온 덕분에 곧바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박 선생님의 딸에게 ‘설희’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었다. ‘박’이라는 성과 잘 어울릴 듯한 어감과 눈처럼 깨끗하고 예쁘게 살아라는 의미를 담았다.
박선배와 헤어진 이십여 년쯤 지난 뒤였을까? 내가 근무하는 학교로 그가 전화를 걸어왔다. 여러 번의 전근으로 서로의 연락처가 끊긴 상태였다.
‘이 선생, 어제 티브이에 나왔대, 어떻게 잘 지내나? 야 반갑더라. 설희하고 같이 보다가 네 이름을 지어주신 선생님이라고 이야기해 줬다.”
당시 고등학교 삼 학년을 맡고 있던 내가 수능 다음날인가 방송국에서 나와서 한 인터뷰 영상을 본 모양이었다. 바쁘고 힘든 현실의 파고 속에서 우리는 또 서로를 잊었다. 간간이 그가 떠올랐지만 나는 끊긴 연락을 잇지는 않았다.
퇴직 후 나는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를 꼭 한번 만나보고 싶어졌다. 수소문 끝에 그를 아는 사람으로부터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이른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사람들은 좋은 날들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으로 착각하지만 빛처럼 그날들은 사라지고 만다. 박 선생님과 함께 다시 만나 옛날 일들을 떠올리며 즐거울 수 있으리라던 나의 소망은 허무하게 끝이 났다.
그의, 큰 형님 같은 푸근한 미소를 언제 또 마주할 수 있을까?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으니 저승을 믿을 수밖에 없다. 사람의 인연이란 것이 이렇게 허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