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브런치스토리]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어린 시절, 나는 생각보다 글과 가까운 아이였다. 교과서 귀퉁이에 시를 끄적이며 혼자만의 운율에 빠지기도 했고, 판타지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다른 세상을 헤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상상의 문을 열고 나온 현실의 온도는 사뭇 달랐다. 나는 이 차가운 현실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생존을 위한 선택지들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예술이나 문학 같은 단어는 내가 누려선 안 될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선택받은 다른 이들의 몫인 것만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활자를 탐닉했던 시기는 입시를 앞둔 고2, 고3 시절이었다. 나는 과학 서적 같은 전문 지식을 쌓는 것도 좋아했지만, 그 틈새로 파고드는 여행 에세이나 문학 작품에 더 깊이 매료되곤 했다. 특히 고전문학이 주는 묵직한 울림은 퍽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발 디딘 현실의 이름은 '과학'이었고, '숫자'였으며, 오직 '미래의 성공'뿐이었다. 만들기나 그림을 사랑했던 어린 날의 첫 번째 꿈을 포기했듯, 낭만이라는 이름의 천문학자라는 두 번째 꿈도 접었다. 늘 내가 밟고 서 있는 이 단단하고 건조한 현실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순례자의 길을 다녀온 뒤 그 경험을 글로 옮기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일었다. 하지만 나는 또다시 현실이라는 땅을 다져야 했다. 글쓰기는 내가 갈 길이 아니며, 그런 시도를 할 여유조차 없다고 스스로 다독였다.
그 미련을 다 버리지 못한 탓이었을까. 공대 복수전공을 하는 와중에도 '바다와 문학'이라는 수업을 찾아들었다. 기말 과제로 자신이 바다와 관련된 문학작품을 쓴다고 가정하고 글을 구상해 보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어느 날 교수님은 몇몇 글들이 눈에 띄게 좋았다며, 꼭 완성된 글로 써보았으면 좋겠다고 진심 어린 후기를 전하셨다. 특정인을 지칭하진 않았지만, 나는 그것이 마치 내 글을 두고 하는 이야기라 믿고 싶었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렇게 믿는 편이 좋았다.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대학생 문학상이라도 도전해 볼까 잠시 흔들렸지만, 내 앞에 놓인 현실이라는 거대한 화살표는 나를 다른 곳으로 눈 돌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였는지, 나를 옭아매는 족쇄였는지. 그렇게 나는 한 곳만 바라보며 달려왔고, 글쓰기의 꿈은 벽장 너머 다른 세상으로 유배되었다.
글쓰기는 꼭 내가 삶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릴 때만 유령처럼 다시 나타났다. 마치 환상을 보여주며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동아줄처럼 보였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여전히 현실에 발붙이지 못하고 있다며 스스로를 매섭게 다그쳤다.
가장 최근 글쓰기의 꿈이 다시 고개를 든 건,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였다. 한 명의 학자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세상에 도전해 볼 것인지 기로에 섰을 때, 글쓰기는 마치 세 번째 옵션인 양 벽장 틈으로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바보처럼 그것을 또 믿어버렸다.
안타깝게도 다른 여러 방황과 겹쳐, 글쓰기는 또다시 내 인생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사실 글쓰기 자체엔 아무런 죄가 없다. 그것은 내 마음 한구석에 끈질기게 자리 잡은 오랜 미련일 뿐인데, 나는 그것을 내 눈과 귀를 가려 현실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악마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우연한 계기로 용기를 내어 블로그를 시작했다. 이번엔 그럴듯한 핑계가 있었다.애드포스트를 달아보고 싶다는 경제적 이유와, 글쓰기가 아닌 기록과 정보를 전달하는 '생산적인' 글을 쓴다는 명분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 블로그의 글들이 점점 에세이를 닮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글을 쓸 때 비로소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 오히려 건조한 정보성 글을 쓰는 내 모습이 부끄러워지기까지 했다.
그러다 문득 브런치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 내가 쓰려는, 아니 쓰고 싶은 글에 조금 더 가까운 공간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엔 진짜 용기를 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작가 신청을 했고, 다행히 블로그에 적어두었던 몇몇 글 덕분에 무사히 작가로 선정되었다.
이제는 솔직하게 용기 내어 말해보려 한다. 어릴 적 문학과 글에 대해 가졌던 그 애정은 진심이었으며, 나도 결국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비록 오래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내 이름 석 자가 박힌, 나의 목소리와 인생이 오롯이 담긴 책 한 권을 써보겠다고 다짐한다.
언젠가 더 이상 논문이나 연구보고서 속 차가운 숫자가 아닌, 내 체온과 마음이 담긴 주관적인 언어로 세상과 마주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