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설이다.
남녀차별이 법으로 금지되고,
겉으로는 완벽한 남녀평등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직급이 올라갈수록
여직원을 찾아보기는 점점 힘들다.
나는 회사의 핵심인
"경영지원부문"에서 만 17년째 일하고 있다.
인사, 재무, 기획 등 이른바 Core조직으로 불리는 곳. 이곳은 숫자와 리스크를 관리하는 곳이자,
남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부서다.
이곳에서
30명 가까운 팀장 중,
여자는 단 한 명.
바로 나다.
그래서일까.
누군가는 나를 두고 이렇게 부른다.
"여직원들의 희망이자 전설이에요'"
신입 시절, 나는 "여자" 부하직원이었다.
경영기획팀에 배정받던 첫날,
날 위한 환영식에서
실장님과 팀장님은 거하게 취해
웃으며 말했다.
"나는 여자 부하직원이 처음이야."
"나는 여직원들 결혼하고 임신하고 이런 것 싫어한다.
팀에 전력에 차질이 생기거든."
그때는 그냥 웃으며 넘겼다.
시대가 그랬으니까.
그 말이 불편했지만,
대꾸할 용기보다는
나는 다르다는 것으로 증명하고 싶었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았다.
회사와 내 커리어가 인생의 1순위였다.
누군가는 내가 회사와 결혼했다고 했다.
상사가 시키기 전에 필요한 일을 먼저 했고,
화사와 팀의 일은 내 일처럼 챙겼다.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다른 부서와 의견이 부딪힐 때마다
여러 회의를 계속 만들어 설득하기도 하고
때론 협박하기도 했다.
싸움의 기술은 업무 능력만큼이나 중요했고
나만의 색깔이 있는 것이 필요했다.
결국 나는 회사 안에서 "브랜딩"을 만들었다.
순하고 참한 여자 직원이 아니라 "일 잘하는 사람"으로.
그리고 지금..
나는 조직에서
"여자 팀장"이자 "유일한 케이스"로 남아있다.
후배들은 나를 보고 말한다.
"선배님, 배우고 싶어요."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말 뒤에는 부러움과 함께
약간의 두려움이 섞여 있다는 것을.
여성으로서,
이 자리에 오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로맨틱하지 않았다.
나는 편견과 불평등을 이겨내지 않았다.
오히려 순응하고 내 것을 포기함으로 극복했다.
내 커리어는 그저 끝까지 버텨낸 결과였다.
시대가 바뀌었다.
술자리에서 내가 신입 때 들었던
성차별적인 발언을 하면
노동부에 신고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여직원"이 팀장이 되기에는
보이지 않은 많은 벽들이 있다.
여성에게 결혼과 임신은
여전히 승진과 커리어에 장애물이다.
성과가 높고 열심히 일해도
옆에 있는 또래 남자 직원들이
상사에게 나보다 우선순위가 높다는 것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나처럼 결혼도 출산도 하지 말고
회사를 내 전부처럼 일해야
이정도 올 수 있다 말하고 싶지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 있는 벽들을
억지로 허물려하기보다
버티며 길을 만들어 가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
포기만하지않으면
반드시 길은 생긴다.
그리고
먼저 그 길을 걸어온
나 같은 선배들이
함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