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September 22 (2024)
금번 뉴욕 여행을 하며 '왜 결국엔 뉴욕을 고르게 되는 걸까?' 하는 주제로 많은 고민을 했다.
어떠한 이유 때문일까?
본인의 정규직 인생 첫 휴가, 많은 여행 후보지가 있었다.
어느덧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지 만 2년이 넘은 런던, 가장 친한 친구들인 Loup와 Assel이 사는 파리, 멘토 형이 MBA 유학을 하고 있으며 놀러 오라고 권했던 샌프란시스코.
그런데 결국에는 또 자주 갔던 뉴욕을 골랐고, 2024년 52주 가운데 최고의 2주를 보내고 돌아왔다.
맨해튼 곳곳을 여행하는 와중에, 중간중간 다리가 지쳐 Bryant Park 혹은 Washington Square Park에서 휴식하는 와중에, 버스를 타고 숙소가 있는 뉴저지로 향하는 와중에,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와중에, 이 도시에 대해 정말 많이 사색했다. 또, 금방 휘발될지 모르는 이 감정들을 하나하나 메모장에 옮겼다.
이 글에는 Frank Sinatra 아저씨의 'Theme from New York, New York'보다는 Lady Gaga 선생이 커버한 버전의 그 곡이 더 잘 어울릴 듯하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 본인이 지금 그 곡을 들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아래로는 뉴욕에 대해 내가 떠올린 여러 단상들을 두서없이 우르르 나열해 볼까 한다.
첫째, 착륙할 때 느끼는 특유의 두근거림이 좋다.
뉴욕 JFK 공항에 착륙할 때면 기장님의 안내 방송이 끝나는 대로 위에서도 언급한 Frank Sinatra 아저씨의 'Theme from New York, New York'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 순간 느끼는 두근거림이 참 좋다.
본인도 참 고집이 심하고 독특한 사람이다 싶은 것이, 2023년도에 보스턴으로 계절학기를 들으러 간 때에도 굳이 인생 첫 미국 착륙은 뉴욕에 해야겠다는 고집이 발동하여 이를 실행에 옮겼다.
그 당시에는 'Theme from New York, New York'에 이어, 빌리 조엘 아저씨가 부른 'New York State of Mind'가 흘러나왔는데 정말 비행기 문이 열릴 때까지의 긴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둘째, 낯선 사람들과 주고받는 인사가 꽤 따뜻하다.
혹자는 New York 이 참 차가운 도시라고, 서울과 가장 닮은 도시라고 한다. 그런데 내가 작년과 올해 경험하고 있는 이 도시는 서울과 많이 다르다.
특히나 전혀 모르는 사이인데도, 두리번거리다 눈을 마주치면 먼저 싱긋 웃으며 Hi라고 인사하는 사람들이 이 도시엔 정말 많다. 여성들만 매번 내게 그렇게 인사한다면 잠깐 오해를 했겠지만,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눈만 마주치면 미소와 Hi를 남발한다.
뉴욕 사람들이 Hi 만큼이나 남발하는 단어가 하나 더 있다. 그건 바로 Sorry 다. 이는 런던에서도 참 자주 느끼고 감동했던 요소들 가운데 하나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영국 사람들이 하루에 Sorry를 평균 70번 이상 말한다나 그랬다.
뉴욕도 매한가지다. 도심이 좁고 번잡하고 어수선한 만큼 사람들이 자주 부딪히고, 와중에 다들 바쁘기까지 하니 뛰어다니기까지 한다. 그러나 부딪히거나 새치기를 해야 할 때, 어깨나 발끝만 살짝 닿을 때, 그냥 별 일이 없을 때도 "Sorry! “를 남발하는 사람들이 이 도시엔 참 많다.
사람 사는 곳 같아서 좋다.
셋째, 모든 문화의 중심에는 뉴욕이 있다.
내가 말한 문화에는 미술, 음악, 영화, 스포츠 등 모든 장르가 다 포함된다.
처음 뉴욕에 갔을 때 맨해튼 미드타운 길거리 공실 같은 공간에서 야요이 쿠사마의 전시회가 열리는 모습을 보고 모든 문화가 모이는 이 도시에 큰 충격을 받았다.
작년에는 비행기에서 일부러 Rainy Day in New York을 다시 봤는데, 올해는 별 다른 의도 없이 영화 제목만 보고 영화를 골라서 오갈 때 각각 세 편씩 총 여섯 편을 보았다.
갈 때: 챌린져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인셉션
올 때: 1947 보스턴, 싱스트리트, 어거스트러시
정말 공교롭게도 가는 비행기에서 처음 봤던 '챌린져스'는 미국 US Open 챔피언십이라는 뉴욕에서 펼쳐지는 테니스 그랜드슬램이 정말 수시로 언급되고 영화 속에 등장했고, 두 번째로 본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영화 촬영지 자체가 맨해튼 한복판이었다.
오는 비행기에서 아무 생각 없이 틀었던 '어거스트러시'는 정말 오래간만에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큰 여운을 내게 주었던 영화였는데, 길거리 공연을 하는 장소가 위 사진 속 분수대가 있는 워싱턴 스퀘어 파크라든가, 엔딩 장면에서 센트럴파크에서 열리는 공연이라든가, 처음 남주와 여주가 마주하는 곳도 워싱턴 스퀘어 파크라든가, 그 모든 공간들이 더는 영화 속 낯선 장소로 느껴지지 않았다. 하도 걸어 다녀서 그런지 이제 주인공이 장소를 이동하는 것만 봐도 이 아베뉴에서 저 아베뉴로 걸었겠구나 하는 상상들이 펼쳐졌다. (뉴욕은 아주 특수한 몇 거리를 제외하면 모든 도심이 행과 열로 구분되어 있어 Street과 Ave 만 기억하면 지도 없이도 모든 곳을 갈 수 있다.)
내가 만약 맨해튼에 거주하는 시민인데 내가 보는 모든 고전, 현대 명작 영화들의 배경이 내게 익숙한 곳이라면 어떨까? 정말 내 일상 하루하루가 끝내줄 것 같았다. 특히 '비긴어게인'처럼 내가 열 번도 넘게 돌려본 영화가 우리 집 앞에서 촬영되었다면 이 영화 블루레이 CD 따위를 내 무덤에도 가지고 들어갈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비단 미술과 영화만이 아니라, 테니스 그랜드슬램 중 하나인 US Open이 매년 초가을 뉴욕에서 개최된다. 나는 작년에 준결승과 결승을 직관한 데 이어, 올해는 가장 응원하는 노박 조코비치의 R3 경기를 직관했다. 매년 그 해 연도가 적힌 모자를 하나씩 구입하는 재미도 있다.
전 세계 최고의 인기 야구팀인 뉴욕 양키스 말고도 오랜 역사와 근본을 가진 뉴욕 메츠가 뉴욕의 위와 아래 양 끝에 연고하고 있다. 그 밖에도 미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인 NFL에서도 역시 뉴욕은 다른 것이, 제츠와 자이언츠라는 두 팀이 비록 실력은 잼병이지만 뉴욕에 연고지를 두고 있다.
이번에는 내가 재직 중인 회사의 몇 안 되는 복지를 이용해 보고자 MOMA에 방문했는데 또 다른 충격을 받았다. 뭐 미국이고 뉴욕이니 당연히 앤디 워홀이나 잭슨 폴록 같은 작가의 작품들은 많이 보유하고 있겠지 하고 심드렁했는데 정작 올라가 보니 상설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말 너무 많은 걸작들이 쌓여 있었다.
뉴욕 MoMA에서 가장 마음에 든 작품은 ‘위험에 처한 암살자’였다. 정작 가장 마음에 든 작품은 오래 멍 때리며 관람하느라 사진을 찍지 않았고, 그 밖에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몇 점찍어 두었다.
나는 전시의 완성이 전시장을 지키는 관람객들이라고 생각한다. 찍을 자유가 찍힐 자유에 우선하는 국가(대표적으로 미국)에서는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관람객과 작품이 어우러진 사진을 찍곤 한다.
MoMA는 단순히 작품 구성 측면에서만 전 세계 현대 미술관 중 최고가 아니었다. 크게 두 가지를 느꼈다. 첫째, 모든 관람객을 고려하여 전시를 설계하고 편의를 제공한 것이고, 둘째, 작품 외에 전시관 자체도 하나의 전시로 생각한 듯한 느낌의 건축 스타일이었다.
MoMA는 정말 훌륭한 Diversity를 구현해 두었다. 매 층마다 화장실이 있었는데, 모든 화장실이 비장애인과 장애인 공용 사용 가능한 널찍한 형태였다. 영유아를 동반한 관람객은 기저귀를 교체할 수 있는 패드도 배치해 두었다. 이는 Diversity 측면에서 참 갈 길이 먼 우리나라와 달리 보고 배울만한 지점이라고 느꼈다.
뿐만 아니라, 물통 하나만 들고 다니면 값비싼 물을 구입하지 않아도 되게끔 각 층마다 fountain이 놓여 있어서 촉촉한 목구멍으로 전시를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전시를 보러 갈 때면 일회용 종이컵이 잔뜩 버려져 있고 바닥에는 일회용 종이컵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물이 흘러 지저분한 정수기 근처를 보곤 하는데,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개인 물통을 들고 다니는 문화가 활성화되었으면 한다고 느꼈다.
두 번째는 바로 곳곳에 마련된 우아한 휴식 공간과 마치 창밖의 풍경도 하나의 큰 그림이라고 이야기하는 듯한 통창의 채광에 대한 느낌이었다.
최근에 리움에 갔을 때는 전시를 다 보고 좀 작품을 소화시킬 만한 벤치나 의자 따위가 적어서 아쉽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곳에는 과장 좀 보태 모든 관람객이 다 앉아도 될 만큼 많은 벤치가 깔려 있고 가운데에는 크디큰 수목원 수준의 나무와 꽃을 심어두어 마음이 참 편안하고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넷째, 뉴욕 사람들 특유의 오지랖이 꽤나 마음에 든다.
뉴욕을 경험하는 동안 몇 가지 재미난 일을 겪었다. 결국엔 그 도시의 사람이 그 도시에 대한 한 사람의 생각을 규정한다. 내가 만난 뉴요커들은 내가 이 도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끔 했다.
한 낯선 백인 남성 공무원이 나를 불러 세웠다. 맨해튼 강변을 따라 러닝을 마치고 무릎 보호대를 한 채로 다운타운을 걷고 있던 때였다.
도로 재건 공사를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 복장의 한 백인 남성이었다. 처음에는 이어폰을 착용하고 있어서 못 들었는데, 그가 내게 다가와 내 팔을 톡톡 두드렸다. 이윽고 내 무릎을 가리키며 무릎이 불편하냐고 물었고, 나는 그저 protection 목적이라고 감사하다고 웃었다.
그러자 그가 자신의 꽉 맞고 무거운 공사복을 낑낑 걷어올리더니 자신의 무릎 보호대를 내게 보여주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이 보호대가 정말 최고라며, 무릎이 안 좋은 데 철심이 무려 두 개나 박혀 있어서 이걸 한 뒤로는 작업 현장에서도 멀쩡하다고 내게 제품을 소개해주었다.
그날 나는 뉴욕이라는 한없이 차가운데 한없이 따뜻한 이 도시가 너무 좋다고 다시 한번 느꼈다.
며칠 뒤에는 여느 때처럼 뉴욕에서 일정을 마치고 뉴저지로 돌아가기 위해 Port Authority (한국으로 치면 고속터미널)로 향했다.
Fort Lee 돌아가는 158번 버스 줄이 너무 길어 순간 당황해서 앞에 서있는 30대 백인 남성에게 ”이거 158번 줄 맞아?”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가 “나도 너랑 정확히 같은 생각하고 있었어ㅋㅋㅋ" 하면서 웃었다.
나는 주로 밤 11시 넘어 버스를 타서 이 정돈줄은 몰랐다고 했더니, 자기도 8시 반 이럴 때 타서 이건 마치 Brand New 경험이라면서 “우리 이 새로운 모험 한 번 즐겨보자!"라며 주먹 하이파이브를 대뜸 건넨 것이었다.
이렇게 퇴근하면서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도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농담으로 풀어 넘길 수 있는 재치가 있다면, 직장에서 만나더라도 너무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겠다 싶었다.
나는 서울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I LOVE NY 티셔츠가 유독 왜 그리 불티나게 팔리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