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풀니스>를 읽으며 하게 된 생각
’잘 지내요?’라고 물으면 ’아이고, 요즘 다니는 직장에서는 아주 불의가 판을 쳐. 다들 정치적이야.’라든지, ‘물가가 너무 올라 걱정이야. 전쟁은 또 왜 일어나는 거야?‘, 또는 ‘아주 세상이 너무 팍팍해져. 옛날엔 안 그랬는데.‘와 같은 답을 자주 듣는다. 그리고 그 말을 들으면 맞장구를 치게 된다.
당연히 걱정할 일들이다. 진지한 마음으로 불의에 맞서거나 세상을 더 좋게 만들려는 이야기를 우리는 당연히 해야 한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 맞장구를 치거나 걱정을 더 덧붙여 길게 이어가는 이유는 진심 어린 걱정에 기인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냥, 맞장구치지 않으면 왠지 세상 물정 모르는 우매한 사람이 되거나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 말에 맞장구를 치다 보면 어느새 나 또한 그런 말을 입에 달게 되고, 이는 세계를 나아지게 하기는커녕, 나의 하루하루를 피폐하게만 한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 만나게 된 책 <팩트풀니스>. 이 책은 객관적 자료들을 근거로 들며 세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극단적인 이분법적 시각을 지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렇다고 부조리, 불의를 외면하라는 것은 아니라고도 덧붙이며 책에 대한 오해를 방지한다. 세계를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바라볼 때에야 타당한 대안과 대책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지도자나 지배자의 입장이 아닌 일반 구성원인 내 입장에서 어떠한 관점이나 자세를 취해야 할까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일반 구성원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조금만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다.
세상의 부조리와 불의를 짚어내고 비판하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나, 그런 극단적 배경까지는 설정하지 않지만 유사한 주제를 다루는 문학 작품들도 결코 지배자나 지도자들만을 탓하지는 않는다. 작품 안에 우매하거나 이기적인 구성원들을 등장시키거나, 독자가 읽고 나서 생각하게 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사회 구성원들의 역할 또한 강조한다. 즉, 깨어있는 정신으로 세상의 불의를 냉철하게 감시, 감독하여 그것을 타파하거나 더한 불의를 방지하는 것이 구성원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동시에 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해 온, 그리고 들어온 걱정의 말들이 단순한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글 초입에 쓴 것처럼, 최근 들어 걱정과 한탄의 말을 많이 하고 듣는다. 그리고 그런 말을 듣고 맞장구칠 때마다 내 하루가 피폐해짐을 느낀다고도 했다. 그런데 이쯤에서 반성한다. 여전히 존재하는, 그리고 앞으로도 존재할 부조리와 불의에 대해 막연하고 습관적인 비관의 자세를 취해온 것이 바로 ‘나’는 아닌지. 한 가지 더 반성한다. 어느 누구들에게 삶의 피폐함을 조금이라도 안겨 준 이가 바로 ‘나’는 아닌지.
‘나’와 ‘누군가’의 삶에 피폐함을 더할 뿐 아니라, 스스로 내뱉는 습관적 비관과 한탄 때문에 내 안의 두려움이 더 자라나 재빠르고 냉철한 해결 방안이나 해야 할 일을 찾지 못하거나 미뤄온 것은 아닌지. 그것 때문에 더욱 나을 삶이 또다시 피폐해지는 것은 아닌지…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거나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 잘못을 지적하고 한탄하거나 소리만 지른다면 나아지는 것은 없다. 차분히 생각하고 정말 필요한 말을 아이와 나누며 도울 일이나 방법을 찾을 때에야 합리적이고 타당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세월을 막을 수 없기에 육신의 나이는 먹어가지만, 죽을 때까지 삶을 배워 나가고 문제 해결 방법을 터득해야 하는 아이와 같은 ‘나’와 ‘우리‘이다. 동시에 이러한 ’나‘와 ’우리‘ 안의 아이들을 보듬어야 할 부모이기도 하다.
문제들을 외면하지는 말되, 습관적으로 한탄만 하지 말고, 소리만 지르지 말고 냉정하게 우리를 살피고 도울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