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독일 운전면허 따기

by 마리아 장

벌써 18년 전 일이다. 한국에서는 따지 않은 운전면허증을 독일에 와서 서른이 되어서야 따게 되었다. 독일은 한국에 비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불편한데, 직장에 다니고 아이도 여기저기 데리고 다녀야 했기에 운전면허증을 따기로 하였다.

동네에 있는 운전 학원에 가서 등록을 마치고 20시간(지금은 24시간일 거다.)을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이론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독어를 잘하지도 못했던 데다가 운전 이론과 관련된 표현들은 거의 공부해 본 적이 없던 터라, 수업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독일의 운전학원은 규모가 매우 작아서 작은 사무실 같은 교실에 모여 앉아 수업을 듣는데, 정년을 앞두신 할아버지 선생님은 매우 빠른 속도로 말씀하시며 매우 열정적으로 수업을 하셨고, 학생들에게 질문을 자주 하셨다. 선생님이 질문을 하실 때면 나는 선생님과 시선이 마주칠까 두려워 책상을 바라보기 일쑤였다. 그런 나를 알아보신 선생님은 나에게 한 번도 질문을 하지 않으셨다.

독일에서는 16세부터 면허를 취득할 수 있어 나를 제외한 학생들은 그야말로 ‘틴에이저’들이었고, 사탕 먹는 학생, 초콜릿 먹는 학생들 옆에 앉아 수업을 듣기가 참 쑥스러웠다. 게다가 내가 알아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들 눈치채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수업을 듣던 어느 날, 실기 연습을 하자는 전화를 받고 학원으로 갔다. 도로 옆 학원 앞에는 자동차 한 대와 선생님이 서 있었고, 선생님은 나를 보자마자 “타세요!”하며 자동차에 올랐다. 눈이 휘둥그레진 나는 “그냥 바로 운전해요?”하고 물었고, 선생님은 “걱정 마요, 내 자리에도 액셀과 브레이크가 있으니까요.”라고 하셨다. 옆자리에 앉으신 선생님의 발 밑을 보니 정말로 페달들이 있었다. 그렇다, 독일에서는 실기 연습 첫 시간부터 바로 자동차를 타고 도로로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도로의 운전자들은 운전 학원 차라는 것이 차 여기저기에 표시되어 있으면 모두 조심해 주고 느려도 이해해 준다.

운동 신경과 공간 지각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나는 옆자리의 선생님을 놀라게 하기 일쑤였고, 그때마다 선생님은 이마를 손으로 짚으시며 “아니, 왜! 문제가 도대체 뭡니까?”라며 화를 내시곤 하였다. 그런데 한 번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셨는지, 한적한 곳에 차를 대게 하시고는 시동을 끄라고 하셨다. 그러고는 “도대체 뭐가 문젭니까?”라고 하시며 나를 빤히 바라보셨다. 나는 기죽은 목소리로 “대학 입시보다 더 어려워요. 그게 다예요.”라고 했고, 선생님은 웃음을 터뜨리며 “아이고, 어떡하냐? 출발합시다!”라고 하셨다.

드디어 필기 시험일이 되었다. 함께 배운 학생들끼리 학원에 모여서 시험을 보고, 시험관이 와서 감독을 한 후 즉석에서 한 명 한 명에게 손으로 채점한 시험지를 줬다. 그렇게 감독관이 채점을 하여 주다가 두 명의 시험지를 남겼는데 하나는 나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학생의 것이었다. 그리고 감독관의 채점하는 손을 보니 한 장은 불합격이고 한 장은 합격이었다. 학생들은 당연히 내가 불합격을 했을 것이라 생각하며 나를 짠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고, 다른 한 명에게는 소리 나지 않는 ‘나이롱 박수'를 쳐 주기도 하였다. 그때 감독관이 물었다.

“XXX 씨가 누구인가요?”

나는 손을 들며 그에게 나아갔고, 감독관은 말했다.

“오, 오늘 유일한 만점자군요!”

다른 학생들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기뻐하며 시험지를 받아 들었다. (시험지는 감독관이 다시 수거해 간 것으로 기억한다.) 그 시험을 위하여 나는 모의고사 문제집에 나오는 모르는 단어들을 사전을 찾아가며 외웠고, 문제들까지 해석하고 외웠는데 공부하는 모습만 보면 무슨 대입 준비를 하는 것 같았을 게다.

그렇게 이론 시험을 통과한 뒤 실기 시험을 보게 된 나는 하필 시험 당일에 몸이 아파 시험을 미루게 되었고, 운전 선생님은 “오히려 잘됐어요.”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해 주었다. “오히려 잘됐다.”는 말은 설명하지 않아도 뻔한 의미… 그리고 연습을 더 한 뒤 시간이 흘러 실기 시험을 치르게 되었고, 마침내 운전면허를 따게 되었다.

내가 운전면허를 따던 순간 할아버지 선생님께서는 “이야!” 하고 환호하시고 뛸 듯이 기뻐하시며 나와 기쁨의 포옹을 나누었다. 그런데 어째 선생님의 환호가 나를 더 이상 가르치지 않으셔도 된다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반은 섞인 듯한 그 느낌은… 하하하… 그냥 기분 탓이었을까?

운전면허증은 감독관이 미리 만들어 온 후 실기 시험을 본 그 자리에서 합격을 하면 건네준다. 그렇게 면허증을 받아 든 나는 집으로 돌아와 15분을 고민하다가 우리 집 차를 몰고 5분 거리에 있는 주유소에 가 주유를 해 보기로 하였다. 그 당시 독일에서는 수동으로만 면허증을 딸 수 있었던 시절이었고, 시동을 빨간 신호등 앞에서 몇 번을 꺼뜨리며 주유소 근처로 갔다. 그런데 주유소 안으로 들어가기가 두려웠던 나는 그냥 주유소를 그냥 지나쳐 집으로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다음 날, 학교에 운전을 하고 출근을 한 나는 쉬는 시간마다 ‘집으로 어떻게 운전해서 가나… 잘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을 매번 해야 했고, 교실 창 밖으로 보이는 차를 보며 한숨을 계속 쉬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어떻게 운전해서 집에 가나'하는 걱정 없이 이 글을 쓰고 있다. 지금은 추억이 된 면허 따기, 한국에서 거쳤더라면 별 것 아니었을 그 과정이 지금 나에게는 멋지고 굉장한 추억이 되었다.

한국에서 하면 간단할 일도 외국에서 하면 너무 어려운 경우가 있다. 참으로 어렵고, 스트레스받는 일이지만, 그래도 그것들이 굉장한 추억들과 나 자신을 기특하게 여길 기회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 참 좋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