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답노트1
어떤 수학공식보다 명쾌한 신호
오후 3시, 수업시작을 알리는 알람처럼 승관에게서 카톡이 왔다. 평소라면 어머니를 통해 전달되었을 연락이 아이의 손에서 직접 도착한 것이다.
[선생님, 저 오늘 학교에서 해야 하는 게 있어서 좀 늦게 가도 되나요?]
나는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대답 대신 눈만 껌뻑거리던 아이, 수업이 끝나면 인사도 없이 서둘러 등을 보이던 아이였다. 그런 승관이가 직접 양해를 구하다니, 내게는 그것이 어떤 수학 공식보다 명쾌한 '긍정의 신호'로 읽혔다. 뒤이어 도착한 메시지는 더 놀라웠다. 고작 15분에서 20분 정도 늦을 것 같다는 예고. 아무 연락 없이 30분씩 지각하던 예전에 비하면, 승관이는 지금 자신만의 속도로 성실의 궤도에 진입하는 중이었다.
약속한 시간만큼만 늦게 도착한 승관의 얼굴에는 미안함과 설렘이 교차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니?"라고 묻자 아이의 입이 기분 좋게 열렸다. 내일이 졸업이라 교실청소를 했다는 투덜거림 속에는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아이는 묻지도 않았는데 주머니에서 '인생네컷'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여주었다. 알록달록한 프레임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 그 화사한 웃음을 보니 마지막 날까지 청소를 시키느냐며 짐짓 호들갑을 떨던 내 마음도 봄눈 녹듯 녹아내렸다.
역방향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
본격적으로 시작된 수업. 오늘의 주제는 '문자식의 계산'이다. 곱셈과 나눗셈의 기호를 생략하고, 거듭제곱을 사용하며, 분수꼴로 식을 정리하는 과정. 초등 수학의 원리를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약속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히는 단계다.
승관이는 이번 숙제를 하느라 머리가 아팠다고 엄살을 부리며 프린트를 꺼냈다. 펼쳐진 종이 위에는 승관이가 직접 개념을 적용하고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단순히 답만 적어 넣던 예전과 달리, 보기에 나온 식 하나하나를 정성껏 풀어낸 흔적들. 글씨는 평소보다 조금 더 크고 반듯했다. 비록 지난 시간에 주문했던 '다른 풀이방식'을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아이는 최선의 정성을 다해 복습해 온 것이다.
"승관아, 분수 모양을 보면 어떤 계산이 생략된 걸까?"
질문 앞에 아이는 잠시 침묵했다. 아이들에게 있어 'a나누기 b'가 'b분의 a'가 되는 것은 익숙하지만, 거꾸로 분수를 보고 나눗셈을 떠올리는 것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만큼이나 낯선 일이다.
스스로 개념을 연결하는 아이는 드물다. 만약 모든 아이가 처음부터 길을 잘 찾는다면 나의 직업은 진작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대개 숫자만 보면 계산부터 하려 들고, 글로 된 조건 앞에서는 눈을 감아버린다. 그럴 때 내가 해야 할 일은 대신 문제를 읽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직접 개념과 조건을 연결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다.
"그 길이 맞니?", "왜 그렇게 생각하니?" 끊임없이 묻고 확인하며 아이가 한 걸음씩 내딛게 하는 것. 그것이 나의 의무이자 매일의 과업이다.
구멍을 메워가려는 의지
수업의 끝자락, 지저분한 유리수가 가득 섞인 복잡한 혼합계산 문제 앞에서 승관이는 결국 계산 실수를 하고 말았다. 통분을 잘못했다며 멋쩍게 웃는 아이를 보며 나도 함께 허탈하게 웃었다.
수학이 그렇다. 개념이라는 큰 구멍 하나를 메우고 나면, 연산실수라는 예상치 못한 작은 구멍이 또 불쑥 튀어나온다. 하지만 인생도 수학과 닮아 있지 않은가. 하나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서 삶이 곧장 매끄러워지지는 않는다.
분명한 것은 오늘 승관이가 보여준 직접 보낸 카톡 한 통, 반듯하게 써 내려간 풀이 과정, 그리고 틀려도 다시 웃으며 연필을 잡는 마음이 그 구멍들을 조금씩 작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완벽한 정답보다 중요한 것은 구멍을 메워가려는 의지다.
나는 오늘도 그 곁에서 기꺼이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주기로 마음먹는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 우리는 지금 함께 올바른 방향으로 걷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