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L-003: 웃는 입

대체 불가능성에 따른 부가가치 형성 특징

by 고래의 전령


웃는 입 곡선

‘웃는 입 곡선(Smile Curve)‘을 아시나요?

대만 PC 제조사 에이서(Acer)의 창업자 스탠 시(Stan Shih)가 제시한 개념으로, 하나의 제품이 만들어지고 소비되기까지 각 단계에서 부가가치가 어떻게 분배되는지를 설명하는 그래프인데요.

Acer가 속한 PC산업의 웃는 입


가로축은 제품의 흐름입니다. 기획·설계에서 시작해 제조를 거쳐 유통·판매·서비스로 이어지죠.

세로축은 각 단계가 차지하는 부가가치의 크기입니다.


이 그래프가 흥미로운 이유는 많은 산업에서 비슷한 모양이 반복된다는 데 있습니다.

대개 가운데, 즉 직접 만드는 제조가 가장 낮고 양끝이은 높게 솟는데요.

그래프가 마치 입꼬리가 올라간 듯 보여서 “웃는 입 곡선“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자연스러운 반문이 생깁니다.


“가장 많은 노동과 자본이 들어가는 건 제조 아닌가요?

왜 가장 힘든 구간이 가장 적게 가져가죠?”


이 질문이 곡선의 핵심입니다.

답은 간단히 말해 가치가 ‘노력’이 아니라 ‘대체 불가능성’에서 나온다는 데 있습니다.




입꼬리는 왜 올라갈까?

제품의 전 과정을 생산 전후로 단순화하면 세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단: 제품을 어떤 방법으로 만들 것인지 정하는 단계

•중단: 정해진 방법대로 실제로 만들어내는 단계

•후단: 만들어진 제품이 선택되게 만드는 단계


이 세 단계 중에서 “대체가 쉬운 곳”은 어디일까요?

대부분의 산업에서 정답은 중단입니다.


중단은 물론 어렵고 고된 일입니다. 숙련도 필요하고, 설비도 필요하고, 시간도 듭니다.

그럼에도 중단이 경쟁에 시달리는 이유는, 시간이 갈수록 “정해진 방법을 따라 만들 줄 아는 기업들”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만드는 방법이 정해져 있으면, 결국 제조는 누가 더 싸고 효율적으로 만드느냐의 경쟁으로 수렴합니다.


반면 전단과 후단은 방향이 다릅니다.

전단은 “방법”을 제시하는 곳이고, 후단은 “선택”을 장악하려는 곳입니다.

이 둘은 쉽게 늘어나지 않습니다.




요리로 비유해 보면

이걸 요리에 비유하면 직관적입니다.

어떤 요리가 크게 인기를 끌었다고 해보겠습니다.

1. 누군가는 그 요리의 레시피를 정합니다.

재료 조합, 조리 순서, 맛의 기준을 결정하죠.

2. 누군가는 그 레시피대로 음식을 조리합니다.

손이 많이 가고 숙련도도 필요합니다.

3. 누군가는 사람들이 그 요리를 쉽게 선택하고, 자주 사 먹게 만듭니다. 접근성, 전달 효율, 신뢰를 구축하여 선택비용을 낮춥니다.


요리가 유명해질수록 레시피에 따라 조리할 수 있는 조리사(2번)는 공급이 늘어납니다.

레시피가 이미 정해져 있고,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그 레시피를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이익이 작아집니다.


하지만 레시피를 만든 요리사(1번)는 그대로 한 명이고 사람들이 편리하게 음식을 제공받을 수 있는 가게(3번) 역시 여전히 제한적입니다.


이렇게 웃는 입이 완성됩니다.

인기가 커질수록, 가운데는 더 흔해지고, 양끝은 더 희소해집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견고해지는 입꼬리와 무너지는 입꼬리

여기까지는 “하나의 제품에서 부가가치가 양끝으로 몰리는 이유”에 대한 설명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겁니다.

어떤 제품은 시간이 갈수록 웃는 입이 더 또렷해지고,

어떤 제품은 시간이 갈수록 입꼬리가 내려옵니다.

그 차이는 어디서 생길까요?

마찬가지로 이 차이 역시 대체 불가능성에서 옵니다.




강력한 전단이 대체 불가능성을 쌓는 방법: 투입요소 확보의 어려움

전단의 장벽은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 반드시 먼저 확보돼야 하는 투입요소들에서 만들어집니다.

어떤 방법이든 성립하려면 반드시 투입되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 요소들이 확보되지 않으면 그 방법은 시도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후발주자가 돈을 주고 사거나 단기간에 따라잡을 수 있는 성격이 아닙니다.

대표적인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만 쌓이는 공정 데이터

•한 번의 실패가 치명적이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를 고려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미 확보해 둔 고객과의 신뢰

•특정 지역·자원·권리에 대한 접근 자체가 제한된 경우

(채굴권, 인허가, 독점적 접근권 등)

•지적재산권으로 보호되어 있는 기술 이용권


위와 같은 투입요소는 후발주자가 확보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공정 데이터를 위한 시행착오를 겪을 기회조차 후발주자는 갖기 힘들고, 실패비용이 큰 환경에서 쌓인 신뢰는 “우리는 잘할 수 있다”는 약속으로 대체되지 않습니다. 자원과 권리는 애초에 접근 자체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러한 투입요소들 중 일부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이, 더 깊게 축적됩니다.

반면 후발주자는 기존의 방법과 경쟁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떠올릴 수는 있어도, 그 방법을 가능하게 하는 투입요소를 확보하지 못해 출발선에 서지 못합니다.


전단의 장벽은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후발주자가 투입요소를 갖기 힘들수록 전단의 장벽은 견고해집니다.


이 구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TSMC입니다.

반도체 파운드리에서 TSMC의 경쟁력은 단순한 설비 규모가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공정 데이터, 수율 노하우, 고객 신뢰의 집합체입니다. 이 투입요소들은 돈이 있어도 단기간에 확보할 수 없습니다.




후단이 장벽을 쌓는 방법: 익숙함이 반복 선택을 만든다

후단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아도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가입니다.


사람은 새로운 선택을 할 때마다 비용을 치릅니다.

돈뿐 아니라 시간, 학습, 실패의 가능성, 심리적 불편이 함께 따라옵니다.

그래서 한 번 익숙해진 선택은 특별한 불만이 없는 한 그대로 유지됩니다.


강한 후단은 이 “익숙함”을 사람들 속에 깊이 심어둡니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고

•항상 비슷한 품질로 손에 들어오며

•고르는 데 고민이 필요 없고

•문제가 생겨도 해결 방법이 이미 익숙한 상태


이런 조건이 형성되면 선택은 점점 자동화됩니다.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비교조차 하지 않게 됩니다.

이때 제품에 대한 선택비용은 낮아지고, 대체제로의 전환비용은 상승합니다.


이 구조의 대표적인 사례가 The Coca-Cola Company입니다.

코카콜라는 소비자에게 강한 설득을 하지 않아도, 어디서나 같은 맛으로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경험을 반복시켜 왔습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선택은 판단의 결과라기보다, 그저 손이 먼저 가는 습관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후단의 장벽은 익숙함이 만든 반복 선택에서 형성됩니다.


추상적 경제적 해자에 대한 구체적 접근법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전단에서는 확보하기 어려운 투입요소가 경쟁 시도 자체를 걸러냅니다.

• 후단에서는 낮은 선택비용과 높은 전환비용이 소비자의 “다른 선택할 이유”를 지워버립니다.


전단과 후단에서 이 두 가지 특징이 두드러지는 제품만 웃는 입을 오래도록 유지합니다.


반대로, 전단과 후단이 이러한 특징을 갖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전단과 후단의 경쟁자들이 늘어나 대체재가 많아지고,

제품 간의 경쟁이 격화됩니다.

그 순간 웃는 입꼬리는 내려오고, 전체 파이 역시 줄어듭니다.


투자를 할 때는 그 기업이 갖춘 경제적 해자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한데요.

기업이 입꼬리에 해당하는지, 웃는 입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구조인지에 대한 고민은 경제적 해자라는 추상적 개념에 구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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