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례식이 결혼식보다 좋다 5

5화. 나를 대체할 여자

by 한준희

가끔은 하루하루가 실험의 연속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옆으로 누우면 허리를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생겨서 뜬눈으로 잠을 지새워야 한다. 항전간제를 먹으면서 시각이 이상해져서 가까이 있는 물체가 멀리 있는 것처럼 보여서 지하철역 기둥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투약량을 줄여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계열의 항전간제를 먹어야 하는지 확인한다.


학창 시절 과학에 전혀 관심 없던 내가 실험자이자 피실험자가 되어서 실험일지를 미치광이마냥 작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실패의 연속인 이 실험이 전혀 즐겁지 않다. 차라리 다음 생엔 연체동물로 태어나 허리도 아프지 않고 흐느적거리면서 살고 싶다. 흐느적흐느적.


내가 참여하는 실험은 실패로 귀결될 게 뻔해 보이는데, 룸메가 참여하는 실험도 망조가 들어 너무 다행이다. 내가 룸메한테 진행했던 실험에 대해 잠시 보고하겠다. 계엄령 이후 반년 동안 나는 룸메에게 일절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룸메가 퇴근하고 인사해도 모른 척하고, 룸메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고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유튜브를 보거나 영화를 봤다.


룸메가 죽은 사람처럼 대했다.


내가 허리가 아프지 않았다면 산 사람을 죽은 사람 취급하는 내 자신이 무서웠을 것이다. 하지만 4년이라는 시간을 고립 속에서 살아보니까 마음속에서 누군가를 죽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누군가 죽는 건 슬픈 일이지 무서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슬픈 건 익숙한 일이었다.


룸메가 죽은 세상은 자연스럽게 남자친구가 채워갔다. 치료 계획을 남자친구랑 같이 수립할 수 있었고, 고립에 대한 고충은 남자친구가 나랑 같이 시간 보내면서 채워줄 수 있었다. 알고 지낸 지 반년도 안 된 남자친구가 19년 지기 친구였던 룸메보다 의지할 수 있고 믿음이 가는 상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룸메가 술에 쩔어 집에 돌아왔다. 현관 도어락 열리는 소리와 함께 룸메는 신발장에 부딪히면서 집에 입장했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설거지하느라 룸메를 애써 무시하는데, 룸메가 취한 몸을 간신히 겨누며 식탁에 걸터앉았다.


— I’m getting married. (나 결혼해.)


룸메는 우쭐대는 표정으로 자기 왼손을 만지작거렸다. 자세히 보니 은반지를 끼고 있었다. 나를 대체할 여자를 찾았다는 둥 자랑하는 것 같았다. 어휴, 나는 꼬추 달린 남자다, 친구야.


— She’s like Kevin Ki 2.0. We’re the same people. (여자친구는 기우석 복제판이야. 우린 똑같은 사람이야.)


룸메에게 약혼녀에 대해 캐물어 보니까 룸메는 그녀에 대해 잘 모르는 듯했다. 심지어 약혼녀도 룸메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듯했다.


— No, she doesn’t know you’re gay....I thought it wasn’t my place to share that. (여자친구는 네가 게이인 거 몰라. 내가 그런 거 말할 입장이 아닌 것 같아서.)


약혼녀에게 같이 살고 있는 절친이 게이라는 사실도 밝히지 못한다면 아직 말하지 못한 사실은 얼마나 더 많을까?


룸메가 내게 청첩장을 줄지도 모르겠다. 워낙에 친했던 친구라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하지만 나는 아픈 몸이다. 내 몸 하나 간수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룸메 가정이 파탄 나도 내 알 바 아니다. 나는 내 자신을 지켜야 한다. 내 몸은 나 말고 지켜주는 사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