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은 맥시멀리스트

우리집 다이어트

by 리피초

나는 어릴 때부터 뭔가 모으는 것을 좋아했다.

포장지, 다 먹은 과자 상자, 잡지, 리본끈, 예쁜 돌, 낙엽, 친구와 나눈 쪽지, 시험지, 종이백, 예쁜 패키지, 따조, 어릴 때 산 물건들, 예쁜 지우개들, 몇 년 전에 본가에 방문했을 땐 1995년 첫눈이 담긴 곰돌이 유리병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그 안엔 1995년 첫눈에 담긴 먼지 몇 개가 남아 있었다.)


덕분에 재밌는 추억과 기록들도 많이 있다. 작년에 사진을 찍고 다 버리긴 했지만 펜팔 했던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들, 아주 진지하게 쓴 절교편지(전해지진 않았다), 그 당시 안네의 일기를 보고 감명을 받았는지 일기장에게 인격을 부여해서 쓴 일기장도 있다.(정말 시공간이 오그라들 정도의 글이지만 그만큼 날것의 솔직함이 담겨있다.

물건에 감정을 담고 애정을 주는 습관은 자연스럽게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항상 내 방엔 물건이 많았고 ‘나만’ 찾을 수 있었다. 엄마가 방 정리라도 하는 날엔 물건을 찾을 수 없어 항상 싸움이 났다. 나만 찾을 수 있고, 내가 감정과 마음을 담은 물건들로 둘러싸여 있는 내 방이 나는 좋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오랫동안 크게 변하지 않았다. 독립을 해서 혼자 살 때도 내가 이사를 할 땐 이사를 도와주시는 분들이 커플, 또는 가족 짐으로 오해하곤 했으니 내 짐이 얼마나 많았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크게 불편하지 않고 살던 내가- 몇 년 전부터 미니멀리스트를 꿈꾸게 되었다.

20대 후반부터 나의 주요 관심사 중에 하나는 바로 '환경'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자연에게 큰 위로를 받고 나서부터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관심사가 점점 넓어지고 깊어지면서 '물건을 소유'하고 '사는 것'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지독한 수집력과 다양한 취미 생활을 멈추기는 쉽지 않아서 짐을 줄이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실천해 보기로 한 것은 되도록 '새 물건을 사기보단 중고 물품을 이용하자'였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중요하지 않은 것, 흥미가 적은 분야, 꼭 안 사도 되는 물건부터 소비하는 것을 줄여나갔다. 그 리스트는 아래와 같다.


- 옷, 액세서리, 가방 등 (새로운 옷을 사고 싶으면 구제 옷을 샀다.)

- 책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는 것으로 대체)

- 장식품, 장난감 (피겨나 귀여운 것들을 수집하는 것을 좋아했으나 더 이상 사지 않는다.)

- 물티슈 사지 않기 (물티슈를 구매하지 않은지 4년이 되어 간다. 대신 수건을 사용하거나 진짜 필요할 땐 사은품으로 받은 것을 간간이 사용한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짐이 많다.

미니멀리스트를 꿈꾸며 '심플하게 사는 법', '비워내는 삶', '미니멀리스트' 등의 키워드의 책을 참 많이도 읽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작은 실천들을 해봤지만 한 번에 싹 다 버리지 않는 이상 가벼워지기란 쉽지 않았다.


미니멀하게 사는 것을 마치 다이어트 같단 생각을 했다. 하루 운동한다고 날씬해지는 것이 아니지만 매일 꾸준히 조금씩 하면 어느 날 갑자기 나도 모르게 살이 조금씩 빠지고, 건강해지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짐을 줄여나가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큰 변화는 없는 것 같다고 매일 조금씩 줄여보자!"하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마치 다이어트를 하듯. 다이어트도 평생 하는 것처럼 나에겐 짐 줄이기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2026년 새해가 되고 다시금 집정리와 짐 줄이기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일단 복도에 있던 캐비닛을 정리해 보기로 하고 열어 보았는데 그곳에서 나온 것들을 보고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그곳에 있던 것은 대용량 리필제품들과 쌀 때 사둔 물건들, 포장지들이었다. (과탄산소다, 베이킹소다, 물비누 리필, 여분의 식기세척기 세제, 수건 바꾸고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수건들, 엄청난 양의 에어캡 뽁뽁이, 포장 리본, 종이 포장지, 종이봉투, 사용하지 않는 전동톱, 쌀 때 사놓은 주방세제 2개, 선물상자들..)


참 미련하단 생각이 들었다. 싸다고 많이 사둔 물건들은 일 년 동안 열심히 써도 다 못 쓸 정도의 양이었다. 그리고 가장 어이없었던 물건은 바로 택배 올 때마다 버리가 아까워서 하나둘씩 모아 놓았던 에어랩 뽁뽁이 었다. 2번인가 급하게 소포를 보낼 일이 있어서 다이소에서 뽁뽁이를 돈 주고 샀던 적이 있는데 그때 너무 돈 아까웠던 기억이 있었어서 '만일'을 대비해서 모아뒀던 게 어마어마한 양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양도 많고 언젠가 쓰겠지 하고 테이프도 다 떼고 깨끗하게 모아놓은 거라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당근에 올렸더니 다행히도 필요한 사람이 가져갔다.

요즘 다들 택배를 많이 시키고 집에 뽁뽁이 쓰레기가 많이 나올 텐데 비닐쓰레기로 태우기보단 깨끗하게 배출하면 어디선가 필요한 사람이 모아서 사용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체국이나 재활용 도움 센터, 공공기관에서 모으는 곳이 있으면 누구나 필요한 사람이 가져다가 사용하면 좋지 않을까? 캐비닛을 비우며 아래의 결심을 했다.


- 에어캡 뽁뽁이 등의 포장용품들을 모으지 말자. (너무너무 모으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해서 죽을 것 같다면 딱 한번 사용할 정도만 모으자. 잘 생각해 보자 1년에 몇 번이나 사용할 것인가?!)

- 대용량 리필 물품을 사더라도 6개월 이내에 다 소비할 수 있을 정도만 사자.

-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바로 중고 거래하거나 나눔 하자. (6개월 안에 사용하지 않을 물건들)


연말과 새해에 해야지 하는 실천들을 시작했다.

우선 사용하지 않는 수건은 동물구조 센터에 기부했다. (미리 연락해서 수건이 필요한지 여쭤보았다.)

1월엔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은 당근에 나눔 하고, 중고로 팔았다. 이 과정에서 집에 참 사용하지도 않는 물건을 많이도 샀고, 쟁여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뭔가를 살 때 정말 꼭 필요한지 3번 이상 고민하고 사기로 했다.

새해의 시작은 언제나 결심하고 뭔가 시작하기가 좋다. 운동 결심을 하듯 살찐 우리 집도 운동을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조금씩 하나씩 비워나가고 그 공간에 마음의 여유가 채워졌으면 좋겠다.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