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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참 많이 변했더군요

아픔의 문장들 두 번째 이야기

by Jeremy

나이가 들면 성격이 더욱 온화해지고 세상을 향해 아름다운 미소만 지을 수 있을 줄만 알았다. 그러한 내용을 담은 책들을 편집하면서 나도 나이가 들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이로운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아니 더 어렸을 적을 생각하면 대통령이 되어 우리나라를 아름답게 만들고 싶었고, 과학자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싶었다. 하지만 웬걸.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당시에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다 보니 자연스레 깨달아졌다.


나이가 이래서 무서운 것인가 보다. 이성적이거나 객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누군가가 이야기해준 것은 아닌데 왠지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이미 철저하게 믿고 있었다. 그래, 솔직해지자. 우선은 돈 때문이었다.




뮤지컬 배우로 살아갈 때는 온몸이 으스러져라 연습하고 무대에 섰는데 쥐꼬리이다 못해 햄스터 꼬리보다도 짧기 그지없는 출연료를 받으면, 아니 그것마저 주지 못하는 극단을 만날 때면 돈이 무섭다기보다 사람이 무서워지기 일쑤였다. 문화예술계는 왜 ‘아프니까 예술이다’를 너무나 당연시하는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래 돈은 부차적인 문제이고 사람이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편집자로 살아갈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엄청난 슈퍼 리치들의 책을 편집하면서 그들의 성공담을 수도 없이 읽어왔는데 왜 나는 이 모양인 걸까 하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때가 참 많았다. 많이 슬펐다. 믿는 만큼 이루어지고 책을 많이 읽으면 다들 성공한다는데 편집자는 왜 그러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아이러니를 고민해야 할 때가 참 많았다.




‘세상 책 다 읽는 것만 같은 편집자들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해야 하고 부자여야 하고 고위공직자가 되어야 할 텐데 왜 그러지 못하는 것일까. 과연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믿는 만큼 이루어진다는 책을 몇 권이나 편집했는데, 끌어당기기는 어지간히 당겼다가 밀었다가 난리 굿이었는데 나는 왜 언제나 그 자리란 말인가.’

이토록 자조 섞인 푸념을 하게 되면 선배, 동료들은 이런 말을 남기곤 했다.


“우리는 언제나 결과론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책을 편집하고 있는 거잖아요. 성공을 했으니 그들은 할 말이 있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무슨 말을 하든 그럴싸한 것이고요. 그들이 말하는 법칙이 우리에게 맞으려면 우리는 매일 분초 단위로 쪼개어서 하루를 써야 하고 많은 투자를 하면서 성공과 실패를 경험해야 할 것이며 쥐꼬리만큼 주는 회사를 뛰쳐나갈 수 있는 용기도 가져야 할 거예요. 그렇게 할 수 있겠어요? 혹여나 그렇게 하더라도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도 잘 알잖아요. 세상에는 타이밍이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니까요.”




100톤 망치로 머리를 여러 차례 쾅쾅 두들겨 맞은 듯한 팩트 폭격에 숨을 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처럼 명쾌한 답변을 나는 왜 생각하지 못했던가.


그래,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눈은 변해가고 있었다. 돈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의 문제만도 아니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그 아이가 커가는 동안에는 더 많은 세상의 모든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아니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이라 할지라도.




어릴 적 순수하게 세상의 중심이 되고 싶었던 한 아이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솔직해지다 못해 현실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것은 분명 나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래, 세상의 잘못이라고 해두자. 그렇게 생각해야 마음도 편하고 몸도 건강해질 것만 같다. 가끔씩은 그렇게 하자. 내 잘못이 아니라고. 보이지 않는 남탓이라도 해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딱 그만큼 이기적이면 아무 문제없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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