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겸재 정선 > 전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을 즈려밟고 가는 전시회.
호암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화가 중 한 사람 '겸재 정선'의 전시회다.
3월 말, 4월 초면 벚꽃들이 만든 화려한 경관으로 호암 미술관의 초입 길은 전문 사진작가들 뿐만 아니라 많은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명소다.
이런 멋진 전시가 아니더라도 매년 이만 때쯤이면 이곳을 방문한다는 지인들이 많다.
호암 미술관.
1982년 개관이니 40여 년의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난 미술관이다.
미술관과 함께 전통 정원으로 유명한 '희원'도 1997년 개원한 이래 많은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구조라고 하나 일단 지붕의 기와를 보면 우리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전통의 의미가 먼저 와닿는 미술관이다.
미술관 옆에는 다보탑도 보이고 1층 정문 옆으로는 불국사의 백운교의 아치형 돌계단을 모델로 한 돌계단도 있으니 이번 전시회는 주변 경관과의 궁합도 완벽하다.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에 관한 책만 3권을 독파했다는 친구와 동행하는 전시회.
"'겸재'가 무슨 뜻인지 알아?"
예기치 않았던 돌직구에 머뭇거리는데 "'겸손한 선비'란 뜻이야." 한다.
든든한 도슨트가 함께 하는 것 같아 기대가 크다.
전시실의 제1관은 국보인 정선의 두 대표작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국보 216호인 '인왕제색도'와 217호인 '금강전도'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진경산수화'의 진수 두 작품이 나란히 전시되어 첫 전시실부터 탄성이 나온다.
"'진경산수화'는 알지?"
두 번째 돌직구다.
"우리의 경치를 직접 가서 보고 그렸다는 거 아니야?"
이번엔 친구가 고개를 끄떡이더니 싱긋이 웃으며 작품 앞으로 다가간다.
국보 216호인 '인왕제색도'는 1751년 정선이 76세 되던 해에 그린 그림으로 '비 온 뒤의 인왕산을 그린 작품'이란 뜻으로 인왕산 전체 모습을 담은 유일한 작품이라고 한다.
'인왕제색도'를 그린 장소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그림을 분석하는 이들은 현재 청와대 경내에서 그린 것으로 추정하며 그림 속에 그려진 집은 정선과 절친이었던 당대 천재 시인 '이병연'의 집이라는 것이 가장 힘을 얻고 있으나 서촌에 있던 정선 자신의 집이라는 설도 있는 가운데 그림 속에 지붕만 보이는 집이 아직 누구의 집인지는 설왕설래 중이라 한다.
그러나 정선의 힘찬 붓질로 그려진 인왕산의 강건한 모습에 오랫동안 시선이 잡혀 그림 하단에 그려진 집의 지붕이 누구의 집인지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서촌에 가면 '진경산수화길 산책로'가 있는데 정선이 말년에 기거하던 집터도 둘러볼 수 있으니 직접 가보자고 조용히 친구가 제안한다.
정선의 자취를 직접 따라가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300여 년의 시간 공백이 급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국보 217호인 '금강전도'는 정선이 59세인 1734년에 그린 작품이다.
'금강전도'는 정선이 여러 차례 직접 답사한 금강산의 여러 명소들을 하늘에서 내려다본 시각으로 둥근 원안에 표현한 진경산수화의 대표작 중 대표작이다.
그의 작품에는 조그만 사람도, 암자도, 다리도, 폭포도 모두 들어가 있다.
자연히 허리를 굽혀 가까이서 그들을 확인하며 그의 정교한 묘사에 놀라움을 표하는 것은 오롯이 우리 몫이다.
전시실은 조명이 상당히 어두운데 정선의 세밀화에 가까운 그림들을 하나씩 찾아보기에는 조금 힘이 들었다.
정선의 그림은 이렇게 세밀하다가도 '인왕제색도' 같이 힘찬 모습을 담아내기도 한다.
양극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의 화풍에 '역시'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정선은 36세인 1711년 처음으로 금강산을 방문한 이후 다음 해인 1712년에는 동향 선배이자 오랜 친구인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1671-1751)'의 초청으로 두 번째 금강산을 방문하고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이 지역을 방문하면서 '신묘년풍악도첩'과 '해악전신첩'을 그렸다고 한다.
'단발령망금강산'으로 시작되는 '신묘년풍악도첩'에는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과 내금강, 해금강의 명소등 모두 13편의 그림이 수록되어 있고 '해악전신첩'에는 금강산과 동해를 아우르는 21편의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
각각에는 '금강내산총도'와 '금강내산'이 그려져 있는데 이들은 모두 '금강전도'의 시초가 되는 작품들이다.
'해악전신첩'은 안타깝게도 원본이 소실되어 현재 우리가 보는 것은 36년 뒤 1747년 72세의 정선이 기억을 되살려 다시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송도 3절(松都三絶: 황진이, 서경덕, 박연폭포)중 하나로 뽑히는 송도(현 개성)에 있는 유명 폭포 박연폭포를 그린 그림이 '박생연'이다.
이 작품 또한 박연폭포의 특징을 표현하기 위해 실제보다 길게 폭포를 표현했다는 설명으로 자연의 본래 모습에 화가 자신의 느낌을 담아 과장과 생략 과정을 적극 활용한 '인왕제색도', '금강전도'와 함께 정선 진경산수화의 대표작으로 뽑히는 작품이다.
경북 영일군에 있는 삼단 폭포를 그린 '내연산삼용추' 앞에서 친구는 이런 말을 혼잣말처럼 내뱉는다.
'이것이 대가의 힘인 거 같아.'
정선의 이 그림에 감동한 친구는 실제로 경상북도에 있는 내연산 삼용추를 찾아갔는데 정선의 그림이 주는 감동이 더 컸다고 한다.
이 역시 그림 가운데 삼용추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산수화에 생동감을 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두 작품 모두 화가의 표현으로 보는 이에게 실제 보다 더 큰 감동을 주는 작품들이다.
조선시대 대표적 브로맨스로 유명한 정선과 이병연의 이야기가 담긴 그림이다.
당대 10,000여 편의 시를 남긴 천재시인 '이병연'은 양천 현령(현 강서구)으로 부임하는 정선에게 1741년 봄, 자신의 시와 정선의 그림을 서로 주고받기로 약속을 하고 '시거화래지약'을 맺었다고 한다.
당시 정선은 66세, 이병연은 71세였다.
당대를 대표하는 두 대가의 멋진 약속이 부럽다.
이 내용을 주제로 그린 작품이 정선의 '시화환상간'이다.
작품에선 오른쪽이 이병연, 왼쪽이 정선을 그린 것일 거라 한다.
이로부터 1년여 동안 주고받은 시와 그림을 바탕으로 그가 생을 다 할 때까지 그린 인물화와 산수화가 추가되어 만들어진 '경교명승첩(1741~1759)'에는 당시 한강 주변의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 있어 300여 년 전 한강의 여러 모습을 엿볼 수 있고 목멱산으로 불린 현재 남산의 일출 모습도 볼 수 있다.
정선의 그림 속에 남산 뒤로 조금 얼굴을 내민 해의 모습이 더욱 인상적이다.
남산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남산 타워를 생각하다 슬며시 혼자 웃는다.
그런가 하면 정선이 그린 당시 세도가 한명회의 정자가 있던 '압구정'의 한적한 옛 모습을 보니 가히 격세지감이란 생각도 든다.
'아! 그때...'.
친구는 그때도 당시 가격으론 비쌌을 거라고 위로(?)의 말을 한다.
다음은 정선의 작품으로는 드문 인물화 '독서여가도'다.
두 권으로 만들어진 '경교명승첩'의 상권 첫 번째 작품이다.
인물화는 절친 이병연의 초상화만을 그린 것으로 알려진 정선이기에 이 그림 속의 인물은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생각되는 작품이다.
뒤 배경의 책들과 산수화등은 사대부 의식이 강했던 정선이 문인이자 화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강조하고자 그린 그림이란 설명이다.
'경교명승첩' 하권의 첫 번째 작품은 '인곡유거'다.
'인곡유거'는 '인왕산 골짜기에 있는 마을에서 떨어진 외딴집'이란 뜻이란다.
정선이 노년에 살던 옥인동 집이다.
화폭 중앙의 버드나무와 오동나무, 그리고 버드나무를 타고 오르는 포도 넝쿨의 자연묘사가 시선을 잡으며 노화백의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전시물 중에는 익숙한 이름도 보인다.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1806?)'.
정조의 총예를 받았던 풍속화가 '김홍도'의 '병진년화첩'도 전시되어 있다.
모두 20편의 작품으로 만들어진 '병진년화첩'은 김홍도의 원숙한 필치를 담고 있고 그의 진경산수도 중 진수인 단양 8경의 옥순봉, 사인암, 도담삼봉과 영랑호 등 4점이 포함된 진귀한 작품집이란 설명이다.
후에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계승한 김응환(1742~1789)의 1772년 작품 '금강전도'는 설명을 안 본다면 정선의 작품으로 오해할 정도로 정선의 영향이 그대로 남아있는 작품이다.
마지막 전시실에는 당시 GPS에 해당할 '한양도성도' 세밀화가 있다.
얼마나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지금이야 어렵지 않은 작업으로 여겨지겠지만 18세기에 어떻게 이런 작품을 남겼을 까 싶다.
작자미상이라는 이런 류의 행정 지도 작품은 주로 왕실 화원들이 그렸다고 하는데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동서남북의 산세 표현 특히 인왕산을 묘사한 기법등이 정선의 '인왕제색도' 기법과 아주 유사하다.
워낙 유명한 화가이고 그의 덕후들이 그의 작품을 세세하게 평하고 설명한 문헌들이 많다 보니 익숙하게 느껴지는 작품들이 많아서인가 보는 내내 반갑고 마음이 푸근했다.
165편이라는 많은 작품을 한 번에 볼 수 있어 보는 눈이 매우 흡족하면서도 바빴던 전시회였다.
하나라도 그냥 지나칠까 말을 아끼며 꼼꼼히 관람하던 나의 도슨트(?)는 '한번 더 와야겠지?' 하면서 전시실을 나서면서야 가벼운 미소를 짓는다.
"'진경산수화길 산책로'는 언제 갈까?" 하면서.
눈 날리듯 벚꽃이 날리는 미술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대화가의 전시회와 함께 완벽한 나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