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구름을 산 허리에 두른 만년설에 덮인 높은 산 봉우리가 보이고 그곳을 바라보는 듯 서 있는 수도원의 종탑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어딘지 모르게 아련한 느낌마저 든다.
아라랏 산을 배경으로 수도원의 풍경이 그림 같다.
그런데 저 산은 보통 산이 아니다.
그 유명한 '노아의 방주'가 닻을 내린 곳이란다.
그리고 산 밑의 수도원이 있는 곳은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나라라고 한다.
'그게 어느 나란데?'
언뜻 ‘유럽의 어느 나라 아니겠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의 나라다.
'코카서스(Caucasus)'지역의 신흥 독립국가 ‘아르메니아’다.
'아르메니아'는 1991년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국가이지만 그들의 역사는 기원전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장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다.
북쪽으로는 러시아, 남쪽으로는 이란에 둘러싸이고 좌로는 흑해, 우로는 카스피해와 맞닥트린 코카서스 지역은 지리적으로는 아시아권에 속하지만 역사적으로는 유럽에 더 가까운 지역이다.
요즘 코카서스 지역 여행 붐이 일면서 '조지아', '아제르바이잔'과 함께 여행 코스에 포함되어 어렵지 않게 방문할 수 있는 '아르메니아'다.
뒤에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산은 구약 성경에 의하면 '노아의 방주(Noah's Ark)'가 40여 일의 대 홍수를 이겨내고 멈춘 곳으로 해발 5,000여 미터에 이르는 '아라랏(Ararat)' 산이다.
해발 3,896m의 '소 아라랏'과 해발 5,137m의 '대 아라랏'의 두 거봉이 있는 성산으로 '백두산'이 2,744m인 것을 감안한다면 얼마나 높은 산인지 짐작이 된다.
멀리 구름 위로 보이는 소 아라랏(좌)과 대 아라랏(우)
'아라랏 산' 앞에 우뚝 서 있는 수도원은 '코르 비랍(Khor Virap)'수도원이다.
'코르 비랍'은 '지하의 깊은 감옥 또는 지하 우물'이란 뜻이란다.
이곳의 지하 감옥은 기원전부터 있었다는데 왜 하필 지하 감옥 위에 수도원을 지었을까?
뭔가 사연이 있겠지 싶다.
코르 비랍 수도원
이 지하 감옥은 아르메니아에 기독교를 처음 전파한 '성 그레고리(Saint Gregory:257~331)'가 무려 13년이나 갇혀 있었던 곳으로 후에 그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수도원이다.
7세기 경부터 짓기 시작한 수도원은 부서지고 다시 짓고를 반복하다 17세기에 와서야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된 것이라고.
'노아의 방주'가 머문 산과 최초로 기독교가 국교로 인정된 나라에 온갖 박해를 받고 기독교를 전파한 성인이 갇혀 있던 감옥 위에 지어진 수도원.
이 정도면 이 사진이 갖는 큰 의미는 충분히 전달된 듯하다.
여호와가 인간에게 실망을 느껴 대 홍수를 일으키지만 신앙심이 두터웠던 노아는 여호와로부터 대 홍수가 있을 것이라는 예시를 받고 거대한 방주를 만들었다는 창세기 6장 에서 8장까지의 이야기는 너무 유명한 이야기다.
노아가 600살이 되던 어느 해 2월 17일부터 시작된 비는 40여 일을 주야로 쏟아지고 물 위를 떠다니던 방주는 5개월 뒤인 7월 17일 아라랏 산에 멈추었다고 구약은 전한다.
노아와 동물들은 1년 10일 만에 방주에서 내려올 수 있었고 그 후 노아는 350년을 더 살고 950세에 죽었다고 한다.
거의 천 년을 살았다.
이것이 우리가 구약 성경을 통해 익히 들어온 '노아의 방주'에 관한 큰 줄거리다.
성경에 쓰여 있는 대로 '아라랏 산' 어딘가에 '노아의 방주'가 있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믿음이 1948년 양치기 소년에 의해 발견된 배 모양의 지형을 보고 더욱 확신으로 다가왔던 거 같다.
뒤집힌 배 모양을 하고 있는 지형의 모습은 사람들의 믿음에 불을 붙이는 듯했으나 여러 차례 현지 조사 결과 단순한 지형일 뿐이라는 결론을 냈다고 한다.
뒤집어진 배 모양의 아라랏 산의 지형(위키미디어)
'나무로 만든 배가 어떻게 그렇게 오랜 시간 남아 있을 수 있겠냐?'는 과학적이고 구체적인 의문을 갖는 이들도 있지만 그 진위 여부를 떠나 눈앞에 우뚝 선 거대한 산과 이야기로만 듣던 '노아의 방주'일 것만 같은 특이한 지형은 그 자체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믿음 이란 불가능도 가능케 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 수많은 논란과 진위 여부에 상관없이 '노아의 방주'가 신학과 신앙에서 중요한 영향을 차지하는 것만큼은 사실일 테니 말이다.
특히나 기독교 국가에는 더욱 큰 의미가 있을 '아라랏 산'은 아르메니아 인들에게는 우리의 '백두산'처럼 성산으로 여겨지지만 안타깝게도 이 성산은 더 이상 아르메니아 땅이 아니다.
19세기 초 러시아와 이란의 전쟁에서 이란이 패하면서 코카서스 지방의 많은 땅이 러시아로 영입되는데 이 과정에서 '아라랏 산'은 터키령이 되었다.
터키는 종교도 다른 이슬람 국가 인 데다 20세기 초 무려 150만에 이르는 '아르메니아인 대 학살(제노사이드:Genocide)'을 일으킨 장본인들이니 터키에 귀속된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프겠는가?
'코르 비랍' 수도원과 '아라랏 산' 사이에는 이곳을 지나는 '아라스(Aras)' 강 주변으로 광활한 '아라랏' 평야가 전개되는데 예부터 포도밭이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
기원전 2세기부터 700여 년 동안 고대 아르메니아의 수도인 '아르타샤트'도 이 지역에 있었다는데 '아라랏 산'을 바라보며 풍요로운 시절을 영유하던 아르메니아였으나 이제는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남의 산이 되어 버렸다.
아라랏 평야의 포도밭
현재도 '코르 비랍' 수도원 주변에는 끝없는 포도밭이 펼쳐져 있는데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산이 되어 버린 '아라랏'을 바라만 보아야 하니 더더욱 가보고 싶은 산이 아닐까 싶다.
아르메니아의 대표 풍경 사진
'아라랏 산'을 배경으로 그림처럼 서 있는 교회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이 수도원은 '성모교회'와 지하 감옥 위에 세운 '성 그레고리 교회'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교회에 얽힌 이야기는 아르메니아의 기독교 역사와 함께 마냥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코르 비랍 수도원 안의 성모교회
'성모교회'에는 제단 왼편에 '아라랏 산'을 배경으로 아르메니아에 기독교를 전한 예수님의 12제자 중 두 사도이자 아르메니아 교회 1대, 2대 주교인 '바르톨로메우스(Bartholomew)와 타데우스 (Thaddaeus)'가 그려져 있고 오른편에는 '티리다테스 3 세(Tiridates III:250~330) 왕과 성 그레고리'가 그려져 있다.
두 성인 벽화(좌)/성모상 제단(중앙)/티리다테스 왕과 성 그레고리(우)
'성 그레고리'는 원래 아르메니아의 귀족 가문이었는데 그의 아버지가 전왕 '호스로프 2세(Khosrov II)'의 살해 음모에 가담한 바람에 온 가족이 사형에 처해지게 되자 유모의 도움으로 터키의 카파도키아로 도피하였다가 수도사가 되어서 조국으로 돌아온 성인이다.
당시 조로아스터 교를 믿고 기독교를 박해하던 '티리다테스 3세'왕의 배교 강요를 받아들이지 않자 '코르 비랍'의 지하 감옥에 가두어 버린 거다.
그런데 왕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리던 중 어느 날 왕비(여동생이라는 설도 있다)의 꿈에 '성 그레고리'가 나타났다고.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지하 감옥에 갇혀 있던 그를 찾아보니 죽지 않고 있더란다. 그래서 이 성인은 왕의 병을 고치는 기적을 행하게 되고 감동한 왕은 301년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정치적으로는 페르시아와 적대 관계에 있던 아르메니아가 조로아스터교가 아닌 기독교를 국교로 함으로써 차별화를 도모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우리는 왠지 기적 같은 이야기가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성 그레고리'교회(좌)/지하 감옥 입구(우)
'성 그레고리' 교회 안에는 그가 갇혀 있던 지하 감옥으로 내려가는 6m에 이르는 수직 철제 계단이 있다.
비좁은 계단은 한 명씩 내려가 볼 수 있는데 폐쇄 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힘든 코스다.
아르메니아는 1992년부터 국가 문장의 정 중앙에 '노아의 방주'와 함께 '아라랏 산'을 그려 넣었다.
아르메니아 국가 문장(Emblem)
구약 창세기의 이야기가 현실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신기하고 반갑기도 하지만 아르메니아 인들의 우여곡절 많은 역사를 듣고 나면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드는 '아라랏 산'이다.
'아라랏 산'에서 60여 km 떨어진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Yerevan)'에서는 도시의 어느 곳에서나 '아라랏 산'을 볼 수 있다.
'아라랏 산'이 멀리 보이는 '예레반' 시가지
산 허리에 머무는 구름 위로 우뚝 솟은 '아라랏 산'의 두 봉우리는 안타까운 아르메니아 인들의 마음을 위로라도 해 주려는 듯 엄마가 아이를 안아 주듯이 거대한 품에 '예레반' 시가지를 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