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안정을 위한 제언.
“용산 재개발 지역 주택의 절반 이상을 임대주택으로 짓는다. 임대주택 건설비용은 500대 기업이 부담한다.”
파천황과도 같은 결단이 없다면 서울시 집값을 잡는 건 영원히 불가능하다. 나는 이 책 <<우선 집부터, 파리의 사회주택>> 을 보면서 그런 극약 처방을 구상했다. 책에 따르면 파리 근교 낭테르시는 주택의 57%가 우리의 임대주택에 해당하는 ‘사회주택’이라고 한다. 낭테르시가 한적한 시골이 아니라 신시가지 ‘라 데팡스’가 있는 곳인데도 이런 기적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파리 역시 서울과 마찬가지로 집값이 비싸고, 월세도 만만치 않은 곳인데 그나마 중산층과 서민들이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이유를 저자는 ‘사회주택’에서 찾는다. 우선 프랑스는 사회주택이 한국보다 많다. 현재 프랑스의 사회주택은 전체 주택의 17%. 파리의 경우 신규 주택의 30%를 사회주택으로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의 임대주택은 전체 주택의 7%.)
이 숫자들 뒤에는 100년 이상 이어져온 프랑스 사회주택의 역사가 있다. 그 역사를 책을 통해 일별하게 된다. 프랑스 정부와 기업, 시민 모두 주택을 시민들간 연대의 공간으로 보고 계층간 교류와 소통, 통합을 위해 노력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주거 문제를 담당하는 정부 부처의 이름도 국토 및 지방자치단체 관계 ‘결속’부라고 한다.
사회주택이 많다보니 사회주택 입주 자격부터 프랑스는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난다. 전체 국민의 70% 정도가 사회주택에 입주할 수 있다. 자연히 중산층 일부도 사회주택에 입주를 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사회주택이 ‘저소득층의 공간’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나게 된다.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주거 지역이 통합되면서 계층간 단층선이 사라지고, 이질감이 일정 부분 희석되는 효과도 있다. 물론 저소득층과 중산층이 같은 사회주택에 살더라도 부담해야 하는 임대료는 다르다.
사회주택의 재원 마련 방식도 한국과 다르다. 직원 10명 이상이 근무하는 기업은 직원 월급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을 사회주택 기금으로 내놓는다. 이 제도가 1953년에 도입됐는데 법이 적용되는 대상이나 기업의 부담금은 다소 바뀌기는 했지만 큰 틀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조성된 사회주택이 100만 호에 달한다. (한국에서는 한국토지주택공사가 1972년부터 현재까지 건설한 공공임대주택의 숫자가 그 정도다.) 그 외에도 공공기관이나 여러 사회적 기업이 다양한 경로로 사회주택을 공급한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사회주택의 품질. 사회주택의 디자인이 독창적이면서도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룬다. 리카르도 보필 같은 저명한 건축가가 ‘서민을 위한 베르사유궁’을 짓겠다며 사회주택을 디자인하기도 했는데 일반 주택보다 사회주택이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회주택이 들어서는 곳이 ‘게토화’되며 다른 공간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낙후된 지역에 활력을 공급해 도시 재생의 마중물이 된다.
프랑스 사회주택의 연원은 19세기 공산주의자 푸리에가 꿈꿨던 노동자들의 공동 주택이다. 푸리에가 상상한 공간은 대강 이렇다. 크고 넓은 집에 루브르궁의 긴 복도와 비슷한 공간이 있고 노동자들은 그 곳에서 서로를 '만나며' 살아간다. 나는 한국의 공동주택이 가야하는 방향도 그 언저리 어딘가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