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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han Aug 24. 2015

새로운 취존 세대의 우화 羽化

마이너 스트림은 취향 존중의 꿈을 꾸는가.


 글의 도입에서 수줍게 내 나이와 취향의 근간을 고백해본다. 필자는 90년생이다. 새삼스레 수줍을 필요는 없었던 듯 하지만, 여하튼 그것도 얕고 넓은 잡덕 중의 잡덕이다. 그리고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마이너한 드립을 담당하고 있다. ‘엽기’가 유행하던 초등학생 시절 ‘엽기코리아’에 푹 빠져서 포토샵으로 투박한 합성사진들을 생산해 냈었고, 수험생 시절 친구가 TV 모양의 ‘아이리버 U10’에 담아온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로 애니메이션에 입덕 했으며, 역시 같은 친구의 영향으로 ‘MUSE'와 'Linkin Park'에 빠져 브릿게이, 락덕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대학에 입학을 준비할 때 즈음 ‘빠삐놈 리믹스 르네상스’를 겪고 ‘에반게리온’을 접하는 등 수많은 서브 컬처 및 마이너한 장르에 발을 담그는 불상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군대에서 정립해온 아이돌 찬양의 가치관도 빼놓을 수 없겠다. 그리고 그 이후에 이어지는 각종 인터넷 문화 흡수를 병행하며 얻은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지인들의 모습... 그건 아마도, 존중 같은 시선이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우리는 그 사람과 친해지고 싶을 때, 동시대에 같이 보았던 그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도한다.



 이렇게 간단한 신변잡기를 앞서 늘어놓은 이유가 있다. 최근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시작해 신선하다는 평과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과, B급 정서를 감독 취향대로 버무려놓은 영화 ’킹스맨’의 흥행 성공이 ‘개인 취향의 발현’이라는 명목에서 같이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리텔’은 담당 피디인 박경진 피디의 잉여적 드립력으로 뿜어낸 합필갤스러운 편집, 그리고 공중파/케이블의 일방향 미디어의 반대선 상에서 등장한 ‘개인 생방송’ 코드의 합작으로 만들어졌다. ‘킹스맨’은 매튜 본 감독 본인이 성장과정에서  갈무리해두었던 미디어 콘텐츠의 조각들을 꺼내 섞어 유쾌하게 폭발시킨 결과물이다. 분명, 작업 시에 ‘이 부분은 이거 넣어야지!’하면서 낄낄거렸을 모습이 상상된다.



 그렇다면 취향이란 뭘까?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취향은, 개인의 성장 과정과 그 이후의 삶을 사는 동안 당사자가 접한 관념과 콘텐츠들에 대한 호불호 판단이 모여 만든 가치관의 일종일 것이다. 이 집합은 개인에게 익숙한 것과 익숙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데도 상당 부분 작용한다. 이 취향이란 것은 사람이 살면서 접한 것들, 즉 input의 개념이기 때문에, 당대의 사회상과 시대상의 영향을 매우 크게 받는다. 미래의 콘텐츠를 미리 즐겨볼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취향이란 것은 촉수가 뻗쳐나가듯 탐색하며 동질 부류를 찾거나, 새로운 자극을 선별하여 주인에게 취향 확장의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세대적 동질감, 친밀감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취향이란,  개인이 진행 중인 일생 동안 내면에 구축해 온 라이브러리.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박경진 PD는 DC인이거나, 그랬음에 틀림없다. ‘합필갤’스러운 ‘필수요소 합성법’을 떠올리게 하는 기미작가 리액션 편집과 등장하는 짤방들을 보면 그렇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또 게임 League  of Legend 관련 드립을 이해하고 넣는 모습, 아이돌 그룹 AOA의 특정 멤버에 대한 덕력까지 뽐내고 있다. ‘아프리카캠방’이 무슨 재미인지도 꿰뚫고 있는 듯. 어느 세대의 사람이고, 어떤 것을 즐겨온 사람인지 눈에 보이지 않는가? 최근 '김영만' 선생님을 출연진으로 모신 것과, 그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 양상에서, '마리텔'은 어떤 시대의 사람들을 지지대로 삼고 코드를 펼쳐 나가는 지에 대한 것 역시 유추해볼 수 있다. 더하여 이런 ‘덕력’과 '공통 분모'에서 기인한 드립 혹은 편집으로 펼치는 유머 코드는, 단지 비슷한 것을 좋아하던 사람들 뿐만 아니라 다른 코드를 지닌 많은 사람들도 재미를 느끼게 하며, 프로그램은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네, 저도 PD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킹스맨’은 어떠한가? 매튜 본 감독 역시 비공식 ‘덕력’이 충만한 것으로 보인다. 간단하게는 007 시리즈(킹스맨의 부제인 secret service부터 007 원제에서 따왔다), 영국 신사와 슈트에 대한 동경부터 폭력 묘사 등에서 엿볼 수 있는 쿠엔틴 타란티노에 대한 애정. 그리고 스타워즈의 루크 스카이 워커 역을 맡았던 마크 해밀의 조연 출연, 올드보이의 원테이크 액션씬에서 영감을 얻어 찍은 교회 살육씬,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 오마주 등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그의 취향 범벅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마지막 공주가 수감된 방의 비밀번호가 알파벳 키패드상에서는 A-N-A-L이 되는 등 깨알 같은 화장실 유머도 즐길 줄 아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외에도 '아니 이런 것까지?'할 정도로 숨겨져 있는 올드하고 마이너한 오마주와 '리스펙트'를 찾아볼 수 있다.


"취향이 사람을 만든단다...  취향쓰, 메이킅쓰, 맨..."


 ‘마리텔’과 ‘킹스맨’, 이 두 콘텐츠는 지금 젊은 세대와 같은 시대를 살며 씹고 뜯고 맛본 군것질거리들을 모아 메인 스트림이라는 은식기에 대접해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은 사례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현상이 활발하지만 수면 아래에 잠겨 눈에 보이지 않았던 서브 컬처 코드 및 잡스러운 덕력들이 취향 존중받는 것을 넘어서 하나의 온전한 메인 스트림이 될 준비가 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나 싶다. 한시적으로 유행하는 유행이 지속되면 트렌드가 되고, 사람들의 호불호에 의해 깎이고 다듬어져 정제되면 클래식, 그리고 문화가 된다. 이번에 소개한 ‘마리텔’, ‘킹스맨’의 두 사례가 7080, 8090 컬처에 이은 ‘90-2000년대 즈음에 살았던 사람들의 문화 코드’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으로 자리 잡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흥미로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작성하는 이 글도 필자의 취향이 매튜 본 감독과 박진경 PD의 취향과 공명했기 때문에 쓰게 된 글이 아닐까. 임계점을 넘으면 다음 스테이지가 펼쳐지는 법. ‘이렇게 살아도 될까’ 싶을 정도로 병맛, 또는 개성을 즐겼던 우리의 길티 플레저가 해소되면서, 우리의 취향을 직격 당하기 더욱 좋은 세상이 오길 기대해본다. 새로운 취향 존중 세대가 번데기에서 우화 羽化하는 중이다.






Film, frame, focus, find.   4F.

상하 전후좌우 + 접점 + 본질 = Ans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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