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버에서 : 첫아이와 천연두
카롤리네는 선제후의 후계자의 아내로 하노버에서 생활하기 시작했습니다. 카롤리네는 남편과 매우 행복한 결혼생활을 시작했었습니다. 매력적이고 지적이었으며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을 좋아했던 카롤리네는 남편은 물론 시집식구들과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했었습니다. 하지만 카롤리네는 시아버지인 하노버의 선제후와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관계를 유지했었습니다.
하노버의 선제후는 카롤리네를 며느리감으로 좋다고 여겼지만, 며느리에 대해서 개인적인 호감을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카롤리네는 아마도 남편과 시아버지의 껄끄러운 관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으며 자신이 중간에서 좋은 역할을 하려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시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한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노버의 선제후는 며느리를 냉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아끼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아마도 선제후의 아버지가 선제후보다 며느리를 더 예뻐했고 선제후에게 더 냉담한 모습을 보였던것과 연결될수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카롤리네에게 시아버지는 평생 어려운 사람으로 남게 됩니다.
1706년 5월 프랑스와의 전쟁이 시작되자 선제후는 형제들과 함께 플랑드르 전선으로 가게됩니다. 하지만 그는 아들이 원했음에도 아들을 전선에 데려가지 않고 하노버에 남아서 군인들을 훈련시키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선제후가 아들을 데러가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후계자를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군인으로 공을 세워서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던 게오르그 아우구스트에게 이런 상황은 매우 좌절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아마도 카롤리네가 자신이 임신했다고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카롤리네와 남편은 1706년 봄에 임신했다고 확신했지만 의사들은 아니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결국 카롤리네가 임신했다는 사실이 확실시됩니다. 하지만 예정일에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으며 예정일이 지난 몇달후인 1707년 1월 31일에 둘의 첫아들이 태어납니다. 비록 애매한 상황이 있긴 했지만 하노버와 영국의 후계자가 될 아들이 태어났기고 아이가 태어났을때 특히 아이의 증조할머니인 조피는 매우 좋아했었습니다. 카롤리네의 남편 역시 매우 좋아했는데 그는 원하는대로 전장으로 갈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1707년 7월 카롤리네는 천연두와 폐렴에 걸리게 됩니다. 아이는 당연히 안전을 위해서 카롤리네에게서 멀리 떼어놓았습니다. 하지만 카롤리네의 남편은 죽어가는 아내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위험을 무릅쓰고 아내를 간호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 역시 천연두에 감염되었습니다. 카롤리네와 카롤리네의 남편은 운이 좋았으며 둘다 천연두에서 살아남았었습니다. 그리고 이 상황은 여러 사람들의 마음에 전혀 다른 영향을 미쳤습니다.
카롤리네의 시아버지인 선제후는 아들의 행동을 이해할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그는 후계자를 원해서 아들을 전장에서 멀리 떼 놨었지만, 이제 아들이 전장으로 와야할 시기였고 당연히 전장으로 와야했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죽을 위험을 감수하면서 아내를 돌봤고 천연두에 감염되어서 자신의 일을 망치고 거의 죽을뻔하기까지했었습니다. 당연히 아들에게 불만이 많았던 선제후는 이런상황에서도 아들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카롤리네에게는 남편의 행동은 전혀 다른 일이었습니다. 죽을수도 있었음에도 카롤리네의 남편은 아내 곁을 떠나지 않았고 결국 천연두에 감염이 되었고 함께 생사를 헤맸었습니다. 카롤리네에게 이것은 그녀의 남편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후 남편이 그녀에게 불성실하게 되었어도 결국 진정한 사랑은 자신이라고 여기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