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라디오를 듣는데 DJ가 이런 말을 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와일드하고 프리하게 살지 않는 것 같아요. 저 때는 좀 더 와일드하고 프리했던 것 같아요."
일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라디오를 끄고 나서 계속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와일드하고 프리하게 산다는 건 어떤 걸까. 거칠고 자유로운 삶. 지금 나의 삶이 거치냐고 묻는다면 딱히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일주일에 5일씩 직장에 나가고, 2일은 쉬고, 가끔은 낚시를 다니며 살고 있다. 이런 나의 삶과 비교하면 낚싯배를 운영하는 선장의 삶은 좀 더 와일드하고 프리한 것 같다. 이때의 와일드하다는 말은 수입이 불규칙하면서 일의 강도가 좀 더 높다는 뜻이고, 프리하다는 말은 매일 정해진 요일과 시간에 따라 일을 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DJ가 말한 와일드하고 프리하다는 게 그걸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다. 만약 그렇다면 요즘 젊은이들은 예전에 비해 수입이 규칙적이고 일의 강도는 조금 낮으면서 정해진 요일에 일을 하는 것 같다고 한 꼴 아닌가. 물론 70년대 주류 일자리였던 1차 산업과 비교하면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농부에게 쉬는 날이 따로 있을 리 없고, 광부에게 지금과 같은 안전장비가 주어지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DJ가 말하고 싶었던 건 좀 다른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도전에 관한 부분은 아닐까.
"요즘 젊은이들은 도전을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이렇게 생각하면 좀 더 와닿는 말인 것 같고, 나에게 여운이 남은 것도 이해가 된다. 나 역시 늘 도전을 꿈꾸면서 막상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라면 누구나 도전을 꿈꾸되 쉽사리 실천은 하지 못하고 있지 않을까. 그런 현상은 왜 생긴 걸까.
무언가를 가지기 전과 후는 무척 다르다. 우리나라가 잘 산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건 90년대부터다. 심지어 90년대 초반까지는 북한보다 1인당 GDP가 낮았었다. 하지만 90년대에 급속도로 발전했고, 그 끄트머리에서 IMF를 겪었으며, 지금은 북한과 비교도 되지 않게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60년대, 7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도전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가진 게 없었고, 잃으래야 잃을 게 건강 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국은 짧은 시간에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어느 정도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부모들은 아이들이 더 이상 고생하지 않고 안정적인 삶을 살기를 원했다. 그래서 아이들의 장래희망은 변호사와 의사여야 했고,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는 것이 가장 좋은 효도가 되었다.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셨다. 내 성적표의 장래희망 기재란을 보면 초등학교 2학년 때 복싱선수였다가 4학년쯤부터는 변호사 혹은 의사로 도배되었다. 내가 뭘 알아서 그렇게 적었을까. 변호사가 뭘 하는 사람인지 알게 된 게 아마 고등학생 때쯤이었을 텐데 말이다. 이미 90년대 후반에 그게 안정적으로 돈을 잘 버는 좋은 직업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자연스레 나의 장래희망을 적어주었다.
모든 사람들이 변호사와 의사를 장래희망으로 하면서 다른 직업은 자연히 경시되었고, 도전 또한 바보짓으로 치부되었다. 아마도 IMF 때 수많은 기업들이 쓰러진 탓일 것이다. 한국에서 창업가 정신, 경영자 정신을 가진 젊은이들을 일순간에 패퇴시켜 버린 사건이 바로 IMF 아니었을까. 우리 아버지 역시 의사나 변호사가 아니셨고, IMF 때 호되게 고생하시며 나에게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말씀을 누차 강조하셨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IMF가 지나간 지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 약화되기는커녕 더욱 강해지고 있다. 의대의 합격점수와 경쟁률은 더 이상 비교할 데가 없을 정도로 치솟고 있고, 이제 의대를 가고 싶어 하는 학생들은 재수는 기본이고 삼수, 사수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의대 갈 점수로 공대를 가겠다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의사 면허를 취득한 후 (병원이 아닌 다른) 창업의 길을 가겠다는 인재도 당연히 없다.
도전, 그것은 어쩌면 최근 30년의 한국 사회에선 어쩌면 금기시되는 단어가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다.
꿈을 이야기하는 청년에게 어른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것도 먹고사는 게 해결된 다음의 문제다. 일단 안정적인 직장부터."
절대 틀린 말은 아니다.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도전을 이어나가는 것은 무모하고 매우 힘들다. 그런데 한 가지 핵심이 빠져있다.
'나는 도전하지 않고 그저 의식주를 얻고 싶은가?'의 문제다. 이것이 소크라테스가 말한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와 일치되는 상황은 아니지만, 의식주 해결이 먼저인 사람이 있고 그 부분이 좀 고달파도 도전을 먼저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모든 사람이 같은 건 아니니까 그건 매우 분명한 문제다. 의식주가 해결이 안 되더라도 도전을 먼저 하고, 그게 잘 안 풀리고 끝까지 도전해도 안 되었을 때 다시 의식주를 해결하러 가도 늦지 않다.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발전한 우리 사회의 장점이 바로 그것이다. 속된 말로 막일만 해도 하루 10만 원은 버는데, 밥 굶을 일은 없다.
하지만 도전은 하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미완성인 상태로 남게 된다. 그래서 가난하고 힘들지언정 노래하고, 춤추고, 연구하고, 창업하는 청년들이 있는 것이다. 80년대 이전에 태어난 기성세대보다 그 비율이 적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나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먹고사니즘의 해결에 눈이 멀어 내가 잃어버린 꿈은 무엇이었을까. 지금은 취미로 복싱을 배우고 있어서 내게 복싱선수로서의 재능이 별로 없다는 건 깨달았지만, 와일드하고 프리한 삶에 대한 로망은 여전히 가슴속 어딘가에 남아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