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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션을 발라도 가려워요

by 유송

서른다섯 살 여성 환자분이 진료실에 들어오셨습니다. 얼굴은 그리 아파 보이지 않았지만, 손등을 연신 긁적이며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원장님, 로션을 아무리 발라도 가려움이 가라앉질 않아요.”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새로 이사한 집에서 증상이 더 심해졌다고 했습니다. 원래 출산 후에도 전신 가려움으로 고생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때보다 훨씬 괴롭다고 했습니다. 하루 종일 피부가 따끔거리고, 밤에는 가려움 때문에 자꾸 잠을 설치니, 몸도 마음도 점점 지쳐가는 듯했습니다.


저는 먼저 피부과적 접근을 고려하여 항히스타민제를 권유했습니다. 알레르기 반응에 의한 가려움이라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주일 뒤 다시 찾아오신 환자분은 고개를 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약을 꼬박꼬박 먹었는데, 전혀 나아지지가 않아요.”


그 순간 저는 확신했습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피부 표면에서 일어나는 반응이 아니었습니다. 새집증후군으로 인한 환경적 요인, 출산 이후 회복되지 못한 체력, 그리고 일상 속에 쌓인 피로와 면역력 저하가 겹쳐 만들어진 복합적인 문제였습니다. 피부는 그저 몸속의 불균형을 드러내는 창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환자분께 차분히 설명드렸습니다.
“이건 피부의 문제가 아니라 몸 전체의 문제입니다. 체력이 떨어지고 면역력이 흔들릴 때, 작은 자극에도 몸은 과민하게 반응합니다. 이제는 표면만 다스릴 것이 아니라 몸의 근본부터 회복시켜야 합니다.”


그 뒤로 저는 한 달간 체질을 보강하는 한약을 처방하고, 기혈을 보충하는 치료를 이어갔습니다. 피로를 풀어주고, 자율신경을 안정시키며, 면역이 제 기능을 찾도록 도와주었습니다.


한 달 후 환자분은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으로 진료실에 들어오셨습니다.
“원장님, 이젠 가렵지가 않아요. 밤에도 편히 잘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지난 시간의 고통과, 다시 찾은 평온에 대한 감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 또 한 번 깨달았습니다. 몸의 신호는 늘 정직하다는 것을. 피부에 드러난 가려움은 단순한 증상이 아니라, 지친 몸과 마음이 내는 작은 SOS였던 것입니다. 치료의 방향을 바꾼 순간, 몸은 스스로 회복할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환자분의 미소를 보며 저는 다짐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증상에만 얽매이지 않고, 그 뒤에 숨어 있는 몸의 진짜 목소리에 귀 기울이자고. 결국 환자의 회복은 그 목소리를 얼마나 잘 들어주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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