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메이킹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화신 Jan 12. 2017

<도깨비> 결말이 궁금해?




<도깨비> 결말이 궁금해?
김은숙이 깔아놓은 '복선들'




[TV 리뷰] '간절히 원하라, 신은 듣고 있다'... <도깨비>의 '떡밥' 해석해보니


<도깨비>는 밀도 높은 드라마다. 결정적 '떡밥'들이 촘촘한 개연성으로 엮였다. 전체 주제를 함축하는 상징도 곳곳에 산재한다. 어떤 상징에 눈길을 둘 것인지, 그리고 그 상징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는 개인의 몫이다. 어떤 떡밥을 물 건지는 물고기의 자유인 것처럼. tvN 드라마 <도깨비>를 '촛불'이란 상징에 초점을 두고 풀어보려 한다. 나의 '자유의지'(이것이 중요하다)로 '확대해석'해본다.


촛불, 생성과 소멸이 동시에 깃든 대상


▲도깨비 신부가 촛불을 '끄면' 도깨비가 나타난다. ⓒ tvN


촛불은 <도깨비>를 관통하는 상징적 소재다. 이 드라마의 많은 장면에서 촛불을 볼 수 있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저작 <촛불의 미학>에서 촛불을 대립쌍의 은유로 보았다. 선과 악, 여성과 남성, 물질과 정신처럼 촛불은 '생성과 소멸'이 한 몸에 깃든 물체다. 초는 빛을 내며 액화되고 동시에 기화된다. 초는 빛과 열을 '생성'하면서 동시에 '소멸'해간다. 김신(공유 분)이 이런 존재다. 900년을 넘게 산 영원(생성)이자 동시에 무로 돌아가야 하는 죽음(소멸)이다. 삶과 죽음, 전생과 현생, 이승과 저승, 도깨비와 도깨비 신부, 벚꽃잎과 단풍잎, 기억과 망각... <도깨비>는 대립쌍들로 가득하다(<도깨비>는 꽤 철학적인 드라마다).


지은탁(김고은 분)이 김신을 소환하는 방식에도 그런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촛불을 끄면 김신이 나타난다(물론 라이터도 무관하다). 그런데 첫 회부터 궁금했다. 왜 불을 '켜면' 나타나지 않고 '꺼야' 나타날까. 왜 생성이 아닌 소멸이어야 할까. 이상하지 않은가? 성냥불을 촥-하고 그었을 때, 또는 라이터를 췩-하고 켰을 때 '짠'하고 나타나는 그림이 더 깔끔한데 말이다. 굳이 불을 켰다가 다시 꺼야 도깨비가 소환되는 건 소멸에 방점이 찍힌 설정처럼 보인다.  


▲정식으로 도깨비를 첫 소환한 장소는 성당이었다. 왜일까? ⓒ tvN
▲지은탁이 바다에서 간절히 기도했고, 그때 김신이 나타났다. 첫만남이었다. ⓒ tvN


또한 촛불은 순수함과 불순함의 혼합체다. 촛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중심부, 즉 심지에서 가까운 불빛은 파란색이고 이와 연결되어 있는 바깥은 붉은빛이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이 붉은빛을 더러움과 불순물의 상징으로 보았다. 그것을 태우고 심지 안쪽으로 들어가면 순수한 파란빛이 있다. 여기서 잠깐, 유신우(김성겸 분) 회장이 죽으면서 김비서(조우진 분)에게 남긴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어느 날에 김가 성에 믿을 신을 쓰시는 분이 찾아와 '내 것을 찾으러 왔다' 하시면 드려라. 내가 남긴 모든 것이 그분의 것이다. 그분은 빛 속을 걸어와 푸른 불꽃으로 갈 것이다. 그럼 김신인 줄 알아라."  


'빛 속을 걸어와 푸른 불꽃으로 갈 것이다'란 구절을 듣는 순간 개인적으로 촛불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순수한 중심부의 푸른빛으로 걸어가는 사람, '믿을 신'을 쓰는 김신이다. <도깨비>에서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결정적 힌트처럼 보인다. 김신이 '내 것'이라며 찾으러 올 것이라는 그게 뭘까. 그건 '순수한 믿음' 아닐까. 자신의 이름처럼 말이다.


▲<도깨비>의 한 장면. 한자를 유심히 보길. ⓒ tvN


유신우 회장의 이름도 근거처럼 보인다. 유심히 보면, 저승사자의 명부엔 유회장의 이름이 믿을 신(信)에 만나다 우(遇)로 표기됐는데, 유회장이 죽은 후 김신이 쓰는 조문에선 집 우(宇)로 적혔다. 우(宇)는 집이란 뜻도 있지만 천지사방, 천하, 덮어가리다, 크다는 뜻도 있다. 김신과 주변 인물의 모든 비밀을 아는 전지적 존재였던 유회장이 '믿음의 집'이란 해석을 해본다. 김신(信)이 언젠가 더 간절한 마음으로 천지사방을 덮을만한 더 큰 믿음을 구하며 '믿음의 집' 유신우(宇) 회장(후계자 김비서)을 찾아오면, 그때 그에게 결정적 키를 건네주지 않을까.


들을 청(聽), 연서의 마지막 글자... 신은 듣고 있다


촛불은 간절한 염원의 상징이기도 하다. 성당에도, 교회에도, 절에도 촛불이 있다. 내 방에도, 광화문 광장에도 촛불이 있다. 인간이 무언가를 진실하게 염원하는 곳엔 언제나 촛불이 있어왔다. 나는 이 드라마의 주제가 '인간의 간절함에 깃든 힘'이라고 본다.


▲<도깨비>의 한 장면. '들을 청'을 왜 강조하는 걸까. ⓒ tvN


지은탁이 속을 부글부글 태우며 보고 또 본 도깨비의 연서를 기억하는지? 드라마는 연서의 마지막 글자 '들을 청'(聽)을 강조한다. 지은탁은 어느 날 김신의 손바닥에 자신의 손가락으로 '들을 청'(聽)을 쓴다. 그러면서 이 한자가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김신은 무심히 '들을 청'이라 답한다. 여기서 잠시, 1회에서 한을 품은 김신이 메밀밭에서 검을 꽂고 누운 장면을 기억해보자.


"아무것도 빌지 말라, 신은 듣고 있지 않으니."


김신이 마음속으로 한 말이다. 이름에 '믿을 신'을 쓰는 김신은 신을 불신한다. 무려 9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는 신이 자신의 말을 듣고 있지 않다고 믿어왔다. 가슴의 검은 김신의 '불신의 상징' 아닐까. 신은 지금 김신에게 불신의 벌을 주고 있다.


칼을 뽑는 건 도깨비 신부다. 지은탁이 김신의 가슴에 깊이 박힌 칼(불신)을 뽑으면 김신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정말로 예뻐지는 것(믿음의 회복) 아닐까. 한이 서린 물체인 검이 무로 돌아가고 김신은 '인간'이 되어 '늙어서 소멸'하는 것 아닐까. 무로 돌아가긴 돌아가는데 바로 죽는 게 아니라 서서히 죽음으로 가는 것이다. 여느 인간들처럼.  


김신이 '불신'의 인물이면, 지은탁은 '믿음'의 인물이다. '기도'하는 인물이 지은탁인 것이다. 태어나기 전부터 그랬다. 교통사고를 당해 쓰러진 엄마 뱃속에서 지은탁은 살려달라고 빌었고 김신은 은탁의 엄마(박희본 분)에게 "살려 달라고 한 게 네가 아니었구나"고 말하며 은탁의 존재를 인지한다. 은탁은 늘 신(이든 무엇이든)을 믿고 원하는 것을 염원해왔다. 생일에 엄마에게 떡 대신 케이크를 사달라고 조른 것도 기도하기 위해서였다. 케이크엔 촛불을 꽂을 수 있다. 고등학생이 된 은탁은 바닷가에서도 기도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도깨비를 만났다.


▲은탁이 김신의 손바닥에 '들을 청'을 적고 있다. ⓒ tvN


눈에 보이지 않지만, '믿음'의 지은탁은 지금 김신의 검을 조금씩 뽑아가고 있다. 김신의 손바닥에 '들을 청'을 쓰는 것도 지은탁의 역할이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검이 불신의 상징이면, 검을 뽑는 것도 하나의 상징이다. 왕여(김민재 분)가 김신의 충심을 '믿지 못해' 그 칼을 내렸고, 김신이 전장에서 돌아왔을 때 최고조가 된 왕여의 불신은 결국 김신의 가슴에 검을 꽂게 했다.


도깨비 신부인 지은탁은 김신 가슴의 '불신의 한'을 뽑는 인물이다. 지은탁이 지닌 순수한 믿음, 인간적인 모습 등은 김신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게 진짜 검을 뽑는 과정이다. 신도 그렇게 말했다. 삼신할매(이엘 분)가 유덕화(육성재 분)의 몸에 깃든 신에게 이렇게 물었다. "애초에 죄를 만들지 말고 그럼 완전무결한 세계를 만들지 그랬어." 그러자 그는 이렇게 답한다. "그럼 신을 안 찾으니까." 신은 김신이 자신을 찾길 바라고 있다. 클럽에 찾아온 저승사자와 김신에게도 이렇게 말한다. "모두 듣고 있었다"고.


"신은 여전히 듣고 있지 않다고 투덜대기에. 기억을 지운 게 신의 뜻이 있겠지 넘겨짚기에. 늘 듣고 있었다. 죽음을 탄원하기에 기회도 줬다. 한데 왜 아직 살아있는 것이지? 기억을 지운 적 없다. 스스로 기억을 지우는 선택을 했을 뿐. 그런데도 신의 계획 같기도, 실수 같기도 한가? 신은 그저 질문하는 자일 뿐. 운명은 내가 던지는 질문이다. 답은 그대들이 찾아라."


▲스키장에서 동사할 뻔한 지은탁. 김신이 구해낸다. ⓒ tvN


정말 신은 이미 듣고 있었다. 지은탁이 스키장에서 죽을 뻔한 신을 생각해보라. 은탁이 스키장에 있단 걸 알려준 건 신이 몸을 빌린 덕화였다. 김신이 지은탁을 찾아달라고 간절히 바랐기 때문에 신은 나비의 모습으로 훨훨 날아 은탁이 있는 곳을 찾아준 것이다.


샌드위치 가게 신도 복선처럼 보인다. 육성재의 몸에 깃든 신이 은탁이 건넨 도깨비의 글을 읽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슬픈 사랑 고백이네. 그렇게 100년을 살아 어느 날. 날이 적당한 어느 날..." 덕화의 말 때문에 사랑편지라고 확신하게 된 은탁. 그런데 김신과 저승사자는 그것이 연서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 편지의 내용이 결정적 실마리일 듯싶다. 김신이 신에게 간절하게 보낸 글이 아닐까? 듣고 계실 거라 믿는다는 내용이라면? 그래서 우연히 김신의 편지를 본 신의 마음이 좀 누그러진 거라면?  


기도하라, '간절함'은 어떤 문도 열 수 있다


▲화장실이 얼마나 급했으면... ⓒ tvN


한번은 저승사자(이동욱 분)의 일터인 망자의 찻집에 이승의 인간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였다. 저승사자와 같이 있던 김신은 깜짝 놀라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간절함은 못 여는 문이 없구나."


저승사자도 말한다. "보고도 믿을 수가 없다." 이에 김신이 그런다. "안 보이는 신도 믿으면서, 보이는 인간의 간절함은 왜 못 믿어? 그게 인간의 의지라는 거다. 스스로 운명을 바꾸는 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김신이 저승사자에게 묻는다. "아, 그때 너네 찻집 열고 들어왔던 남자 기억나?." "어떻게 잊어. 근데?" "인간의 간절함은 못 여는 문이 없고, 때론 그 열린 문 하나가 신의 계획에 변수가 되는 건 아닐까? 그래서 찾아보려고 간절하게. 내가 어떤 문을 열어야 신의 계획에 변수가 될 수 있는지."


김신은 인간과 신의 중간적 존재이므로, 신으로서 누군가의 소원을 들어줄 수도 있지만 인간으로서 신에게 소원을 빌 수도 있는 인물이다. 이 드라마가 가혹한 운명을 극복하고 해피엔딩을 맞는다면, 그 열쇠는 바로 불신의 아이콘 김신의 순수한 믿음과 그 믿음을 바탕으로 한 '간절함'일 것이다.


결국 이 드라마의 모든 저주를 푸는 열쇠는 '기도'가 아닐까 싶다. 촛불 아래서 우리가 하는 그것 말이다. 다른 말로 풀면 '언제나 듣고 계시는 신에게 간절히 염원을 말하는 자유 행위' 다. 처음부터 그랬다. 삼신할매(이엘 분)는 은탁이 엄마에게도, 은탁이에게도 이렇게 말했다.


"생사를 오가는 순간이 오면 염원을 담아 간절히 빌어. 혹여 어느 마음 약한 신이 듣고 있을지도 모르니."


도깨비 신부가 쌓아온 '선'(善)이 결정적 변수될 것


▲자살하려는 인간을 구하는 김신 도깨비. ⓒ tvN


인간의 간절함이 결정적 열쇠라면 인간의 '선'(善)은 이 드라마의 결정적 변수가 될 것이다. 지은탁은 한이 서린 귀신들을 계속 도와왔다. 할머니 귀신(황석정 분), 고시원 귀신, 남편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 귀신, 엄마친구 귀신 등의 억울함을 열린 귀로 듣고 행동으로써 대신 나서 해결해줬다. 어쩌면 은탁은 도깨비 신부로서의 역할(불신과 악의 상징인 검을 뽑는 일)을 삶 속에서 계속 해온 것이다(목 뒤의 점도 점점 옅어지고 있다). 신도 은탁의 선함을 지켜봐왔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지은탁이 죽어야만 하는 기타누락자이고, 도깨비의 검을 뽑지 않으면 죽을 운명이라고 해도 쌓아온 선으로 변수를 만드는 것이다. 김신의 누이 김선(유인나 분)의 이름자에 '착할 선'(善)을 쓴 것도 메시지를 담은 설정 아닐까. 믿음(信)과 착함(善)은 같은 피를 나눈 남매다.


참, 이 긴 글은 촛불을 중심 상징으로 삼고 시작했다. 끝으로, 촛불은 사랑의 표상이기도 하다. 자신을 희생해 어둡고 추운 곳을 빛과 온기의 공간으로 바꿔놓는다. 자살하려는 인간의 집에 찾아와 샌드위치를 건네는 도깨비(요즘은 술을 먹지 않고도 착한 짓을 많이 한다), 원래부터 약자의 편에서 그들을 도왔던 도깨비 신부는 둘 다 촛불 같은 존재다. 저승사자도 망자들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들어오신 문으로 나가시면 됩니다. 저승은 유턴입니다." 착하게 살았다면 착하게 산 대로, 못나게 살았다면 못나게 산 대로 저승의 삶이 주어지는 것 아닐까.


▲<도깨비>에서 김신과 지은탁은 '촛불'로 엮어있다. ⓒ tvN


결말이 어떻게 날지 아무도 모르지만 정리하면 이렇다. 1. 믿음을 회복하고 신에게 간절히 부탁하라(신은 언제나 듣고 있다) 2. 자유의지로 결정 내리고 행동을 취하라(간절하게 바라는 것 그 자체도 자유의지다) 3. 남을 도왔던 모든 선이 도움을 줄 것이다. 김은숙 작가는 전작 KBS2 <태양의 후예>에서 직업의식을 조명했고, 이번 <도깨비>에선 신과 인간이란 좀 더 큰 주제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쯤에서 털어놓자면, 사실 불안한 마음도 있다. 이렇게 복선들을 부여잡고 끙끙댔지만 턱도 없는 허무함으로 끝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간간이 등장하는 나비가 눈에 밟힌다. 혹시 이 모든 게 호접몽 아닐까? 드라마의 맨 첫 장면에도 나비가 등장한다. 메밀밭에 꽂힌 녹슨 칼 하나, 그 위를 날아다니는 하얀 나비. 구둣가게에서 근심에 사로잡힌 저승사자는 동료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근데 넌 잊은 기억이 궁금한 적 없니." (저승사자)

"잊은 기억이란 게 뭐야. 없는 기억과 마찬가지 아니야? 애초에 없었던 걸 왜..." (동료)


▲검 위를 날아다니는 흰색 나비 한 마리. ⓒ tvN
▲저승사자는 말한다. "들어오신 문으로 나가면 됩니다. 저승은 유턴입니다." ⓒ tvN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손화신 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입력 17.01.12 18:01




http://omn.kr/m372


매거진의 이전글 비올라의 멜랑콜리, 쓰고 달달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