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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상담노트

음악과 심리상담: 시간 속에서 드러나는 존재의 예술

상담노트 32

by 단팥크림빵

최근 제러미 덴크의 <이 레슨이 끝나지 않기를>을 읽으며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피아노 레슨 여정을 통해 음악의 본질을 탐구하는 이 책이, 상담 현장에서의 경험과 놀랍도록 맞닿아 있었습니다. 이 책은 음악과 상담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존재의 예술로 펼쳐지는지 확인시켜줍니다.


음악과 상담은 모두 구조와 원리를 지닌 기예입니다. 동시에 예측할 수 없는 생생한 순간 위에서 이루어지는 예술이기도 합니다. 악보의 틀이 있어도 매 연주마다 다르게 구현되듯, 상담도 상담이론과 연구를 기반으로 하지만 매 만남이 새롭게 전개됩니다. 이러한 점에서 음악과 상담은 모두 과학이자 예술의 성격을 함께 지닙니다.


연주와 상담의 시간은 단순히 연속적으로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매 순간 새로운 가능성과 의미가 생성되는 ‘현존적 시간’입니다. 이때 연습, 학습, 자아의 표면적 노력들은 전면에서 물러나고, 대신 ‘존재 그 자체’가 작동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 선 자리에서 희망, 상상력, 놀이, 그리고 창조적 에너지가 일어납니다. 피아니스트 제러미 덴크가 셰복의 레슨에서 깨달았듯, “리듬은 시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대해 연주하는 것”이며 “이제야 영혼을 가진 박이 되었다. 그리고 이 박은 이야기가 말이 되도록 하는 단서"가 됩니다. 상담도 마찬가지로 주어진 시간의 흐름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새로운 이야기를 구성하는 창조적 과정입니다.


음악이 언어를 초월하듯, 상담 또한 언어적 전달을 넘어섭니다. 언어는 상담의 수단이지만, 진정한 변화는 그 이면에 존재하는 즉시성(immediacy), 곧 ‘지금-여기’의 상호현존에서 비롯됩니다. 상담에서의 즉시성은 음악의 즉흥성과 유사합니다. 그 안에서는 이론이나 기술보다 두 존재의 관계적 감수성이 중심이 됩니다. 매뉴얼도, 정답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너와 나’, 그리고 그 관계만이 현전합니다. 덴크의 메모처럼 셰복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다 이루어진다”는 선불교적 지혜가 여기에 스며듭니다.


상담자의 감수성과 역량은 음악가의 숙련도와 닮아있습니다. 같은 악보를 연주하더라도 연주자는 각자의 시간, 호흡, 해석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합니다. 상담자 또한 자신이 축적해온 학습과 자기 성찰의 흔적이 한순간의 만남 속에 드러납니다. 그 흔적들은 사라지지 않고, 지금 이 자리의 대화와 상호작용 속에서 미세한 울림이 되어 나타납니다.


음악가가 오랜 수련 끝에 결국 ‘존재하며 연주하기(being while playing)’의 단계로 이르듯, 상담자 또한 오랜 임상 경험과 자기 탐색을 통해 ‘존재하며 만나기(being while encountering)’의 자리에 다다릅니다. 이러한 만남은 실존적이며, 나아가 영적인 차원으로 확장됩니다. 역사적으로 종교음악이 인간의 영적인 연결을 추구하고 실현하기 위해 발전했듯, 상담 또한 인간 영혼의 회복과 성찰을 매개하는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슈베르트 음악에 대한 덴크의 해석처럼 우리 삶의 ‘충분치 않음’을 그저 마주하기 위한 노력이 됩니다.


결국 음악과 상담은 모두 ‘시간 위에서 이루어지는 예술’입니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순간적 만남이 펼쳐지고, 그 순간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그리고 자신을 다시 듣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두 영역은 예술과 과학, 존재와 관계, 시간과 영원을 잇는 통로가 됩니다. <이 레슨이 끝나지 않기를>은 이 통로를 일상적인 언어로 위트있게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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