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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ry Taewoong Um Dec 25. 2021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

행복은 결코 '나'를 떠날 수 없다


나는 죽음을 앞둔 이들, 혹은 죽음의 문턱을 맞아 본 이들의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오늘이 삶의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라'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실제로 그런 삶을 사는 건 참 쉽지않다. 우리에겐 오늘이 아니어도 내일이 존재하고, 갑자기 오늘 변화를 꾀한다는 건 기존 관계와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미움을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을 앞둔 이들은 실제 '오늘이 삶의 마지막인 것처럼' 사는 이들이다. 말로만 듣던 '내 인생의 유한함'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사람들은 그제야 더이상 타인의 시선이나 미움에 휘둘리지 않고 내 소중한 생명에 가장 큰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득 낀 거품과 허영들을 걷어낸 채, 지금껏 자신의 삶을 직시할 수 있는 담백하고 담연한 시선을 갖게 된다. 오롯히 내 자신만이 내 삶의 계획자이자 실행자이자 평가자일 수 있다는 걸 다시금 느끼며, 더이상 타인이나 사회가 내 영혼의 지배자가 되는 걸 허락치 않는다. 죽음을 앞둔 이들의 글에선 그렇게 내 안의 깊은 호흡으로 돌아보며 인생의 본질을 찾아가는 힘을 느낄 수 있다.


저자인 유창선님과는 약 5년 전 페이스북을 통해 인연을 맺었다. 사회, 정치에 관심이 많고 한 때 사회/정치분야 글을 많이 남겼던 나는 편가르기에 따라 달라지는 정의가 아닌, 진짜 중요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와 그들에게 조명을 비추는 균형있는 아젠다 세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러한 점에서 유창선님이 남기시는 글은 나의 생각과 많은 부분이 맞닿아 있었다. 그래서 그 분의 글을 즐겨 읽게 되었고 멀리서나마 항상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봤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가 뇌종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 이후에도 워낙 글을 또렷하게 잘 남기셨기에 처음엔 '수술만 잘되면 회복할 수 있는 병'이라 생각했지만, 그 후로 걷다가 혼절한 이야기, 넘어지며 크게 다칠 뻔한 이야기, 마비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이야기, 한걸음 딛는 것에 감격하는 이야기 등 페이스북을 통해 힘겨운 재활 이야기를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책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이 나왔다. 힘겨운 몸 상태에서도 병상에서의 책을 남겼다고 했을 때, 나는 그의 마음을 100% 이해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 역시 생각하는 것이 곧 생명이고 삶이며, 쓰는 것은 '숨쉬는 것'과 같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행위이자 존재함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생명력 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이 나오자마자 집어들었고, 연말이 되어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었다.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

유창선님의 젊은 날의 회고처럼, 나 역시 몇년 전만 하더라도 '세상의 대의'를 위해 열심히 세상과 부딪치는 젊음을 살았던 것 같다. 누가 내게 삶의 의미를 물으면 나는 이렇게 답하곤 했다.


"저는 참 복 받은 사람이에요. 제가 얻은 것은 결코 제가 노력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었죠.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똑똑한 머리, 다양한 재능, 풍족한 환경, 그리고 주변 많은 분들이 보내주시는 사랑까지... 저는 제가 너무 많은 운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세상엔 정말 힘겨운 조건들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죠. 장애든, 가난이든, 가정환경이든, 정치환경이든, 선택할 수 없이 무조건적으로 주어진 조건으로 인해 평생을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저의 '복받은 운'을 이러한 분들을 위해 사회에 돌려드리는 삶을 사는게 제 소명이라고 생각해요.

저 혼자 잘 사는게 목표였으면 그리 어렵지 않았을 거에요. 하지만 전 내가 아닌 세상을 위해 가치를 만드는게 제가 운좋게 태어난 소명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돌이켜보면 참 예쁘기도 하고, 멋져보이기도 하고, 심지어 거룩하기까지 한 말인 것 같다. 하지만 최근 3년동안 내 삶엔 참 많은 굴곡들이 일어났고, 그런 일들을 겪으며 나의 한계와 부족함과 악함과 표리부동함을 느꼈다. 이제야 내가 뱉는 말의 무게를 느끼기 시작했고, '자신을 위한 삶'이 결코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자신 인생의 무게를 제대로 힘껏 맞들고 있기에 '자신과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삶'을 산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훌륭한 꿈"을 품었던 건 내가 위대해서가 아니라 내 삶의 무게를 주위 사람들이 대신 떠안아 준 덕분이란 것도 알았다.


그래서 요즘엔 '나'에 대해 알아가는 중이다. 그래서 더더욱 이 책에서 말한 내용들이 공감이 간다

나는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는가. 나를 위해 살고 있다는 대답을 주저 없이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용기를 내는 사람만이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정의를 부르짖던 시대엔 옳은 말을 하기위해 세상을 향한 "용기"를 냈어야 했다면, 개인주의와 다면화 된 사회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 필요한 "용기"는 누군가의 계몽을 위해 부르짖는 정치적 외침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세상의 기대나 게임 속의 당근에 현혹되지 않고, 허영과 욕심을 벗어던지고 건조하면서도 진솔한 시선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나"라는 개인으로서의 당당한 선언,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용기"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의 나는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지 않기위해 지역성(locality)을 벗어나 전역성(globality) 향해 달려갔었다. 학교 1등이 아니라 지역 1등, 그것을 넘어 우리나라 1등, 세계 1등이 되기위해 모든 나약한 핑계들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향해 가혹한 채찍찔을 휘두르는 로봇과 같은 사람이었다. '감정'은 내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이고 남들이 알아주는 것이 아니기에, 내가 기쁘든 힘들든 만족하든 괴롭든, 그런 것은 다 집어치우고 목표를 향해 내달려야 했고, 따라서 난 내 감정을 무시하고 조작하는데 도가 통했었다. 당연히 다른 사람의 감정은 더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부터 '나'를 이해해보려 한다. '전역성'을 향해 끈임없이 발산했던 나에서 방향을 바꿔, 가장 지역적이고 개인적인 '나'로 하나둘씩 관점을 돌려보려 한다. 더이상 사회/정치 문제가 세상에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운좋게 갖게된 복을 나만 누리겠단 이기심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뿌리를 찾기 위해서다. 비어있는 내 인생부터 채워 흔들리지 않는 삶이 되기 위해서다. 내 인생이 인간적인 고뇌와 숨소리로 채워져야, 혹시 나중에라도 다시 세상을 향해 무언가를 하게 된다면 표리부동 하거나 현혹하고 선동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나를 향한다는 말은 결코 세상을 향한다는 말의 반댓말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수록했던 장 자크 루소의 "고백록"에 나온 내용을 공유한다.


해가 뜨면 일어나니 행복했다. 산책을 하니 행복했다. 엄마를 보니 행복했고 그녀 곁에서 물러나니 행복했다. 숲과 언덕을 두루 돌아다녔고 골짜기를 떠돌아다녔으며, 책을 읽었고, 빈둥거렸으며, 정원을 가꾸었고, 과일을 땄으며, 살림을 도왔는데 행복은 어디서나 나를 따라다녔다.

행복은 무엇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 있는 어떤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내 안에 있어서 단 한순간도 나를 떠날 수 없었다. (장 자크 루소 "고백록" 6권)


덧) 만약 세상으로부터의 인정이나 세상과의 싸움, 혹은 세상을 향해 나를 발산하는 것에만 몰두해 살다가 한번쯤 '내가 잘 살고 있는건가?' '이렇게 살다 죽어도 되는건가?' 싶은 고민이 든다면 이 책,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 (유창선 지음)"을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다. 삶에 대한 되짚음 뿐만 아니라 가끔씩 있는 인문학 고전의 인용도 참 좋다. 고전을 읽고 싶다는 (사실 그보다는 유창선님이 인문학을 다룬 다른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하는 책이다.

덧2) 앞으로도 이 브런치의 글들은 독후감 같지만 사실은 독후감이 아닌 책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나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공간이 될 것이다. 책은 읽고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책과의 대화를 통해 나를 돌아보게끔 하는 도구라 생각한다. 많은 분들도 이 책과 대화를 나눠보시길 권해드린다.


덧3) 관련 글로 나의 저서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에서 적었던 글인 "내게 뒤쳐질 수 있는 행복을 허하라"라는 글을 소개해드린다. (지금 보니 너무 아기같은 글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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