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ochrome blues Apr 23. 2019

나에게 풍기는 냄새가 궁금하다.

땀쟁이만의 애환적 사고.

   ‘땀쟁이’들은 턱밑까지 쫓아와버린 여름이 두렵다. 여름은 그들에게 곤혹스럽고 부담스러운 계절이다. (만약 ‘진짜’ 땀쟁이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사실 여름보다 겨울 쪽이 더 곤란하다는 말을 공감해주리라 믿는다.) 땀은 땀대로 육수 뽑듯이 샘솟는 데다 마르고 난 뒤의 끈적함은 아무리 경험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찝찝하고 불쾌하다. 거기에 땀 자체보다 더 신경 쓰이는 ‘땀냄새’ 쪽도 있다. 땀은 직접 살을 맞댄 경우가 아니고서야 오롯이 본인만의 불편함이다. 멀찍이 떨어진 타인이 불편할 일을 꼽아봐야 쉴 새 없이 흐르는 땀을 바라볼 때 동반되는 답답함 혹은 안쓰러움 정도일까? 허나 냄새는 다르다. 그들은 쉽고 빠르게 주변을 잠식하며, 퍼지고 나서는 집요하게 주위 사람들의 코 끝을 때린다. 익숙해져 역치에 다다르더라도 여전히 코끝을 살살 간질이는 불쾌함이란. 그리고 그 불쾌함의 근원이 본인일 때의 민망함이란. 상상하기도 싫지만 땀쟁이들에게는 곧잘 현실로 벌어지는 삶의 전투다. 땀쟁이들은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매일같이 지는 싸움을 해야만 한다.  


   자기 살 냄새를 시시각각 맡을 수만 있다면 적당히 대처할 수라도 있을 텐데. 애석하게도 본인의 살 냄새를 스스로 맡기란 매우 힘들다. 가끔씩 맡아질 때도 있긴 하지만, 자기 땀냄새를 자각할 수 있을 정도까지 왔다면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가버린 상태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밀폐된 공간 속 화생방 훈련이나 가을 한창때의 은행나무 아래와 견주어볼 만할 테니. 보통 후각 기관은 본인 체취나 땀냄새에 너무 적응되어 있어 맡을 수 없는 쪽에 가깝다고 한다. 나에게는 무색무취 같지만 남들은 곧잘 맡는 고유한 흔적이 된다.


   사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아니더라도 몸에서 나는 땀냄새나 체취가 궁금하고, 또 맡아보고 싶다. 평소 어떤 냄새가 나는지 알고 나면 좀 더 자주 씻는다거나 향수를 써서 기본적인 체취를 보완할 수도 있을 테니. 본인에 대한 자각과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발로로써. 허나 맡을 도리가 없으니 유지하면 되는지, 혹은 개선점이 필요할지 등등,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또 다른 이유는 내가 냄새 자체에 민감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향기의 호불호가 확실하며, 명확히 정의 내릴 수는 없지만 좋아하는 살 냄새 부류가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나의 것도 알고 싶은데, 애초에 맡을 수가 없으니 호인지 불호인지조차 알 수 없다. 고약스러울 때만 겨우 맡을 수 있으나 그 경우는 빼고 말하는 쪽으로 하고 싶다. 나의 체취 역시 내가 좋아하는 류이길 바라지만. 늘 불안하다. 좋지 않은 냄새일까 봐, 혹은 이미 풍기고 있을까 봐.

어딘가 불안한 마음.


   생각해보면 ‘글’도 땀냄새라던가 체취와 비슷하다. 다른 사람의 글은 읽다 보면 그 사람만의 스타일이나 버릇 같은 것들이 보일 때가 있다. 나도 저렇게 쓰고 싶다던가 이런 흐름은 나중에 시도해보아야겠다는 선망 같은 감정도 부수적으로 생기고. 하지만 내 글에서는 도통 느낄 수가 없다. 무색무취다. 쓰고 나서 내용을 까먹을 정도로 오래 묵혔다 꺼내보았을 때의, 그 조잡스러움에 얼굴이 붉어지는 경우와는 다르다. 내 글만은 어떤 스타일인지, 스타일이란 것이 있긴 한 건지 알 수가 없다. 잘 쓰고 있는 건지 이렇게 써가면 되는 건지, 어떻게 해야 더 맛이 날지 등등. 스스로의 고찰만으로는 맡아지는 흔적이 너무나 희미하다.  


혹시라도 무색무취한 글을 쓰고 있어 맡을 수 없었던 것이라면.  
조금은 울고 싶어 질 것 같다.


   글을 지금보다 잘 쓰고 싶다. 훨씬 많이. 언제나 진심으로. 그렇기 때문에, 내가 쓴 글의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문장은 괜찮은지 읽는 호흡이나 쉼표, 마침표는 다른 사람의 호흡에서도 자연스럽게 읽히는지. 의미는 제대로 전달되고, 마음에 닿는 구석이 있는지. 내가 좋아하는 살 냄새처럼, 4월의 봄바람처럼 따스하거나 10월 초 즈음의 저녁노을처럼 청량감 있는 쪽이었으면 좋겠다. '땀쟁이'만의 애환을, 쓰고 있는 글에서까지 겪고 싶진 않아서.

이런 느낌의 글이었으면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흑백필름 이야기_#1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