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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Apr 19. 2017

정말 좋은 순간에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걸

콜드플레이 첫 내한공연 후기

 시험공부를 하던 책을 내려놓고 열람실 문을 나설 때, 종합운동장 역으로 향하는 지하철 2호선에 오를 때, 종합운동장 역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를 봤을 때, 마침내 공연장 입구에 도착했을 때, 입장 수속을 끝내고 손목에 자이로밴드를 찼을 때, 좌석에 앉아 제스 켄트의 워밍업 무대를 볼 때, 그 공연이 끝나고 30분의 공백을 지나갈 때, 그리고 공연 시작 시간인 8시가 되었을 때, 8시가 되어도 나오지 않는 콜드플레이를 기다리며 모든 관객들이 한 목소리로 Viva La Vida를 떼창할 때, 순간 순간을 지날 때 마다 내 가슴은 점점 더 빨리 뛰게 되었고, 마지막쯤에는 이러다 심장이 터지지는 않을까 걱정할 정도가 되었다. 콜드플레이가 나오면 뭘 해야 할까. 일어나서 소리를 질러야 하나, 아니면 경건한 자세로 경청해야 하나,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서 두고두고 보는게 나을까, 아니면 순간에 집중하며 머릿속에 깊게 새기는게 나을까, 정말 짧은 몇 분 사이에 많은 생각을 했다.

이 글에 쓰인 사진은 그래서 대부분이 친구들이 찍은 사진이다. 내가 찍은 사진은 제대로 된 것이 별로 없다.

 그리고 콜드플레이가 19년의 기다림 끝에 무대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누군가는 기쁨에 겨운 함성을 지르고, 누군가는 기립을 하고, 누군가는 영상을 촬영하는 가운데, 무엇을 해야 할지 정말 많은 고민을 했던 내가 한 것은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 그냥 무대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정말 소중한 기회여서, 공연을 즐기기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그냥 그렇게 멍하니 무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워서 그렇게 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정말 좋은 순간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걸.


 콜드플레이는 더 좋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하는 밴드였다. 그렇게도 좋아하는 밴드가 내한을 하니 당연히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공연장의 120분이 지난 후, 나는 지금까지 콜드플레이를 사랑했던것보다 그들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콘서트의 현장에서 라이브로 알고 있는 노래들을 들으면, 알고 있는 곡이라서 느껴지는 익숙함에, 라이브의 신선함이 더해져 좋은 시너지를 이룬다. 어떤 밴드의 콘서트를 가기 전에 그 밴드의 곡을 한번씩은 다 들어보고 가는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공연장에서 들은 Yellow, The Scientist, Everglow, Charile Brown, Paradise, Viva La Vida 등은 그래서 정말로 좋았다.

 반면 모르는 곡은 모 아니면 도다. 잠시 쉬어가는 타이밍을 갖거나, 아니면 생전 처음 들어보는 곡이 마음 속에 깊게 박히게 되거나. 몇 번의 다른 뮤지션의 공연들에서, 모르는 노래를 처음 듣고 마음에 쏙 들었던 경우는 열 곡 중 한 곡 꼴이었다. 거의 모든 모르는 노래는 내게는 쉬는 시간이었던 셈이다. 콜드플레이는 달랐다. 처음 들었거나 그냥 지나쳤던 곡들이, 무대가 끝나고 나니 과거에 좋아했던 곡들만큼 좋아하는 곡들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정말 좋아하는 곡이 된 Hymn for the weekend, 그리고 Something just like this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야 할 것 같다.

 Coldplay - Hymn for the weekend

 3집 이전의 콜드플레이를 사랑하던 내게, 6집 이후로 또다른 변신을 시도한 콜드플레이는 꽤 거북하게 느껴졌다. 아마 이 Hymn for the weekend는 인트로만 듣고 넘겨 버렸을 확률이 농후한 그런 곡이다. 하지만 공연 이후, 하루에 적어도 여섯번에서 일곱 번 정도는 이 곡을 듣는 것 같다. 코러스에서 한 목소리로 떼창하는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다.


The Chainsmokers & Coldplay - Something Just Like This

 체인스모커즈는 Paris, 그리고 Closer 때문에 최근에 듣기 시작한 뮤지션이다. 하지만 그들의 곡 중에는 Selfie도 있다. 그 곡을 듣고 나서는 약간 거부감이 생겨서 체인스모커즈의 곡을 잘 듣지 않게 되었고, 가장 좋아하는 밴드인 콜드플레이와 콜라보레이션을 한 이 Something Just Like This 역시 잘 듣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날 공연장에서, 많은 노래들이 나를 뛰게 하고, 전율하게 하고, 소리 지르게 했지만, 유일하게 이 노래만이 나를 눈물짓게 했다. 너무나 예쁘고 설레는 가사에, 활짝 웃으며 눈물을 머금게 되었다.


She said where'd you wanna go?

그녀가 물었어, "넌 어디로 가고 싶은거야?

How much you wanna risk?

얼마나 감수할 수 있어?
I'm not looking for somebody with some superhuman gifts

난 초능력을 가진 누군가를 찾는게 아냐

Some superhero

어떤 슈퍼 히어로나
Some fairytale bliss

어떤 동화 속 행복을 바라는게 아냐
Just something I can turn to

그냥 내가 기댈 수 있는
Somebody I can kiss

내가 입맞출 수 있는 누군가를 찾는 거야

I want something just like this

난 그냥 그런 걸 원하는거야


 최고 뮤지션 반열에 오른 콜드플레이의 공연은 일반적인 밴드의 공연과는 꽤 달랐다. 보통 밴드의 공연은 러닝타임이 있고, 그 시간동안 해야 하는 각각의 곡들이 있다. 콜드플레이의 공연은 그와는 다르게, 마치 120분짜리 뮤지컬 한 편을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몇 분에 어떤 곡을 시작하고, 이 곡이 끝나면 스태프들은 어떻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지, 곡의 1절이 끝나면 기타리스트에게 어떤 기타를 갖다주어야 하는지, 심지어 곡의 어느 부분에서는 레이저를 어떤 부분으로 쏴야 하는지, 그런 세세한 것들이 모두 계획되어 있는 것 같았다. 자이로밴드라는 장치는 그런 시스템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곡에 맞는 색깔로 발광하는 이 장치 덕에, 관객 하나하나가 공연장의 일부, 공연의 일부가 되고, 공연의 계획에 맞춰 관객들 역시 움직이게 했다. 그렇게 치밀하게 설계된 공연은, 최고의 완성도를 120분간 유지했다. 대신 공연은 120분으로 정확히 끝이었다. 앵콜을 원하는 관객들 앞에는, 텅 빈 무대의 스크린에 내려가는 엔딩 크레딧이 있었다. 그들의 무대가 공연인지, 아니면 잘 짜여진 무대인지, 그런 정체성을 잘 보여준 요소 중 하나가 아닐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3집까지의 감성적인 음악 때문에 콜드플레이에 빠졌는데, 이제 그들은 완전히 퍼포먼스가 강점인 밴드 - 그들의 음악성을 깎아내리려는것은 절대 아니고, 단지 그들의 주 무기가 음악 그 자체보다는 퍼포먼스가 되어버린 것 같다는 의미이다 - 가 되어 있었다. 화려한 조명과 무대 연출, 그것들을 위해 수 많은 장치와 스태프들이 동원되야 했고, 그들 공연의 1분 1초는 엄청난 돈이 들어가버려서, 앵콜조차 함부로 할 수 없게 되버린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스탠딩 관객들 사이에 마련된 C 스테이지에서, 1집과 2집의 곡인 Don't Panic과 God Put A Smile Upon Your Face, 그리고 In My Place를 돌발적으로 연주해준 그들의 모습은 잘 짜여진 공연을 보며 묘한 기분이 되었던 내게는 충분한 보상, 팬 서비스가 되었다. 그리고 공연 초반에 연주했던 Yellow와 The Scientist, 그리고 최근 앨범 수록곡인 Everglow를 피아노 연주 하나에 기대어 공연하는 모습 등에서, 변신을 거듭하는 와중에도 그들이 처음 시작할 때 가지고 있었던 색깔은 변치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공연을 보고 난 뒤 콜드플레이의 노래를 많이 듣는다. 공연장에서 들었던 곡들을 들으면, 그 날의 기억이 되살아난. 5만 개의 자이로밴드가 넘실대고, 화려한 무대 위로 크리스 마틴이 춤을 추고, 그 앞에서 넋이 나간 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무대만을 바라보았던 그 날. 그렇게 되살아나는 기억은 내게 다른 곡을 듣게 하거나, 그 날의 사진이며 영상들을 찾아보게 한다. 그렇게 여운의 파도가 휘몰아치다가, 그것이 빠져나가게 되면 나의 마음은 한없이 공허해지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다시 음악이며 영상을 보거나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나는 그 날의 공연을 추억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은 들지만, 정말 좋은 순간에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 날의 공연은 짧은 여운을 남길 정도로 시시한 공연이 절대로 아니었으니까.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지금 내 모습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좋은 공연 뒤에만 겪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어쩌면 특별한 지금 이 순간, 어쩌면 그날의 좋은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것일지도 모르는 지금을, 거스르지 않고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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