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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thewind Nov 02. 2019

결백하지만 무례한 불청객에게

얼마 전, 오전에 외출했다가 오후 4시 쯤 집에 왔는데 현관 왼쪽 방에서 푸드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려 방 안을 들여다 본 나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참새였다. 방에 참새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분명히 집에 있는 문을 다 닫고 나갔고, 환기를 위해 약간 열어둔 거실 창도 방충망은 닫아둔 상태였다. 어디로 들어온 거지?! 완벽한  밀실이었다고. 오전 오후 다른 일을 한데다 저녁까지 처리하기로 한 일이 하나 더 있어서 안 그래도 정신 없는데 정말이지 주저 앉아버리고 싶었다. 


누군가 집에 침입하려고 창문을 열고 들어오는 와중에 딸려 들어왔나, 하는 것이 제일 먼저 든 생각이자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동네 친구에게 연락을 하니 속옷이 잘 있는지 찾아보라는 엉뚱한 소리를 했다. 노트북을 들고 나갔던지라 귀중품이랄 건 없었는데 현금도 아니고 속옷을 확인하라니. 친구의 말은 변태 침입 가능성을 확인해보라는 거였고, 대충 둘러봐도 물건에 손을 댄 흔적은 없었다. 


사람이 들어왔던 건 아닌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자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고, 거실의 창을 방충망까지 활짝 열었다. 참새가 방과 거실을 오가며 불투명한 이중창 유리에 몇 번이고 몸을 던지고 있었기 때문에  문만 열어둔다면 알아서 나갈 것 같았고, 실제로 거실 창을 열고 내가 방에 들어간 사이 금세 사라졌다.


그제서야 집안 여기저기 참새가 지려놓은 물똥이 보였다.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내니 오늘 들어온 게 아닐 수도 있어, 냉장고 알에서 깨고 나온 거 아닐까, 하면서 농담을 했지만 나는 확실히 안다. 저 생명체가 이 집에 있었다면 내가 몰랐을 리 없다.


참새가  나간 걸 확인하자마자 방충망을 닫았다. 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데 침대에 가보니 베개와 쿠션에도 깃털과 물똥의 흔적이 보였다. 온 몸에 기운이 빠져서 눕지 않을 수는 없어서 그 부분을 피해 침대 구석에서 웅크리고 몸에 힘을 뺐다. 물론 사람의 침입 가능성  때문에 제일 놀랐던 건 맞는데 새가 이 공간에 있었고 흔적을 남겼다는 것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생각보다 컸다. 누가 다녀간 흔적을 공기에서 느낄 수 있다고 하면 거짓말 같지만 실제로 할머니 댁 옆집에 살 때 고모가 와서 냉장고에 반찬을 넣어두고 간 날이면 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긴장하곤 했다. 신발 배열, 식탁 의자의 위치, 늘어놓은 책과 잡지의 순서, 소등 상태, 그리고 공기. 나만 알 수 있는 미세한 차이가 있고 그건 공기에서마저 느껴진다. 근데 이 새는 온 집의 공기만 휘져어 놓은 게 아니라 여기저기 물똥을 지려놨어. 손톱보다 작은 새털도 보이는데 눈에 안보이는 흔적은 얼마나 더 많을 거야. 누워있었지만 온전히 눕지 못한 상태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곧 동네 친구가 도착했다.


얼굴에는 마스크, 손에는 니트릴 장갑을 낀 친구는 탐정 코스프레에 충실한 표정으로 현관에 들어섰다. 이 곳은 완전한 밀실이었다는 나의 주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친구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1. 사람에게는 밀실이지만 새에게는 밀실이 아니었다. 창문 틈, 연통 등으로 들어왔을 수 있다.


2. 내가 나가면서 현관문이 열렸을 때 이미 건물에 들어와있던 참새가 집으로 들어왔을 수 있다.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임)


3. 여튼 인간이 침입할 때 딸려 들어온 것 같진 않다.



친구가 올 때까지 현장을 보존하느라 새똥에 손을 안 대고 있었는데 대충 결론을 내리고 나니 모든 흔적이 참을 수 없이 싫어져서 청소를 시작했다. 물티슈로 바닥을 훔치고, 침구를 교체하고, 세탁기를 돌렸다. 참새 물똥은 똑 떨어뜨려놓은 데도 있고, 휘릭 날아가면서 지려서 길고 가는 형태로 남겨놓은 데도 있고, 지가 싸놓고 그 위를 걸어다녔는지 뭉개 놓은 곳도 있었다. 바닥에 뭉개진 새똥 자국을 가만히 살펴보던 친구가 말했다.


걔도 어지간히 당황했구먼.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어찌나 서운하던지. 맞는 말인 건 안다. 참새가 나보다 더 당황했을 수도 있다. 언제 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내가 귀가해서 내보내는데 걸린 시간보다는 오래 있었을텐데 그 동안 탈출하려고 계속 빛이 들어오는 창문 쪽으로 몸을 던지면서 이상하다, 왜 안 되지, 답답해하고 있었을테니까. 하지만 그래도, 처음에 친구가 저 말을 했을 때는 무척 서운했다. 나는 저 새가 안 나가면 전기 모기채로  혼꾸녕을 내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 싫었으니까. 실행에 옮기지 않은 건 내 집에 그 새의 흔적을 더 남기기 싫어서였지 그 작은 침입자의 안녕을 걱정해서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가 전기 모기채로 혼꾸녕을 내줬더라도, 그게 집에 참새가 들어오는 것을 예방하는 방지책이 되었을 리 만무하다. 그 참새를 어떻게 처리하는가는 재발 방지와 무관하다. 실제 침입 경로는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여러 우연이 겹쳐서 가능했다는 점은 확실하고, 그 우연의 조합은 내가 제어할 수 없다. 제길.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 것과 그 사람과 친한 것을 구분하고, 어떤 것이 싫은 것과 그것을 미워하는 것을 구분한다. 비판과 비난은 다르고, 거절과 공격은 세트가 아니다. 


여름은 싫지만 복숭아가 있어서 미워할 수 없다.


졸업하자마자 가장 친했지만 좋아한 적은 없는 친구와 절교했다. 


흠모하지만 (아직) 가깝지는 않은 사람이 있다.


그 의견에 반대하지만 나에게 물어봐줘서 고맙다.


서로 호감이 있어도 영원히 친해질 수 없는 사이가 있다.


그 참새가 너무 싫지만, 밉지는 않다. (그 날은 미웠다. 이성을 잃은 상태였거든..) 자기가 의도하지 않은 우연의 조합으로 밀실 내부에 도착해 물똥을 지리며 고생하다 허둥지둥 탈출한 새는 증오의 대상으로는 자격 미달이다. 하지만 난리법석을 피우며 이틀 동안 눈에 보이는 모든 표면을 닦아냈음에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물똥의 흔적을 발견할 때면 너무 싫어서 몸서리를 친다. 생각해 보면 별 거 아닌데, 별 생각 없이 볼 때마다 몸이 먼저 반응할 정도로 싫다. 나만의 안락한 공간의 평화를 해친 결백하지만 무례한 작은 새. 그리고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그 무례의 흔적. 지금도 싫고, 너무 싫고, 증오할 수 없어서 아쉽다.


삶의 목표가 뭐냐는 질문에 별 고민 없이 '행복'이라고 답했던 20대를 지나, 이제 사는 목표가 '너무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선에서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인가 보다, 라고 받아 들이게 되었다. 그래도 나도 누군가에게 민폐일 때가 있을테고, 나에게 결백하고 무례하게, 드물게는 악의를 품고 무례하게 폐를 끼치는 인생도 있다. 


싫다. 황당하고, 싫다. 그런데도 좀처럼 밉지는 않다. 차라리 미우면 편할 거 같은데도 그렇다. 하지만 증오는 강렬한 감정이고, 아끼는 사람들과 기분 좋게 공유하기도 아까운 소중한 감정 에너지를 내 미움을 받을 자격도 없는 인생에 낭비하고 싶지 않다. 


방심하고 있다가 발견한 새똥에 질색하며 물티슈로 손을 뻗는데 옆에 걸어둔 전기 모기채에 눈이 갔다. 감정의 낭비보다 더 무용한 게 있다면 의미 없는 응징이겠지. 모기만큼 의미 없는 존재가 아닌 이상 나는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예상하지 못한 무례에 깜짝 놀라 가슴을 쓸어내리더라도, 이게 처음도 마지막도 아닐지라도, 전기 모기채를 사용하지는 않을 거다. 나는 싫은 것과 미운 것을 구분하는,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존재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니까. 


내 평화를 방해하러 온 불청객에게 그런 영향력을 허락하지 않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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