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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나의 숨 만큼만

by 정선화

삶이 지루하다 느끼는가.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다. 숨 멈추기. 삶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질 때 나는 숨을 멈춰본다. 겨우 일 분을 채 견디기가 힘들다.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어지럽고 식은땀이 솟는다. 숨을 멈춘 그 몇 초의 순간이 억겁의 시간같이 느껴진다. 그제서야 공기의 소중함을 깨닫고 다시 큰 숨을 내쉰다. 정상적인 호흡을 이어가기 위해서 한참을 캑캑 거리고 몇 번의 숨을 가다듬고 다시 평온한 상태가 된다. 이렇듯, 공기의 소중함을 우리는 모르고 산다. 나도 의식하지 못한 채, 들숨 날숨을 내쉬는 것처럼 일상이 되어 버린 것들도 그렇게 의식하지 못한 채 흘러간다.


내 환자 W씨는 반려자와의 시간이 그러했다. 즐겁지도 않았고. 퇴근 후 집에 들어와 늘어진 티셔츠로 갈아입은 채 TV 앞에서 맥주 한 캔을 마시며 몸을 벅벅 긁는 모습도 지겨웠다. W씨도 일을 하고 있던 터라 굳이 말을 해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그럴 에너지도 없었고. 누가 먼저 각방을 쓰자고 했는지도 이제 가물 가물 하다. 언젠가부터는 남편도 섹스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렇게 섹스리스로 4년이 되어 간다. 각자 씻고 자기의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한다. 그리고 다시 지리한 일상의 반복이 이어진다. 저런 천치를 데리고 사는 내가 용하지. 서로 참견 안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녀는 이 상황이 익숙했다. 마치 우리가 숨쉬는 공기처럼.


그러던 중 그녀는 이상함을 감지했다. 세탁기 속에 던져진 남편의 셔츠에 붙어 있던 긴 머리카락. W씨는 단발이었다. 긴 머리카락이 있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충격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본인이 바보라고 느끼고 섹스를 거부했던 남편에게 새로운 여자가 생겼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W씨가 진료실에 오기까지의 이야기이다.

20대야 뭐, 울고 불고 해도 헤어지면 끝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나이가 52세. 아이들도 아직은 고등학생이다. 아이들이나 현실을 고려하면 무작정 이혼 소장을 내밀 수도 없다. 이제 폐경에 배에 살도 많이 붙었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녀는 아직 배우자를 사랑한다. 그게 너무 견딜 수가 없었다.


W씨의 상황은 남녀가 바뀌어도 비슷하다. 공기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내 삶을 차지하던 배우자의 마음이 변화했다고 느끼는 순간, 마치 숨을 참을 때처럼 고통스럽다. 다시 숨을 고르게 하려면 숨이 엉켜버린다. 제대로 숨 쉬기란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온전히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에 비로소 실감한다. 나, 이 사람이 필요했구나.

부부란게 그렇다. 내 삶에 진심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진심이 지나쳐서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한 것, 그것이 섹스리스로 이어지고 결국 성에 대한 문제 그 이상을 야기하게 되는 것. 살을 부비고 뜨거운 숨을 내쉬며 소통하는 성관계가 멀어지면 결국 마음도 멀어진다는 걸 사람들은 간과한다. 그리고 뒤늦게 진료실이나 상담실의 문을 두드린다. 사실, 이렇게 전문가를 찾는 이들은 그나마 다행인 케이스다.


배우자와의 섹스는 그 둘만의 세상을 다시 세우는 순간이자 노력이다. 단순히 자녀를 만들기 위한 행위 그 이상이다. 만약 자신의 몸 컨디션이 임신과 분만, 그 외 질환이라던가, 폐경기를 지나면서 남편의 요구를 들어주기 어렵다면 나와 같은 전문가를 찾아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 상당히 많은 여성들은 이런 고민을 가지고 있음을 진료를 하며 느낀다.


나는 W씨와 방법을 찾았다. 우선 서럽고 섭섭하더라도 먼저 남편과 대화하고 남편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또한 폐경기를 지나면서 질의 이완과 건조증을 해결했다. 그나마 적극적으로 해결 방법을 찾고 노력하고자 했던 그녀는 결국 섹스리스를 청산하고 남편과의 관계가 많이 나아졌다. 이제는 단 둘이 종종 호캉스도 다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래도 이 경우는 W씨의 피 나는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에 부부 사이가 회복된 경우였다. 의학적인 도움이 그녀에게 큰 힘이 되었다.


딱 당신의 숨 만큼만. 반려자는 그런 존재다. 나 자신만은 포기하지 않겠다고 나의 욕심만 부려서는 관계가 회복되기 어렵다. 죽음을 ‘숨이 멎다’,‘숨지다’,‘숨을 거두다’라고 표현하는 것도 숨이야 말로 살아있는 힘이기 때문일 것이다. 숨을 멈춰보면 반려자의 삶이 성큼 가까이 느껴진다. 내가 얼마나 숨을 잊은 듯 쓸데없는 것들에 정신이 팔렸는지. 숨이 멎을 듯 과한 욕심을 부렸는지 새삼 깨닫는다. 숨을 비우고, 새 숨을 들이마셔야지. 온전히 숨을 쉴 수 있는 것만으로도 부부의 관계와 삶은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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