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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시간을 즐기는 방법

by 정선화

그림에 광채를 주는 것은 그림자다.

- 니콜라 부알로


내겐 나만의 혼자서 하는 취미가 있다. 바로 향이나 향초를 켜서 멍 때리거나 그 향에 취하며 독서를 하는 일이다. 혼자서 심심하지 않냐, 외롭지 않냐,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시간 만큼은 머릿 속을 텅 비우고 나에게 집중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평상시엔 결정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신경 쓸 일도 많아서 진득하게 글을 쓰기도 힘드나, 이 시간에 짬을 내어 글도 쓰곤 하니, 나에게는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사각형의 반듯 반듯한 곳에 사는 현대를 사는 나는 책을 통해 중세 고딕 양식이 꽃피는 시기로 여행을 갔다. 그 시기에 고딕 양식들은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환상적인 빛을 만들고, 이를 새로운 빛, LUX NOVA 라고 불렀다. 유럽을 여행 하다보면 섬세하게 지어진 뾰족한 탑이 있는 여러 성당들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모양도 상당히 비슷하다. 그러다 보니 유럽에 여행을 다녀오면, 이 성당이나 저 성당이나 똑같이 생겨서 어디를 본 건지 헷갈리는 경우가 흔하다.


나는 천주교 신자다. 학생 때부터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때 특히나 좋아했던 노래들이 있다. 그레고리안 성가인데 특별한 반주 없이 마치 시를 읊듯이 나즈막히 울리는 멜로디가 좋았다. 대부분 라틴어로 되어 있어 마치 신비한 주문을 외우는 기분도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딱히 웅장한 느낌의 파이프 오르간 반주가 없다보니, 평범한 공간에서 듣는 그레고리안 성가는 재미없고, 지루하며, 단조로운 느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고딕 양식의 성당은 그 자체가 웅장하고 완벽한 스피커 역할을 해준다. 목소리들이 한데 모아져 성당 안을 울리며 미사를 보러 온 사람들에게 신의 말씀을 전한다. 마치 정말 하늘에서 들려오는 메세지마냥, 낮지만 웅장한 목소리가 환상적인 스테인드 글라스 빛과 어우러져 중세인들에게 마음의 피난처이자 이상향으로서 존재하게 된다.


중세로 여행을 떠난 동안 향이 거의 다 탔다는 것을 알았다. 하얗게 재가 되어 떨어진 향을 보며, 잠시 혼자만의 여행을 떠난 나를 다시 현재라는 모노톤의 공간으로 이동시킨다. 잠시 속세의 혼돈을 잊고 나만의 여행을 떠나는 문의 열쇠가 되는, 집을 가득찬 향기를 폐부로 깊이 맡아본다. 화려한 그림에 광채를 주는 것은 그림자이듯이, 결국 갈등과 혼돈이 가득찬 현재가 있기에 고독의 소중함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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