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장 8~14절
마주한 말씀
창세기 2: 8~14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마주한 생각들
창조의 사건이 끝났다. 태초의 시간이 지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 배경은 에덴 동산이다. 에덴 동산은 비옥하고, 풍요로웠다. 그뿐 아니라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곳에 사람을 두셨다.
에덴은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 강의 근원이었다. 그래서 아마도 메소포타미아 지역인 듯싶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위치했던 에덴은 하나님이 창설하셨다. 에덴은 기쁨이라는 뜻을 가고 있다. 동산은 울타리를 치다, 보호하다는 뜻을 가진다. 그래서 70인 역에는 에덴 동산을 기쁨의 낙원으로 번역하기도 했다. 에덴 동산은 특별한 장소였다. 기쁨이 넘치는 안전한 울타리였다. 기쁘다는 뜻의 동기나 의미를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분명히 그곳은 안전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하나님이 에덴 동산을 창설하셨기 때문이다. 창설이라는 단어가 잘 쓰지 않아 어색해 보이지만 이는 나무를 심고, 포도원이나 정원을 만든다는 뜻을 가진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에덴 동산을 특별히 정성껏 일구고 만드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 사람을 살게 하셨다. 에덴 동산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고 먹기 좋은 나무가 있었다. 그래서 풍요롭고, 풍족했을 것이다. 천지 창조부터 계속 등장하는 '토브'라는 단어는 좋다는 뜻과 더불어 선하고, 보배롭고, 복되고, 유익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에덴 동산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풀어주신 살기 좋은 집이었다. 보기에도 좋고, 먹을 것이 풍족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쁨의 동산, 기쁨의 낙원이 아니었을까?
에덴 동산은 특별한 두 나무가 있었다.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다. 생명나무의 생명은 생존, 생기, 활력, 번역, 소생의 뜻을 가진다. 생명나무는 어떤 의미일까? 나무는 광합성을 통해 모든 생명체에게 산소를 공급해준다.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과실수는 그 열매로 우리에게 다양한 영양분을 공급해준다. 그 뿌리는 물을 머금고 있어서 홍수와 가뭄을 막아주기도 한다. 그야말로 생명나무다. 나무는 자라는 것도 느리고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생명이 없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생명이 깃든 나무다. 그런데 특별하게 생명나무라고 칭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 과실을 먹으면 어떤 특별한 것이 있는 걸까? 이미 나무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더 특별한 무엇이 있는 걸까? 칼빈은 그 과실을 먹음으로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후에 나오지만 범죄 한 아담과 하와가 생명나무 과실을 먹고 영생하지 못하도록 에덴 동산을 막으셨다. 생명나무는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특별히 언급하셨고 생명이라는 특별한 역할을 주셨다. 하나님은 생명나무를 생명이 회복되고, 연장하도록 창조하신 것이다. 즉, 하나님은 에덴 동산을 특별히 창설하셨고, 더불어 생명나무로 인간의 생명이 회복하고, 소생케 되고, 번영하도록 하셨던 것이다. 에덴 동산과 생명나무를 통해 하나님의 생명, 그중에도 인간의 생명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창조하셨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엄연히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시면서 빛이 가리어진 어둠의 상태를 불의하게 대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질서 가운데 생기는 어둠에 대해 공의롭게 질서라는 틀로 담으셨다. 마찬가지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아니다. 판도라의 상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선과 악이 함께 공존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말 그대로 선과 악을 알게, 인지하게, 분별하게 하는 나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하나님 편에서 생각해보면 그저 선과 악을 알게 해주는 나무일 것이다. 우리는 거기에서 너무 악에 방점을 두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은 인간이 선과 악을 알기 원하셨을까? 원하지 않으셨을까? 하나님은 인간이 선만 아는 존재로 창조하지 않으셨다. 악에 대해서 알고 이길 존재로 창조하셨다. 후에 나올 가인과의 대화에서 더 살펴볼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그 선택을 하나님 스스로 하지 않으셨다. 우리에게 기회를 주셨다. 우리에게 알 수도 있는 여지를 주셨다. 기쁨이 넘치는 풍요롭고 풍족한 에덴 동산에 굳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만드신 그 뜻을 다 헤아릴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이다. 하나님의 창조물에는 그냥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 의도를 다 헤아리지 못할 뿐이다. 때론 그 의도를 우리 스스로 판단해버릴 뿐이다. 그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대해 악으로 치부해버리고, 범죄 한 과거에 대해 탓하기 쉽다. 하나님의 창조물에 대해 왜라고 묻고 싶어지기도 한다. 차라리 만들지 마셨으면 어땠을까는 허공의 메아리 같은 생각이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이 감옥이 되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인간과 소통하기를 원하셨지, 감상하기를 원하시지 않으셨다. 그래서 생명나무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만드셨다. 하나님과 소통하며 하나님의 신비를 발견하게 하셨고, 하나님과 더불어 깊은 친밀감을 갖기를 원하셨다. 생명나무로 하나님의 생명, 신비를 깨닫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선악을 아는 것, 그리고 분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기를 원하셨던 것은 아닐까? 굳이 그 과실을 먹지 않아도 말이다.
마주한 결단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신다. 그냥 필요 없다고 치우시지 않으신다. 이제 선택은 우리에게 달렸다.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며 나아가기를 바란다. 혹시라도 그것이 죄의 모습이라도 돌이킬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