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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하는 것마다 엉망이라고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냐고

영화 '매그놀리아'(1999) 리뷰

by 김동진

폴 토마스 앤더슨의 (아직 그의 영화를 몇 편 보지 못했지만 이미 알 수 있는) 장기인 탁월한 패닝 숏과 롱테이크가 특히 오프닝부터 시작해 중요한 매 장면마다 제대로 빛난다. 그렇지만 이내 기교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님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영화 언어가 어떻게 메시지가 되고 이야기에 수렴할 수 있는지를 일찍이 잘 보여주었던 이 이상한 걸작을 뒤늦게서야 만난다.

같은 공간에 함께 있어도 아주 먼 사람이 있고 아득히 저 멀리 있었는데도 가깝게 있었을지 모른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 태어난 줄도 몰랐는데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온 것만 같은 사람이 있고 날 때부터 함께였는데도 누구보다도 증오스러운 사람이 있다.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것 같았지만 지나고 보니 깊숙이 연결되어 있거나 곁에 있는 복수의 사람들도. 연이은 절망의 구덩이 속에서 나를 잡아 가두고 있었을 과거가 끝내 나를 잊지는 않겠지만, 나도 모르는 나를 어떤 당신이 저 너머에서 알고 있었던 순간이 있다.

영화 '매그놀리아' 스틸컷


위악스러운 말을 퍼부으며 흐느끼며 왜 전화 안 했냐며 죽지 말라며 뒤늦게 부르짖는 마음도 이렇게 날 만났으니 앞으로는 만나기 싫다고 해 달라는 마음도 나누어 줄 많은 사랑을 누구에게 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마음도 당신은 그저 실수한 것일 뿐이라며 함께 수습하자고 양 어깨를 잡아주고 뒤에서 일으켜 주는 마음도 미처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이미 일어나 버린 일들처럼 홀로인 나는 누구라도 없이는 감당해 낼 수 없는 순간들을 끊임없이 곁에 두고 살아야만 할 것이다. 내 총도 잃어버리고 알지 못하는 이가 나를 판단하고 지켰어야 할 생명은 끝내 꺼지고 끊지 못하는 약도 있고 제 추한 모습을 내보여야만 하는 나날이 많을 것이다.

우리 모두 각자의 섬이지만 그래도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감. 바닥을 공유한다는 체감 또는 발견. 그런 것들이 우리가 결코 현명해질 수 없을지라도 일말의 여지를 내포한다는 것. 개구리 우박처럼 결코 피할 수 없을 괴상한 일들은 늘 난데없이 일어나지만, 어떤 희망도 없을지라도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실낱 같은 무언가를 잠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매그놀리아>(1999)는 쉬지 않고 정교하게 말해주고 보여주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부르고 있었던 노래처럼. 느껴본 적 없던 기분으로 노래 가사를 곱씹으며 괜히 글썽이고 있었다. 언젠가 이 영화가 문득 나를 한 대 때려줄 것만 같다. 일으켜 주지는 않으면서. 너 하는 것마다 엉망이라고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냐고. (2025.10.11.)


영화 '매그놀리아' 스틸컷
영화 '매그놀리아' 스틸컷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김승희,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아무도 홀로 선하거나 강해질 순 없으니
모두는 각자에게 필요하네
각자가 모두에 필요하듯'
-심규선, 「Each &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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